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 1.5세에 대한 관심과 배려 필요해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  

VT 사건을 통해 본 교회 내 1.5세대의 현실

▲헤브론교회 강진웅 목사

▲헤브론교회 강진웅 목사

버지니아 공대 총격 참사를 일으킨 조승희씨(23세)가 8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을 건너온 1.5세 청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년 목회자들은 1세와 2세에 ‘낀 세대’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1.5세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교회는 1.5세 청년들에게 한국어와 영어 모두 가능하다는 점에서 1세와 2세를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기대하지만, 정작 교회 내에서는 1.5세를 위한 사역이 거의 없고 이들의 헌신과 봉사가 ‘찬양팀’ ‘영상팀’ ‘주일학교교사’ 등으로 1세가 할 수 없는 사역에만 편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 온 1.5세 목회자인 박상목 목사(가주주님의교회)는 “1.5세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교회에서 조차 1.5세를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에 영어를 아예 잘해서 2세로 가던가, 1세로 편입하는 게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이다. 영어권 사회에서 공부하고 일을 하더라도 교회에서는 1세가 할 수 없는 사역의 한 부분을 맡으며, 1세로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민 1.5세로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박 목사는 “대학생이 되면 가장 힘든 부분이 ‘자기 정체성’ 문제다. 3, 4학년이 되면서는 ‘내가 마이너리티로서 변두리에서 살아가야만 하는지’, ‘결혼은 어떻게 할지’ 등 고민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갈등과 혼란을 느끼고 패닉상태에 빠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정하 목사(올림픽장로교회 청년담당)도 “1.5세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대학이나 사회에 가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너는 어디서 왔니?’이다. 부모님들은 바쁘게 일해서 자녀들 교육에 애쓰지만 정작 자녀들이 이런 정체성 혼란을 느낄 때 대화하고 고민을 나눌 대상이 없다면 자기 안에 고립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강진웅 목사(헤브론교회, 전 영락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는 “한 예로 한 학생이 집에서 컴퓨터게임만 한다고 부모님이 걱정돼서 억지로 교회로 끌고 나온 경우가 있었다. 이 학생과 상담하고, 유년부 학생들과 어울리게 했는데 무척 활발하고 운동도 잘하는 정상적인 아이였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낯선 환경에 와서 친구 없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립상태, 외톨이가 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을 등지고 자녀교육을 위해 맨손으로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 1세대는 밤낮없이 일하고 희생하며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주류사회에 편입시키는 것을 ‘제 1의 인생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간 ‘친밀감’ 없이 지속되는 관계는 자칫 양측에 모두 뿌리깊은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박상목 목사는 “이번 사건을 저지른 조 군도 버지니아 공대에 들어갈 정도면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말이 없고 이상행동을 해도 공부를 잘하니 괜찮아 지겠지 안심을 했을 것이고, 조 군 입장에서도 부모가 자기 때문에 고생하니까 적당히 공부하고 어느 정도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부모와의 갭이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라는 곳은 메이저와 마이너리티가 확실히 갈리는 곳이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에 대한 반항심, 분노가 쌓였을 것인데 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쌓였던 것이 순간 돌출행동으로 폭발한 것 같다” 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강진웅 목사는 “가정도 문제지만 그 갭을 메워줘야 하는 교회에서 조차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문제다. 부모는 장년부 활동에 치중하고, 자녀는 유년부, 청년부에만 있다 보면 같은 교회를 다녀도 신앙에서 조차 마음이 통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전정하 목사는 이에 대해 “또 지금 한인교회의 시스템으로서는 1.5세 청년들의 인력을 ‘청년을 위한 사역’에만 쓸 수 없게 한다. 1.5세 청년으로 헌신하는 이들도 적지만, 대부분의 경우 1세가 만들어 놓은 사역의 일부에 헌신하게 하지 이렇게 방황하는 청년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청년을 전도할 수 있는 건 장로님도 권사님도 아닌 ‘청년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청년을 위한 사역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체성을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 시급하고, 가정에서 해줄 수 없는 부분은 교회에서 맡아야 한다고 세 목사는 입을 모았다.

강 목사는 이에 대해 “바쁘게 일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교회 교사나 교역자들은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학교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줄 뿐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부모님에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청소년들이 교회 안에서 원활한 사회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했다

박 목사는 “우리 교회들이 이런 청년들을 따뜻하게 품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봉사하고 희생했는데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지나갔던 1.5세 청소년, 청년들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교회에서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전정하 목사는 이에 더해 “이민 1세대는 지금까지 눈물로 이뤄놓은 신앙의 유산을 1.5세와 2세들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한걸음 물러나, 청년들이 이 터전 위에서 튼튼한 신앙의 뿌리를 갖도록 양보해야 한다. 1.5세가 재정적으로는 당장 도움이 안 되는 그룹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들이 교회를 이끌어갈 재목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투자하고, 헌신된 젊은이들이 또 다른 젊은이를 인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전정하 목사는 또 “한국인, 미국인을 뛰어넘는 ‘코리안 크리스천’으로서의 제대로 된 가치관을 심어주고, 이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에 힘써 부모와의 대화가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1세대가 가진 훌륭한 영적 유산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교회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웅 목사도 “이번 사건을 통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돼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됐다. 더 적극적으로 아웃리치해서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교회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단절된 대화를 유도하는데 힘쓸 예정이다. 또 미국사회도 이를 계기로 이민자들이 겪는 사회병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상목 목사는 마지막으로 “오직 예수를 믿고 신앙을 갖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임을 다시 한번 깊이 느낀다. 이번 사건을 놓고 교회 안에서 1.5세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진지한 토론과 대화로 이들의 자리를 마련해주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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