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목회자들, ‘죽을 권리’ 판결에 회의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법원이 더 신중했어야”

법원이 최초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목회자·신학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들은 생명을 다루는 일은 좀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번 판결이 법원의 안락사 전면 허용 취지가 아님에도 일부 언론들이 이를 과장 보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억지로 생명을 유지하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이승구 교수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까 걱정”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대체로 이번 판결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승구 교수(국제신대·조직신학)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하는데, 신학적으로 생명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며 “각 병원 의료윤리위원회 같은 곳에서 엄밀하게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안락사 시도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 교수는 “쓸데없는 치료를 지속하는 일, 그냥 놔뒀을 때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으면 돌아가셨을 것을 지나치게 치료해 그 사람을 살려놓는 일의 경우에는 다를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도 “그럴 경우에도 이 경우가 그런 경우라고 함부로 얘기할 수 없으며, 그럴수록 따져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상원 교수 “이 판례와 소극적 안락사는 달라”

이상원 교수(총신대·기독교윤리학)는 논의에 앞서 섣부른 해석을 경계하며 “이번 판결과 소극적 안락사는 구분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판례의 경우 인공호흡기를 떼면 호흡이 중지되는 환자이기 때문에 소극적 안락사와는 구별되는 사례임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번 판례를 소극적 안락사의 문을 여는 판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세 가지 관점에서 이번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다. 먼저 환자 자신의 의사결정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환자 가족들이 이럴 경우에 이렇게 하겠다고 환자의 평소 모습을 추정해서 판단했는데, 이는 명백히 대리판단을 한 것”이라며 “대리판단은 아무리 잘 한다 할지라도 환자 자신의 의사권과 동일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둘째로는 신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적어도 뇌의 기능과 관련해서 얘기한다면 불가역적인 뇌사상태가 분명히 이뤄져야 하고, 사실 뇌사상태를 판단하는 것도 오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1-2주일 이내 생명이 정지될 것이 명확해질 때 판단하는 것이 안전하다”며 “아직 환자가 뇌사상태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이를 먼저 판단한 것은 조금 성급한 면이 있고, 적어도 인간의 생명은 절대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보수적인 입장에서 이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법원 판례는 일단 무의미한 치료 중단의 경우에 들어갈 수 있다 해도 법원 판결이 신중했느냐, 적절했느냐의 문제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로는 법원 판결이 너무 성급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법원은 (환자가) 뇌사상태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성급한 결정”이라며 “왜 조금 더 기다려서 불가역적인 뇌사판정이 될 때까지 참지 못했는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일단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며 “안락사는 당연히 허용돼서는 안 되고,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도 사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영양공급을 끊어서 굶어죽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의학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황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시면 회복될 수도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다 해도, 중요한 것은 소극적 안락사와 진료 중단은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억주 목사 “찬성도, 절대반대도 문제 있다”

이억주 목사(교회언론회 대변인)는 “사실 외국 기독교 국가들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생각할 때 (죽을 권리를) 인위적으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안락사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논하기 이전에 이 문제 자체가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 목사는 “찬성하는 입장도 아니지만, 절대 반대하는 입장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사실 안락사는 비용 문제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고려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인간이 생명에 대한 것, 태어나고 죽는 것까지 주관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 “의학으로 생명연장, 하나님 뜻일까?”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는 안락사와는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자살도 타살도 죄악으로 인정하는 입장에서 안락사를 그런 부류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 김 목사는 “억지로 생명을 연장해서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고 말을 꺼냈다.

김 목사는 “인간이 여러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남의 장기를 이식하거나 여러 방법으로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것이 옳은 것일까 혼자 생각해 오고 있다”며 “죽을 때가 되면 조용히 죽는거지 이 방법 저 방법 동원해서 1백살 넘게 사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어 “이게 안락사와 연결될 수도 있고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생명을 억지로 연장시키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성경에 나온대로 우리의 년수가 70이고 강건하면 80이지 그걸 어떤 때는 고통스러운 방법까지 동원해 연장시키는 것이 하나님 뜻일까 생각해 본다”고도 했다.

이상원 교수도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행위에 대해 “의학적으로 치료가 가능해야 하고, 회복이 가능하다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서도 “치료를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임을 피할 수 없을 경우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안락사 문제와 관계없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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