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철학자들이 주목한 함석헌의 기독교 사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개신교 신앙원리와 민주적 저항정신을 수용했다”

				▲세계철학대회 유영모와 함석헌의 다양한 사상들이 연구 발표됐다. 둘째날 강의하고 있는 김경재 교수의 모습(왼쪽). ⓒ이대웅 기자
▲세계철학대회 유영모와 함석헌의 다양한 사상들이 연구 발표됐다. 둘째날 강의하고 있는 김경재 교수의 모습(왼쪽). ⓒ이대웅 기자

전세계 철학자들의 축제인 제22차 세계철학대회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의 기독교사상이 동서정신문화의 만남 등 다양한 의미에서 재평가됐다.

지난달 30일부터 5일까지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철학대회에서는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 씨알재단 주관으로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Thinking People Can Survive)’를 주제로 유영모와 함석헌 사상이 연구 발표됐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목암홀에서 이틀간 열린 강연은 뒤늦게 대회장을 찾은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거나 자료집을 받지 못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연구 발표는 ‘철학과 비전’, ‘유영모와 함석헌의 철학’, ‘유영모의 철학: 생명과 종교’, ‘함석헌의 철학: 정치와 평화’, ‘함석헌의 철학: 역사와 현실’ 등 총 5분과로 나눠 22개의 강의가 계속됐다. 씨알재단 측은 “유영모와 함석헌은 한국 근현대 문명사적 상황과 사명을 깊이 자각하고 주체적이고 세계적인 정신과 철학을 제시했다”며 “이들은 기독교 정신, 그리스 철학과 서구 근대철학의 이성적 사고, 동아시아의 도(道) 철학을 한국의 한(韓, 큰 하나) 정신으로 융섭해 깊은 영성과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민주적 생활 철학을 닦아냈다”며 이번 발표의 의미를 평가했다.

첫번째 강의를 맡은 박재순 소장(씨알사상연구소)은 ‘동서 문화가 만난 함석헌 철학’ 강의에서 동서 문명의 만남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졌으며, 그 중심에 기독교신앙과 함석헌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치열하고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던 함석헌은 일찍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에서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이 상호보완적이며 종합돼야 할 것임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또 함석헌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죽어서도 생각은 계속해야 한다’며 이성철학과 서구 민주주의를 주체적으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리스의 이성 이해는 ‘로고스’로 대표되며 계산하고 헤아리는 것에 국한되나, 함석헌의 이성 이해는 ‘땀 흘리는 노동’과 ‘사랑’을 강조하는 창조와 변혁의 이성이었다. 함석헌은 생각이 단순한 이론적 이성의 사변이 아니라 삶의 행위라고 보았으며, 실패를 맛보고 못난 줄을 알아야 살 길을 찾아 생각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는 또 논리와 윤리의 통합을 추구했고, 노동과 사랑 안에서 생각이 솟아난다고 봤다. 그는 이성과 신앙,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추구하면서 이성이 끝까지 제 구실을 다하고 나서야 신앙과 종교가 서고, 종교가 이성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해야 하며 종교는 이성과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기독교인으로서 함석헌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앙을 강조했고, 무교회주의였으며, 십자가를 지는 실천적 신앙을 추구했다. 무교회주의에 대해 박 소장은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무교회라는 명칭은 교회 제도와 전통, 형식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며 “종파의 울타리를 제거하고 신앙의 모든 특권과 전통을 거부한 함석헌은 없음과 빔의 세계에서 믿고 살았으며, 하나님은 버림과 무(無)에서 만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함석헌은 지난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함석헌이 추구한 민주주의는 △사랑의 전체주의 △자기부정과 섬김의 정치 △비폭력 평화 등이었다. 함석헌은 자유에서 시작해 평등에 이르려 했던 자유주의(자본주의)와 평등에서 시작해 자유에 이르려 했던 평등주의(공산주의) 모두 실패했다고 진단한 후 사랑의 전체주의, 즉 사랑 안에서 자유와 평등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함석헌 철학의 의미에 대해 “함석헌은 모든 제도와 형식, 전통과 억압에 대한 영적 저항을 추구한 개신교 신앙원리를 받아들이고 서구 근대사상의 이성적 비판정신과 민주적 저항정신을 수용했다”며 “그의 감성과 지성, 영성을 통전하는 사유와 생태학적 영성, 세계화와 인류공동체를 아우르는 철학과 해방의 영성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적·철학적 충격과 영향보다 더 크고 강한 흐름을 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의 강의 외에도 다양한 강의가 계속됐다.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교수)는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나선형적 역사관의 형성적 요소들’에서 함석헌의 역사적 실재관에 대해 “역사에 대한 사변철학으로서 거대 담론이 아니라 근대 서구열강들의 식민지 쟁탈과정에서 치열한 민중들의 고난의 현실을 장으로 삼고 삶의 의미와 고난역사의 뜻을 묻고 형성하는 치열한 생명론적·실존론적 역사철학”이라고 평가했고, 유석성 교수(서울신대)는 ‘함석헌의 평화사상’에 대해 “함석헌은 예수와 간디의 비폭력사상,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 노자·장자의 도가사상, 유가·맹자의 민본사상이 융화된 비폭력저항의 종교적 평화주의자였고, 이같은 비폭력무저항이 아닌 비폭력저항의 종교적 평화주의는 오늘의 세계갈등과 전쟁, 세계화의 역기능을 극복하고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데 빛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진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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