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문학사에서의 기독문학
우리나라의 문학적 여건에서 기독 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체계화시키고자 할 때, 그 가능성과 전망은 어느 정도일까? 이 논의를 위해 우선 한국의 근·현대사와 기독문학과의 관계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우리가 문학사에서 말하는‘근대’나 ‘현대’ 라는 명칭은 서구의 모던(modern)에서 차용한 말로, 원래 시대를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라 문예사조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 경우 모더니즘은 ‘근대주의’이기보다는 ‘현대주의’에 가깝다. 모더니즘은 한국의 문학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구분하는 분기점이다.
일반역사학 분야에서 시대구분은 서구의 3분법에 의거해 고대와 중세, 근대로 나뉜다. 그러나 근대의 기점을 어디까지로 하느냐는 문제는 오랜 쟁점에도 불구하고 사학계에서조차 아직 해결하지 못한 논의 중 하나다. 갑오경장설, 18세기설, 1860년대설, 개항기설, 3·1운동설, 8·15해방설 등 시점도 여러가지다. 그러므로 근대문학 기점론 자체는 학계에서조차 합의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근대를 갑오동학혁명을 전후한 시기로 보며, 전 시대와 구분되는 8·15해방에서 4·19를 거친 그 이후의 시기를 ‘현대’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비록 우리의 근대가 서구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처럼 완숙한 자본주의 사회화는 아니었을지라도 외세의 침략이라는 특징상 타당한 구분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의 ‘현대’는 8·15와 더불어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 국가를 수립하고 시민 정신의 성숙을 거쳐 서구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해 산업사회로 들어선 시점을 기점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 문학의 경우에는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초에 이미 시작됐다. 이것은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근대적 의식을 갖춘 지식층의 자체 성장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문학사의 30년대 모더니즘 운동이후의 한국 문학을 현대 문학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대문학사에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논의는 이 시대가 문학성을 규정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학의 개념정립은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18세기 이후의 문학을 보는 관점에 의해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문학이론은 어쩌면 다음 세대의 새로운 관점에 의해서는 문학이 아닌 것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고대에서 하나의 주문이나 주술, 중세에서 하나의 노동요가 지금은 문학으로 취급을 받는다. 작가라는 명칭도 지금은 문학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작가라고 말하지만, 예전엔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시인이었고 옛날 얘기를 들려주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소설가들이었다. 이것은 문학과 일상이 매우 밀접해 있으며, 문학을 논한다 함은 삶이라는 현실성 위에 가능한 것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의 문학사에서 기독문학을 논한다 함은 기독교가 전래돼 한국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시점으로부터 논의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한국문학 근·현대사에서 기독문학은 비록 그 위치가 변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1900년대에 이미 개화·계몽의 서사적 형상화로 존재하고 있었다. 소설문학을 예로 들면 기독교 소설의 출발은 성서의 우리말 번역과 찬송가 번역을 거쳐 개화기 문학을 주도하면서 시작되고, 대표적 작품은 최병헌의 <성산명경>,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이해조의 <고목화>, 김필수의 <경세종>, 이상협의 <눈물>, 이상춘의 <박연폭포>, 백악춘사의 <다정다한>, 반아의 <몽조>, 배위량 부인의 <고영규전>, 이승휴의 <쟁도불공설> 등이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깊은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교조적이고 상식적인 기독교 소재를 등장시키는 것으로 기독문학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송영옥 박사는
▲송영옥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