“고린도전서 1장에서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노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찾아야 할 것은 십자가의 도이다. 여기서 도는 말씀이다. 즉, 십자가의 말씀이다. 이 십자가의 도는 매우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다. 하지만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를 지혜로운 지식으로 바꾸려고 한다. 설교자의 사명은 신자들을 지혜롭게 영리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여 알게 하고 성령을 체험케 하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설교자의 사명이고 부르심이다.”(김광식 前 연세대 교수)
“김광식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선생님과 같은 태도가 한국교회를 망쳐 놓았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구차스럽게 끼어들어야 됐다. 지금까지 그런 태도로 한국교회를 끌고 왔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왜 이 모양인가. 지금까지 설교자, 신학자들은 성서를 ‘믿으라’고만 말하지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은 믿음은 간편하고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21세기엔 신앙을 단순하게 믿을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없다. 21세기에서 역사성과 합리성을 결여한 ‘이해 없는 신앙’만을 고집할 수 없다. 김 교수님의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그런 나약한 태도가 지금의 기독교를 만들었다.”(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
최근 요한복음 강의를 통해 ‘구약 무용론’, ‘신약성서 정경화 채택 문제’ 등을 주장하며 기독교계와 심한 마찰을 빚어온 도올 김용옥 교수가 조직신학자, 구약학자들과 한자리에 섰다. 11일 오후 3시 서울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교 1백주년기념관 중강당에서는 한국조직신학회(회장 이정배 교수) 주최로 ‘도올 김용옥과의 신학 대토론회’가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됐다. 토론회가 시작되기 20분 전부터 5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강당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가득찼다.
이정배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도올 김용옥 교수에 맞서 한신대 김경재 교수, 연세대 김광식 前 교수, 감신대 김준우 교수, 성공회대 김은규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섰으며, 기독교계 내에서 문제시 됐던 김용옥 교수의 발언들 중 <구약무용론>, <신약성서 정경화 채택 과정 의혹>, <요한복음의 탈구약적 읽기>, <기독교 정통주의 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아타나시우스’ 대신 ‘아리우스’ 선호> 등이 토론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다음은 이들의 토론 내용(호칭 생략).
“율법을 거부한게 아니라 율법주의를 거부했다”
김은규: 초기 교회사를 보면 구약 폐지를 주장한 ‘마르시온’이란 이단자가 나온다.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을 ‘율법의 하나님’, ‘질투의 하나님’, ‘폭군의 하나님’으로 그려놓고 있다. 김용옥 선생은 이를 지지한다. 하지만 십계명이나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력을 응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도덕적 기준이 되었다. 또한 구약과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율법의 폐기는 말도 안 된다.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율법이 아닌 율법주의는 지배이념이 되어 사람을 오히려 옭아 맨다.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 ⓒ고준호 기자
김용옥: 나는 율법을 거부한 게 아니라 율법주의를 거부한 것이다. 예수도 율법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예수가 거부한 것은 율법주의였다. 기독교는 출발부터 유대민족의 율법주의를 거부했다. 나는 구약의 가치를 거부하지 않는다. 구약이 없으면 신학의 성립은 불가능하다. 구약의 소중한 가치가 신학에 들어와 있다. 나는 이런 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의 기독교가 구약적 율법주의를 신앙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요일이었다. 호텔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탑승 버튼을 누르지 않고 서 있다. 각층에서 자동적으로 열린다. 왜 그런가? 안식일에는 일체 불을 켤 수 없다. 그래서 자동 스위치를 만들었다. 완전 눈 가리고 아웅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구약적 율법주의를 신앙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대교의 아류일 뿐이다. 예를 들어 십일조는 신약에 없는 말이다. 예수는 십일조를 내라고 말한 적이 없다. 폐기돼야 할 구약적 율법주의를 설교 권위의 근거로 마구 활용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주장할 것이다.
김경재: 김용옥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구약폐기’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됐다. 김용옥 선생의 <기독교 성서의 이해>와 <요한복음 강해>를 정독했다. 하지만 신문의 활자에 나와 있는 ‘구약 폐기론’은 책에서 찾을 수 없었다. 김용옥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주의와 배타주의에 대한 경고였다. 김용옥 선생의 발언을 통해 의문점이 해소됐다.
“성서 정경화의 필연적 의미가 필요하지 않는가”
이정배: 김용옥 교수님은 ‘복음을 위해서는 성서가 해체돼야 한다. AD 367년 이전까지는 성서가 없었다. 모든 책이 열린 경전이었다. 로마황제의 입김 안에 있었던 교회가 정경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김은규: 만약 기독교가 정경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정경의 필연적 의미가 필요하지 않는가.
김용옥: 기독교는 2천 년 동안 서서히 형성되어온 것이다. 이 말은 곧 어느 한 시점에서의 기독교의 모습이 기독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형성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1세기의 기독교, 4세기의 기독교, 16세기의 기독교, 21세기의 기독교가 모두 동등한 자격을 지니는 기독교일 뿐이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의 성서의 정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4세기말에나 모습을 드러낸 27서 체제의 성서나 20세기 한글판 개역성경은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신약성서의 다른 판본일 뿐이다. 신학도들이 기준으로 삼는 희랍어성서도 19세기 말에나 그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다. 희랍어성서 자체가 2천 년 동안 진화해 온 것이다. 현재의 27서 체제의 성경이 기독교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생각도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가톨릭은 아직도 성서에 근거가 없는 많은 후대의 추가전승을 교리로 신봉하고 있다.
“왜 성경을 싹둑 잘라 버리나”
▲김광식 前 연세대 교수 ⓒ고준호 기자
김광식: 김용옥 선생의 성서를 연구하는 방법론에 대해 묻고 싶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해체의 방법인지 아니면 (초기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의 방법인지 헷갈린다. 해체란 개념과 사상 속에서 왜곡되거나 오해된 부분, 시대적으로 가당치 않은 소리를 해체하자는 것이다. 환원은 전통과 전승의 근원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 비본래적인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김용옥 선생은 환원의 방법을 사용한 것 같다.
그렇게 김용옥 선생은 비 본래적인 것을 전부 제거하고 요한복음에서 1장 1절만 남겨둔다. 성경 교리의 앞뒤 맥락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그렇게 모두 싹둑 잘라 버리면 대화가 되는가? 한 구절로만 해석하는 게 과연 정당한가.
또한 김용옥 선생은 역사적 예수, 선재적 예수만 달랑 뽑아 설명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나타난 총체적 예수를 믿는 게 그리스도교다.
김용옥: 나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세계적인 고전학자다. 고전학자로서 닦아온 엄밀성이 있다. ‘해체’나 ‘환원’ 등과 같은 그런 방법론을 쓰지 않는다. 나의 목적은 핵심적인 문제를 던져서 자극을 주는 것이다. 이런 안목으로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쓴 것이다.‘싹둑 복음’으로 규정하지 말아달라. 유치하게 비판하지 말아달라. 말씀을 고상하게 고쳐주길 바란다. 취소하거나 말이다.
나는 역사적 예수를 규정하지 않는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실체화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역사적 예수의 지평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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