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안락사 허용’, 같은 사건·다른 판결 논란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지난 7월 10일 가처분 청구는 기각돼… 판사 따라 결과 달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28일 ‘안락사 허용’ 판결이 내려졌지만, 김모 씨 자녀들이 최초로 신청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가처분’은 지난 7월 10일 같은 서부지원에서 기각된 바 있다. 결국 판사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갈린 것으로, 불과 몇 달 전의 판례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기독 법조인들과 윤리학자들은 지난 7월 김건수 판사의 ‘무의미한 연명치료행위 중지 등 가처분’ 기각판결문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건수 판사는 “소위 ‘식물인간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항생제 투여 등의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에 대해 그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행위의 중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안 사안에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없다거나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 본인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도 없다”는 취지로 김모 씨 자녀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문은 “무릇 의료행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승낙에 의해 시작되고 종료되므로 의료행위에 있어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돼야 하고, 환자가 자기 결정권에 기초해 의료행위의 계속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더 이상 그 의료행위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전제했다.

판결문은 이어 “생명권은 인간존엄성의 기초를 의미하는 절대적 기본권이고,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생명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비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법익”이라며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서 환자가 사망하거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결과에 이른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제한 인정될 수는 없다”는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28일 판결에서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하면”이라는 조건 아래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인정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보편적인 생명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판결문에는 이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대적 생명보호의 원칙을 고려할 때 그와 같은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생명에 대한 포기권 또는 처분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김건수 판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계속해서 주목했다. 환자가 의식불명상태에 있어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 의사표시가 없거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도 있다고 판결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관계없이 △환자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인 판단 기준이나 생각에 따라 함부로 의사를 추단하거나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관계없이 함부로 그 의사를 추단하거나,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환자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에 그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함으로써 환자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의견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쟁점이 된 환자의 의사표시에 대해서도 가처분 기각판결에서는 28일 있었던 허용 판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김건수 판사는 먼저 “의식불명상태의 환자가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거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자의 생전 의사표시, 질병 등에 대한 환자의 태도, 종교적 신념, 개인적 가치관 등을 종합해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도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추정적 의사라 함은 일반적·추상적 의사가 아니고 특정한 상황에서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사를 의미하며,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때는 환자 가족들의 개인적인 판단 기준이나 생각에 따라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관계없이 함부로 추단하거나,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주변 사람들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에 그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 치료를 계속할 경우 환자의 상태 변화, 환자가 받게 될 통증·후유증 등도 종합해 객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의사를 추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8일 재판부는 ‘평소 환자의 의사표시’ 등을 고려해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를 추정했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도 두 재판부는 다른 의견을 나타냈다. 김건수 판사는 “소위 ‘식물인간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정도의 개안 반응이나 비정상적인 굴곡 반응만을 할 수 있고 동공 및 각막의 반사 반응과 언어 반응 등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사정만으로는 환자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혹은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없는 것이라 단정할 수 없고,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 본인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도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28일 재판부는 지난 9월 병원 현장검증까지 실시하면서 회복 가능성을 따지고,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 환자 회복 가능성 의견을 구한 결과 “회복 가능성이 전무하다”며 인공호흡기를 떼도 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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