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인들 인식하던 당대 역사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먼저 이 글의 서두에 "스토리 라인에서 본 <장미의 이름> 읽기" 로 하고자 한다. <장미의 이름 (ll Name della Rosa)>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며 철학자•역사학자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 )의 1980년 작품이다. 이 책은 중세의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로 알려져 있고, 대학에서는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 에게도 고전 학문의 신천지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추천하는 필독서이기도 하다.<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 뿐 아니라 현대의 기호학 이론이 무르녹아있는 생생한 지적(知的) 보고서다. 이 작품이 세계적 귄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프랑스의 메디치상과 이탈리아의 스토레가상를 수상할 때 몇 군데 서평들이 책의 무게를 잘 말해준다.
"<장미의 이름>은 가히 만 권의 책이 집약된 결정체로서 독서량이 많은 독자일수록 이 책이 암시하고 있는 책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의 독자는 독서범위를 넓히면 넓힐수록 이 책에서 한번 봤던 부분을 재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그야말로 이 책은 '책중의 책' 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기호학적 추리력이 이루는 탄탄한 소설 구성과 조화는 <장미의 이름>을 이 시대 불멸의 문학작품으로 탄생시켜 출판과 동시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현재 40여개국어로 번역돼 읽히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쟈크 아노(Jean- Jacques Annd)가 숀코넬리 주연의 영화로 제작해 상업적인 면에서도 유례없는 성공작이 됐다. 이 작품의 이러한 무게 때문에 ‘스토리 라인’이라는 수식어가 불가피하게 됐다.
저자는 처음 이 책 제목을 <수도원의 범죄사건>으로 하려 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처럼 스토리 상으로는 14세기 유럽의 암울한 역사, 종교적 독선과 편견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누적돼 온 장미의 상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장미의 이름>으로 제목을 바꿔, 수도원의 살인사건을 추적한 추리소설의 영역을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중세의 생활상과 세계관, 교단간 이단논쟁과 종교재판, 수도원의 장서관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중세인들이 인식하던 당대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살인 사건의 스토리는 수도원의 한 젊은 수련사 아드소가 사부인 수도회 소속 윌리엄과 함께 황제가 내린 임무를 갖고 베네딕트 수도원에 도착해 일주일 동안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장서관에 근무하던 수도사 아델모의 살인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아델모 죽음의 원인을 추론해 가는 과정에서 다음 날은 그리스어 번역가인 수도사가 혀가 검게 변색된 채 또 시체로 발견되고, 다음 날은 보조사서 수도사가 또 죽는다. 윌리엄은 그들의 원인 모를 죽음이 장서관과 관련이 있다고 추론하고, 그 곳으로 잠입한다. 그곳의 규모와 미로같은 구조가 윌리엄이 했던 추론의 정확성을 뒷받침해 주는데, 장서관에서 이상한 책을 발견했다는 수도사 한 사람이 또 시체가 된다. 그는 손가락과 혀가 동시에 검게 변한 채 죽어간다. 결국 그들의 죽음의 진상은 '아프리카의 끝' 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서관의 한 밀실에서 해결된다.
윌리엄이 그 곳에 들어갔을 때 늙은 수도사 호르헤가 있었다. 그는 40여년 동안 수도원의 주인 행세를 해 온 사람으로서 이단으로 금지된 '한 책'에 수도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온 사람이다. 그 한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 제 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었다. 거기에는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 라고 쓴 부분이 펼쳐 있었다. 아델모를 비롯한 다섯명의 수도사들은 모두 이 책을 읽고자 접근했고, 시학을 이단으로 인정한 호르헤가 책에 묻혀둔 독으로 살해된 것이다.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았던 헬레니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을 통해 문학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시학은 문학이론서의 대표적 고전으로 오늘날 까지 읽히고 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 교회와 주교들이 문학을 포함한 예술 전반에 걸쳐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를 잘 말해준다. 예술은 바로 그 본질에 있어 악마적이라는 생각,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돌아서게 한다고 본 것이다.
내가 <장미의 이름>을 읽은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선명한 두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에코의 창작노트를 소리내 읽었던 일이다. "화자는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마련하지 말아야 한다. 작품이 끝나면 그 작가는 죽어야 하고 죽음으로서 그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않아야 한다." 에코의 말이다.
그리고 나는 저자에게 답이라도 하듯 성경 여러 곳을 소리내 읽었던 일이다.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춤추고 소고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 지금도 크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환호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였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
-송영옥 박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