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솔베이그의 노래’를 느끼며
이따금 한여름날 만년설로 뒤덮인 노르웨이의 산하에서 불어오던 바람을 생각한다. 학기를 다 끝낸 한가로운 나의 시간이 지루한 장마와 맞물려 낮은 하늘처럼 가라앉아 있을 때, 백야의 하늘 아래서 리듬을 타던 귀엽고 사랑스런 푸른 나무숲이며, 무성한 잎들이 바람에 장단을 치며 리듬을 만들던 그 밤을 생각한다. 그러노라면 빗줄기는 표르드 해안으로 흘러들고 나는 발밑에서 찰싹거리는 표르드의 숨소리를 듣는다. 이 순간은 세상을 관통하는 삶의 그 흐름이 밤낮없이 나의 혈관을 통해 흐르며 춤을 추는 시간이다.
남북의 직선거리가 겨울만큼 긴 노르웨이는 국토의 삼분의 일이 북극권에 들어있어 알래스카와 같은 위도의 북쪽 끝에 있지만, 멕시코 만류의 덕택으로 위도에 비해 연중 따뜻하다. 때문에 노르웨이는 어느 계절에 찾아가도 그 자연이 싱싱하고 새롭고 아름답다. 눈이 녹으며 찾아오는 봄, 꽃은 저마다 향기를 뿜으며 다투어 피어나고 태양이 지지 않는 긴긴 여름의 백야는 신비롭다. 가을은 짧고 아쉽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우수어린 북극의 긴긴 겨울이 시작된다.
비록 겨울 여행에 불편함이 없을지라도 나는 입센(Henrik Ibsen, 1826-1906)의 축제가 한창인 여름날에 이 땅을 밟으라고 권하고 싶다. 덴마크 쯤에서 먼저 베르겐으로 날아가 보라.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오슬로까지 7시간의 산악열차 여행을 해 보라. 이 두 도시의 해안선들은 그야말로 그리그의 피아노 콘체르트의 세계를 닮아있다. 오슬로의 여름 축제는 입센의 극으로 막이 오르고 그리그의 음악으로 무르익어 이 나라의 여름을 가장 예술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리그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입센의 오막극 페르퀸트와 상생하고 있는 그리그의 조곡 중 솔베이그의 노래다. 격정과 모험의 소용돌이를 헤쳐나올 수 없었던 패륜아 페르퀸트는 결혼식장에서 남의 신부를 유괴하여 산으로 달아난다. 산의 마왕과 계약을 하고 환락을 쫓던 중 산골소녀 솔베이그를 만나 헌신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페르퀸트는 곧 그녀를 버리고 공상적 여행을 떠나고 화려하고 긴 애정 행각에 수많은 여인들이 명멸해 간다. 모로코, 아라비아, 캘리포니아를 전전, 거부가 되어 귀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배는 난파되고 늙고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솔베이그는 백발이 다된 채 그때까지 페르퀸트를 기다리고 있다.
노래의 우리말 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듣노라면 한 여인의 순애의 정절이 절절하다. 세월을 따라 모든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은 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예술의 속성 때문이다.
그 여름, 나는 솔베이그의 노래의 산실을 찾아갔다. 부슬부슬 비가 뿌렸다. 우산을 쓰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서 베르겐 항구를 한 바퀴 돌아 그리그의 집 앞에 섰을 때 옷은 흠뻑 젖었고 낮게 가라앉은 음울한 하늘이 마음까지 적셨다. 항구의 갯내음이 진했다. 몸과 맘이 시리고 아파왔다.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을 지나 끝으로 뾰족한 첨탑에 회색 기와를 인 작은 오두막집이 보였다. 바로 그곳이 ‘솔베이그의 노래’의 산실이다.
하얀 창문이 달린 목조 가옥, 작은 단칸방은 온통 ‘솔베이그의 노래’로 가득차고, 절절한 그리움이 사랑스런 나무들 사이로 흘러갔다. 연주를 듣다가 고개를 드니 그리그도 무대 뒤에 흉상으로 서서 자신의 음악을 듣고 있다. 바람이 숲을 흔들 때는 안개 속으로 베르겐 항구가 보였다. 물가 언덕으로 베르겐 특유의 회색 기와지붕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 밤, 오랜 시간을 나는 그리그의 작곡실 뜰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언덕 밑으로 흘러가는 표르드의 숨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예술성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의 속성을 사랑이라 하자. 그래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예술은 사랑이 된다는 생각, 이것은 나만의 공식(?)일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바로 어제 흐르기 시작한 물처럼 예술이 싱싱한 것은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생명력 때문이다. 사랑은 내밀한 그리움이며 끝없는 기다림이다. 자연의 먼지를 통해서도 환희를 만들고 무수한 풀잎이 되며 흥청거리는 꽃물결로 삶을 이끈다. 그리고 사랑의 또 하나의 얼굴은 그리움이다. 그래서 품고 사는 사람들의 혈관 속에서만 춤을 추는 생명의 고동이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懊 囚닳 곳에서 懊 뜨닳 곳까囚>, <閃 囚구를 떠돌고 쏀덛>,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대신대에서 기독문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