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곳곳에는 슬럼가가 있다. 이중 나이로비 동쪽 외곽 지역 고로고초 단도라 슬럼가는 가장 생활이 어렵다. 세계 3대 슬럼가 중 하나로 불릴 정도. 이곳 아이들은 당장 먹을 것도 없어 쓰레기 더미를 뒤져 끼니를 잇고 있다. 공부는 언감생심,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밤에는 잠 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이곳을 방문한 굿네이버스 산하 굿미션네트워크 임태종 회장에 의하면 “쓰레기 중에 한 쓰레기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는 아이의 눈망울의 초점은 흐려져 있었고, 아이들은 앉아서 의미없는 손짓으로 쓰레기를 뒤지다가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봉사하는 굿네이버스 케냐지부 직원들은 이들에게 ‘밥’ 뿐만 아니라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어린이 합창단을 만드는 것. 이곳 아이들에게 ‘음악’이란 그야말로 사치였지만, 이들에게는 아프리카인들 특유의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고로고초 지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방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와 학생들도 꽤 관심 있어하는 눈치다.
지난해 7월, 이들을 위해 김재창 음악감독이 케냐로 파견됐고, 8월 80여명의 합창단원이 모집됐다. 슬럼가 인근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본 결과였다. 올해 1월에 20명이 추가로 선발돼 지금은 1백명 규모다.
이중에는 합창단에 너무 들어오고 싶어 오디션에서 떨어졌는데도 계속 연습하러 오는 아이, 성적이 떨어져 부모님이 합창단 가입을 반대해도 몰래 연습에 나오는 아이, 합창단 연습을 위해 전학한 아이, 부모님의 학대로 피신한 중에서도 연습을 나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배가 고파서 합창단에 나오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이들이 소속된 합창단의 이름은 ‘지라니’다. 현지어로는 ‘이웃’이라는 뜻. 연습은 쉽지 않았다. 이곳 아이들은 음악은 고사하고 줄을 서는 법조차 몰랐다. 노래 연습보다 줄 서기 연습부터 시켜야 했다.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처음에 노래라기보다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곤 했다. 7개밖에 되지 않는 계이름도 다 외지 못했고, 제대로 된 음정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한 법. 악보도 읽지 못하던 아이들이 화음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창단한지 두 달만인 지난해 12월에는 케냐 국립극장에서 나이로비 주재 한국대사와 케냐 문화관광부 장관 등 4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창단공연도 성황리에 열었다. 이윽고, 지난 6월 1일에는 케냐 대통령궁에 초청돼 케냐 자치정부 수립기념일 기념공연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이날 공연에서는 한국말로 ‘도라지 타령’도 불렀다.
영화같은 이야기들을 한아름 품은 채, 이들이 한국으로 와 전국 순회공연을 펼친다. 한국으로 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현재 합창단원 중 총 34명이 한국에 왔는데, 단원 85명 중 출생신고가 돼 있던 아이들이 11명밖에 없어 출생신고를 해 주고 비자를 발급받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는 후문.
▲11월 29일 공연에는 변정수 굿네이버스 홍보대사가 참석했다. 그녀는 지라니합창단원 7명을 후원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 직전 케냐를 방문해 이들을 만나 공연의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날 아프리카 전통음악인 ‘잠보(Jambo)’를 부르기도 했다.
ⓒ굿네이버스 제공
이들은 굿네이버스 정기회원 등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 첫 공연을 지난달 29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었다. 이들의 사연을 들은 이들이 앞다퉈 공연에 오고 싶다고 나서는 통에 좌석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이날 아이들은 아프리카 전통민요, 춤, 북 연주와 세미클래식 형식의 곡, 그리고 한국어로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한달 여간 한국에 머무를 아이들은 다양한 일정을 소화한다. 케냐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이 4일 서울 양재동 횃불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투어 일정에 들어간다. 오는 8일에는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1백주년 특별 내한공연에 초청돼 이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21일에는 굿네이버스 최수종 친선대사 초청으로 ‘팬양의 화이트버블쇼’를 관람한다. 아이들답게 놀이동산과 공장 견학, 도자기 만들기, 수영장도 방문한다.
지라니합창단은 이러한 일정 이외에도 전국 8개 도시에서 20여 회의 공연을 하며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품게 된 희망을 노래할 예정이다. 굿네이버스 측은 아직 며칠 남아있는 이들의 일정에 공연 문의를 받고 있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을 ‘희망의 메신저’라고 말한다. 공연을 통해 자신들이 겪은 변화를 알리고, 아프리카에 만연한 에이즈와 가난, 질병, 물 부족 등의 문제도 알리겠다는 각오다. 내년에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순회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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