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신학자 김영한 교수의 <밀양>에 나타난 기독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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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에 나타난 고통의 개념과 회개의 한계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장 김영한 교수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장 김영한 교수

<밀양>(이창동 감독, 2007)이라는 영화가 2007년 칸느 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주연 전도연(신애 역)이 여주연상을 받는 쾌거가 있었다. 남편을 잃고 외아들마저 잃은 소외 받은 서른 셋 젊은 여성의 한(恨)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편을 잃은 젊은 여성이 외아들과 같이 남편의 고향인 밀양(密陽, Secret Sunshine)에 내려와서 사는데 유괴범에 의하여 외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 여인(준이 엄마)은 기독교의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평안을 얻고 아들의 살해범을 용서하게 된다. 이 여인(준이 엄마)은 진정한 용서를 실천하기 위하여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있는 살해범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용서를 전하고자 한다. 그런데 살해범은 “나도 교도소에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용서를 이미 받았다. 내 마음도 평안하다”고 말한다. 여인은 용서는 피해자인 자기가 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용서하였다는 사실에 아연(啞然)자실(自失)한다. 깊은 죄책에 빠져 절망 속에 있어야 할 가해자가 오히려 아무런 심리적 아픔 없이 자기의 죄책을 용서받았고 이제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피해자인 이 여인은 기독교의 용서에 대하여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정신이상까지 일으켜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은 후에 비로소 퇴원하고 일상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여인이 자기 집 마당에서 자르는 머리카락 뭉치가 떨어져 바람에 나동그라지는 데 햇빛이 은밀히 쪼이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이 작품의 작가(이창동 감독)는 현상적인 기독교의 일반적인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기독교 선교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 문제를 다루고 있다. 종교, 인간, 그리고 구원과 화해. 본질을 직시하게 만든다. 기독교 리얼리즘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한 많은 한국 여성을 배역으로 하여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외아들을 잃은 여성의 한과 그 심리적 갈등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현상적인 기독교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등장시킨 여인의 삶의 깊이 속에서 기독교를 독실하게 소화했다고 볼 수는 없다.

1. 고통의 개념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문제인 여인의 고통과 한(恨)을 그리고 있다. 남편을 잃고 삶의 하나 남은 위안인 아들마저 유괴범의 손에 잃은 여인의 고통과 슬픔을 그려낸다. 남편을 잃은 도시를 뒤로 하고 돌아온 남편의 고향에서 아들마저 잃은 젊은 여인 신애는 약국 김 집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다면, 왜 우리 준이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요?” 이 질문은 여인의 실존에 받쳐 오르는 한(恨) 많은 질문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고통당하는 자들의 물음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이 작품의 주제가 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다. 고통당하는 신애의 심정은 그녀의 발작적인 울부짖음과 경련에 가까운 토해냄 등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조용히 성찰하면 신애라는 여성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자들의 질문과 고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여인(신애)의 고통은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에 나가서 잠시간 잠재워진다. 표정에 화색이 돌고, 구역모임에서 간증도 하고, 동네 여인들에게 전도하며, 역전에서 노방 찬양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의 포커스는 여기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기 위해’ 유괴범을 면회하러 간 여인의 용서의 마음은 유괴범의 당당한 신앙고백에 무너져버린다: “저도 하나님을 가슴에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제 편합니더.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더.” 이 장면이 영화의 반전(反轉) 장면이다. 그 후로 여인(신애)은 자기가 고백한 신앙에 대한 적대적인 일탈행위를 시작하게 된다. 그녀의 행위는 신앙에 대한 부인(否認)을 넘어서서 신(神)을 향한 억누를 길 없는 분노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어진다. 심지어는 최후의 몸부림, 동맥을 끊는다.

이 영화는 기독교의 너무 싸구려 상품이 되어 버린 용서와 은혜의 개념을 소재로 함으로써 기독교 교리의 중요한 부분인 용서와 은혜를 가볍게 받아들이고 생활하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자성의 기회를 줄 수도 있으나 기독교를 모르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왜곡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본고는 이 영화를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신학적으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은 문학적 평가이기보다는 신학적 평가이다.

2. 용서의 개념

1) 준이 엄마(신애)의 용서와 그 한계

영화의 주인공인 여인(신애)은 외아들마저 잃은 마음의 한을 교회에 나가서 소릴 지르는 기도로 털어낸다. 그 가운데 목사님의 기도로 기독교 신앙에서 임시적인 마음의 평정과 위로를 발견한다. 그녀는 신앙생활을 하고 자기가 발견한 마음의 평안을 간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다. 만약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에 대한 문제가 해결이 됐어야 한다. 이 장면에 대한 방영이 전혀 없다. 복음의 진리가 그렇듯 진정한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기에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애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성찰과 이에 따른 진정한 회개가 없다.

그렇다면 신애의 죄는 무엇인가? 이 영화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열거해 본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바람핀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했었다고 믿는 것. 실제로 초라한 모습을 이웃에게 보이기 싫어서 땅 투자를 한다며 거짓말하는 것. 신애는 종찬(송강호)에게 속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녀 자신도 속물이었다. 종찬이 만들어준 거짓 수상 액자를 떼어내지 않고 붙여두고, 아이가 유괴된 상황에서 신문지로 만든 가짜 돈을 준비했던 것. (결국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진짜 돈으로 바꾸어 넣지만...) 그리고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용서를 체험했으나, 자기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겠다고 했으나, 유괴범이 먼저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 일탈행위를 일삼는 것이다.

영화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 체험의 용서’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다. 외아들을 잃은 젊은 여인이 교회에 나가서 소리를 지르면서 한을 토하여 내는데 담임목사가 와서 안수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초월적 체험,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다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 부분이 보다 자세히 예술적으로 묘사되어야 했다. 그런데 안수 하나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체험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용서는 ‘심리적 치유 없는 용서’이다. 기독교의 용서에는 심리적인 깊은 자기반성과 과거에 대한 기억과 회상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적 자기반성과 자기성찰에 대한 장면이 전혀 없다. 영화가 그려낸 여인의 용서 체험은 일반적으로 피상적인 기독교 신앙의 체험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진정한 용서,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나오는 신앙의 체험과 다르다.

2) 유괴살해범의 용서받은 경험

영화에는 수감되어 있는 유괴살해범이 “감옥에서 전도를 받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고 그 마음에 평안을 누렸다”는 발언과 표정이 아주 짧은 장면으로 가볍게 처리되어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인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싸구려 은혜’로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피의 공로로 죄인 괴수의 죄도 값없이 용서해 주신다’는 교리가 이 영화에서는 짧은 장면과 대사로 인해 마치 은혜의 기계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요 목회자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Nachfolge, 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싸구려 은혜(cheap grace)와 고귀한 은혜(costly grace)를 구별한다. 그는 오늘날 독일 기독교인들이 죄를 짓고 난 후 죄책에 대한 깊은 반성과 뉘우침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의 기계처럼 사용하고 있는 사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신애의 용서받은 은혜의 경험이나 살인범이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은혜의 경험이 너무나도 자신의 죄책에 대한 깊은 반성과 뉘우침 없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은혜와 용서의 개념이 잘못 왜곡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싸구려 은혜(billige Gnade, cheap grace)는 동대문 시장에서 골라잡아 싸게 구입하는 상품(Schleuderware)으로 변질하는 은혜이다. 이에 대하여 고귀한 은혜(teuere Gnade, costly grace)란 은혜에 대한 제자됨의 대가를 지불하는 은혜이다. 예수님과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은혜란 싸구려 은혜가 아니라 고귀한 은혜다. 이 영화는 기독교의 은혜가 싸구려 은혜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싸구려 은혜란 기독교를 어설프게 이해하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독실한 자에게 기독교의 은혜는 고귀한 은혜이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받은 신자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삶을 사는 것이다.<계속>


김영한 교수

서울대 철학과
독일 하이델베르크대(Dr. phil. & Dr. theol.)

영국 케임브리지대 신학부 연구교수
미국 예일대 신학부 연구교수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한국개혁신학회 회장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현재)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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