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고통완화 조치” vs “살인하지 말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NCCK 생명윤리위 논의… 조재국 세브란스 원목실장도 참석

▲왼쪽부터 김희헌 교수, 노경신 목사, 박일준 교수, 강성호 간사. ⓒ이대웅 기자

▲왼쪽부터 김희헌 교수, 노경신 목사, 박일준 교수, 강성호 간사. ⓒ이대웅 기자

NCCK 생명윤리위원회가 ‘안락사와 존엄사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27일 오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노경신 목사(여성목회자연구소장) 사회로 진행된 협의회는 권오성 NCCK 총무의 인사말에 이어 박일준 교수(감신대)의 발제와 김정범 대표(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희헌 교수(한신대), 강성호 간사(기윤실)의 논찬,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권오성 총무는 “이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협의회를 통해 적절한 방향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일준 교수 “모래 위에 금 긋기처럼…”

박일준 교수는 다소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으로 논지를 전개한 발제에서 “적어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해 우리는 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계는 주체의 관점에서 바로 그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를 기준으로 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삶은 언제나 ‘나의 삶’이기 때문에, 결국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엄한 삶을 정의할 객관적이고 외적인 기준을 세워나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논리다.

▲박 교수는 “우리가 전통적 삶의 구조에서 그어 놓았던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져내리는 지금 상황은 우리의 개념 자체가 바닷가 모래 위에 금을 긋는 것과 같은 일임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박 교수는 “우리가 전통적 삶의 구조에서 그어 놓았던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져내리는 지금 상황은 우리의 개념 자체가 바닷가 모래 위에 금을 긋는 것과 같은 일임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박 교수는 이어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사회일반의 논의들을 소개했다. 특히 적극적(active) 안락사와 소극적(passive) 안락사의 구분을 중요시했다. 이 둘의 차이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면 적극적 안락사는 환자를 ‘죽이는 것(to kill)’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to let it die)’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말기 암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고통의 시간을 줄여줌으로써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과, 단순히 인공호흡기의 스위치를 끄는 행위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있는 경계가 될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죽음의 고통이 엄습해오는 순간, 그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모두 사망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비윤리적으로 비판하기는 어렵고, 많은 말기환자들의 남은 인생의 목표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는 것’임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러한 환자가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고 치료를 거부할 때 이는 존중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지난 2007년 기윤실 강성호 간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안락사 논쟁의 핵심은 ‘생명의 종결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신앙고백과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여부”라며 안락사 문제는 ‘인간답게 살(혹은 죽을) 권리’와 ‘생명의 신성성 원리’의 대립이라고 강조했다. 기윤실은 지난 2007년 ‘소극적 안락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강 간사는 “이미 명칭에 가치판단이 내재돼 있는 ‘존엄사’ 명칭 문제, 법원 판결에 등장했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의 전제조건 등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과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며 “준비된 답변이 없다면 사회에서 논의된 존엄사 법안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준법의 요구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재국 세브란스 원목실장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

이날 협의회에는 특히 존엄사 논란 한복판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원목실장인 조재국 교수도 참석했다.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존엄사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논의의 필요성’을 촉구했던 조 교수는 질의에서 “목사로서 세브란스 문제를 지나치게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로 질의를 시작했다. 존엄사나 안락사 문제에 대해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이 채 정립되지도 않은 채 사회적 논의에 휘말림으로써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가 발제문을 검토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조 교수가 발제문을 검토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조 교수는 “병원에 있다보면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무수히 있고, 병원은 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이런 환자에게 치료하는 것을 ‘무의미한 연명치료’라며 ‘무의미한’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우선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던 故 NCCK 김동완 총무의 치료사례를 다시 언급하며 “식물인간 상태로 한 달간 그 분이 병원에 있었지만 모두 그 분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기도하고 문병했다”며 “당시 그 분의 연명치료행위를 ‘무의미하다’고 얘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환자의 가족들이 제기해 이슈가 된 이번 소송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조 교수는 “이번 사건은 의사들이 포기할 정도가 전혀 아니며, 꼬집으면 반응이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있고, 설사 모두가 죽었다고 해도 의사는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식물인간 상태부터 죽음에 대한 논의를 해 나가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이식 전에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병원에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생명의 문제를 개인의 삶의 문제나 존엄성 문제로 보지 않고, 지나치게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따져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나 생각한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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