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문학을 보다
기독문학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문학을 보는 것이다. 의미를 명징하게 하기 위하여 기독문학론에서 내가 의미하는 세계관에 대해 부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계관이라는 단어 ‘worldview’는 독일어 ‘Weltanschauung’의 번역어로 철학과는 구별되고, 또 신학에서 의미하는 ‘세계-인생관’보다는 단순한 의미다. 그것은 ‘삶에 대한 관점’ 또는 ‘신앙 고백적 비전’을 말하는 것으로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을 의미한다.그러나 비록 세계관이 한 사람이 견지하고 있는 ‘원칙들’과 ‘이상들’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말이긴 하지만 오늘날 일반 사회과학에서 말하고 있는 ‘가치체계(system of values)’ 와는 다르다. 가치체계란 상대주의를 함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각 세계, 인간의 삶 일반, 고통의 의미, 사랑과 하나님에 대해 기본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세계관은 개인의 신념 문제다. 신념은 감정이나 의견과는 다르다. 일종의 지식을 주장하는 것, 즉 ‘인식적인 주장’이 신념이다. 그러기에 그 신념을 옹호하기 위해 논증을 할 수 있고,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를 동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념은 개인의 확신이며 헌신적인 믿음이고 신조와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의 신념은 경우에 따라 다른 사람과 사회가 받아들여 하나의 유형(pattern)이나 틀(framework)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신념을 주장하고자 할 때는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세계관은 우리의 삶 가운데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세계관이 제공하는 방향감각이나 인도 기능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고 결정한 것에 헌신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이란 성경에 의해 형성되고 점검된 세계관을 말한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문학을 본다는 것은 과학이나 이론의 인식차원보다 더 기본적인 인식차원을 말한다. 즉 미학에 대한 어떤 선천적 차원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이 감각이 문학적 상상이다.
문학은 창조적 상상의 언어적 소산인데 기독문학은 이 창조적 상상이 성서 안에서 보다 더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창조적이라고 하는 말은 어떤 것에서도 그 대응물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담화라는 특성을 갖는다. 어떤 특수한 행동양식 속에만 갇혀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언어적 소산’이란 문학은 언어에 의해 “말하여진 것(things said)”과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구화의 패러다임을 근거로 언어적 소통의 맥락 안에서만 그 의미를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술된 텍스트의 패러다임을 근거로 하면 우리는 예술적 창조나 노작(勞作)이라는 맥락을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이라든가 문학성이라는 특질은 실제 텍스트나 발화에서 찾는 동시에 언어에 의해 촉발된 정신행위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애매해질 정도로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그리하여 문학 작품이 문학적이라고 간주되기 위해서는 그 작품 자체나 작품의 특성이나 반응이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비록 기독문학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그 예술성에서 일반문학과 다를 수 없으며 그 영역에서 일반문학과 구별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문학을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기독문학이란 문학이라는 광대한 영토에 하나님의 깃발을 꽂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때문에 기독문학의 활성화는 ‘하나님나라의 총체적 회복’을 의미한다.
-송영옥 박사는
▲송영옥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