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 송하성 박사, ‘기적같은 인생’ 간증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예수를 영접하고 삶이 급격히 달라져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프랑스·미국 등지에서 유학하게 된 송하성 박사(경기대)가 의정부 기드온횃불교회(담임 이강유 목사)에서 간증을 전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교회 가까이서 자취하다 자연스럽게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송 박사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마 7:7-12)’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듣게 됐다. 호기심 때문에 찾아간 교회였지만, 당시 광주대광교회 최기채 목사의 그 메시지는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게 된다. 이후 학생회 예배 외에도 주일예배를 꼬박꼬박 참석하고,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면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기 시작한다.
송 박사는 “그 말씀 하나로 가정에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동생들은 “형이 교회 다니면서 달라졌다”며 증거했고, 아버지·어머니도 그의 변화를 관심있게 지켜보기 시작했던 것. 송 박사는 “정말 열심히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등하교길에는 ‘성문종합영어’를 몇장 뜯어서 가지고 다니며 공부할 정도였다. 그는 2학년 겨울방학 때 광주시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수양회에서 다시 한번 도전을 받게 된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요셉입니다. 큰 꿈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품은 꿈만큼 되는 것입니다” 라는 설교를 듣고, 대충 은행에 취직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운 것이다.
돈이 없었지만, 구하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공부했지만, 목표했던 대학 대신 다른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너는 원래 그래’ 라는 패배주의와 운명주의가 다시 그를 지배할 무렵, 성경공부를 통해 그는 다시 일어서게 되고 결국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경제기획원으로 발령받은 송 박사는 학생운동으로 쫓겨다니던 신세였던 동생(현재 송영길 국회의원) 때문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고, 프랑스 최고의 대학인 소르본느대학에 합격해 경제학 박사과정을 이수한다. 그는 짧은 프랑스어 실력에도 공동수석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고, 르 몽드지에 역경을 극복한 인물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송 박사는 적지 않은 수의 동료들을 전도했다. 그는 “우리는 인간적으로 감동을 주거나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득시킨 다음 전도하려 하지만, 하나님 말씀 자체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일단 전해야 한다”며 “우리는 머슴 노릇만 하면 된다. 영혼을 바꾸시는 것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기도응답을 받은 비결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응답하신다”며 “포기하지 않고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계속 구하면 들어주신다”고 말했다. 미국 근무 시절 조지타운대 국제변호사과정에 입학했는데, 법과대학을 이수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곳에서 공부하기는 학교 설립 2백년만에 내가 처음이었다”며 이러한 일도 구체적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라고 밝혔다.
송하성 박사는 “기도는 꾸준한 호흡”이라며 특히 꾸준한 새벽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송 박사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전국 교회를 다니며 간증을 전하고 있으며, 그의 간증은 본지 ‘자랑스런 크리스천’을 통해 연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