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에로티시즘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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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사랑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장중한 계시와 엄숙한 율법의 숲인 구약성서 한 가운데 성(性)을 예찬한 아가서가 있다. 율법은 금욕을 최고의 선으로 강조하고, 여자에 대해 욕망을 품기만 해도 죄가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아가서를 쓴 솔로몬은 여체를 이렇게 예찬한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내가 숨어서 아가서를 읽은 것은 아주 어렸을 때였다. 교회에서 듣는 설교가 늘 하나님을 두렵게 느끼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한창 호기심이 많은 그 또래의 우리들에게는 갈등의 원인이었다. 그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받은 연애편지도 나를 정죄했고, 내가 그토록 만져보고 싶었던 사내 친구의 코도 심판의 잣대가 돼 사춘기의 감성을 사정없이 후려치곤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상대적으로 솔로몬이 노래한 여체에의 찬사에 관심이 컸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도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꿰미 같은 넓적다리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은 배꼽을 마음에 두곤 하였다. 그런데 내 고민은 하나님의 율법과 성애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그물 밖으로 빠져나가서도 안 됐고, 내가 만든 그물 속에서 살고도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상반된 두 개의 갈망을 이념적으로 정립할 힘이 없었다. 정신적으로 확고한 신념을 얻으려고 무척 애를 쓰면서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의 욕망을 사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아가서를 더 많이 읽게 됐고, 그 시간에는 내 몸이 음성적 지식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 됐던 것이다.

이렇게 감성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서 나는 아가서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너의 유방은 종려나무 열매송이 같구나. 나는 그 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련다. 사과냄새 같은 네 콧김을 맡고 내 입술의 포도즙을 빨아먹으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내게 속하였구나. 너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대지의 부드러움과 같은 이 속삭임 속에는 우주 삼라만상이 성교를 하는 남자와 여자처럼 늘 서로 돕고 있는 듯 하였다. 흙은 향기롭고 포도송이 맺힌 이슬방울들은 햇볕을 받으며 뛰어놀고, 성의 영역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여체는 참으로 유혹적인 평야였다.

아가서는 나중에 내가 외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세계문화예술기행을 하게 됐을 때도 영향을 미쳤다. 나의 큰 관심 중 하나가 성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문학과 예술을 통해 다른 나라와 민족들의 독특한 성 문화를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이해하면서 그 옛날 자신과 끝없이 논쟁을 버렸던 일을 떠 올리곤 했다.

왜 그 때에 성애를 철학적으로 이념화 하려고 그토록 애를 썼던지… 학문적으로 꼭 정의할 필요를 느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우리 시대의 억압된 감정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사실 성애는 살아 있는 인간이 생명처럼 자연스럽게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처럼 본질적인 것이다.

나는 지금도 솔로몬의 애가를 즐겨 읽는다. 그 행간 하나 하나에는 모든 일들이 조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모든 감정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으니 우리가 단지 할 일은 그냥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면 되는 것이다.

내 몸과 온 신경조직이 주변의 모든 것과 일체가 되고 시간이 사라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이 자연스러움. 그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은 함께 용해되고 완벽하게 교감한다.

그 색의 소리와 촉감의 항기에는 흘러가는 기쁨과 힘이 있다. 장벽을 제거하고 내 안과 밖의 모든 것을 함께 만나게 하는 힘, 너와 나는 기쁨으로 가득 차 깊게 더 깊게 나아간다. 정신과 육체가 둘 다 높게 더 높게 서로를 끌어안는다. 물기 젖은 불꽃, 그 강렬한 힘의 소용돌이, 그 자체가 내적 생명의 반영이다.

어쩌면 인간은 성의 본질 위에 문학과 예술을 꽃피워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성의 실체와 눈부시게 마주하고 그렇게 무르익고 싶은 욕망을 창작의 에너지라 했다. 나의 존재가 당신의 에너지의 핵 속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고, 당신의 에너지가 범람하여 나를 삼킬 때 땅이 흔들리고 바다가 부서질 것이니…그 옛날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사랑을 동일선상에 두었던 아가서의 저자는 시인중의 시인이 아니었을까.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閃 囚구를 떠돌고 쏀덛>,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대신대에서 기독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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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옥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