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개신교는 교세 확장만 했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신학자들, 국사교과서 내 ‘자기 몫 찾기’ 시도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금성출판사)의 개신교 서술에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해 부분 개정을 이뤄냈던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가 이번에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나타난 개신교 서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박 교수는 1일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가 주최한 제13회 영익기념강좌 ‘한국 역사교과서에서 나타난 종교서술의 문제점’ 발제에 나서 “늦었지만 개신교가 국사 교과서에서의 자기 몫 찾기에 나서야 한다”며 “이 자리가 작은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현행 교과서의 개신교 설명, ‘불공정·불충분’

▲박명수 교수는 국사 교과서의 역사적인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이대웅 기자

▲박명수 교수는 국사 교과서의 역사적인 변천 과정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이대웅 기자

2백여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서울신대 성봉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강좌에서 박 교수는 “국사 교과서는 제3차 교육과정 개편(1974년) 이래 국가기관이 편찬하는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 교과서”라며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현행 국사 교과서는 한국 개신교를 다른 종교에 비해 충분하게도, 공정하게도 설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민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사실을 왜곡·축소해서는 안 되는데도 근본적으로 한국 국사학계가 기독교를 외래종교로 인식하고 소위 ‘내재적 발전론’을 내세워 개신교가 한국 근대사에 미친 영향을 왜곡·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같은 ‘개신교 홀대’가 제3차 교육과정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국정목표 중 하나인 소위 ‘국적있는 교육’ 때부터 탄생됐다고 분석했다. 국사를 사회과에서 독립시키고, 민족주의적 요소를 강화시켰다는 얘기다. 앞서 비교종교학 관점에서 발제한 유요한 교수(서울대 종교학과)도 “민족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종교의 보편성이 완전히 간과돼서는 안 된다”며 “종교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이 민족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학생들이 종교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 교수는 “모든 종교를 단지 수량적으로 균등하게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국사 교과서는 종교를 공평하게 다뤄야 한다는 전제 아래 근대 사회의 모든 종교를 한두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종교의 역사적 중요성과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고려시대가 불교, 조선시대가 유교 중심으로 서술될 수 밖에 없다면 근대사회에서 개신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중요하게 취급받아야 할 것”이라며 “이는 개신교가 한국 근대사회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행 국사 교과서에는 근세를 다룬 4장까지 단군신화와 전통종교인 불교와 유교, 풍수지리와 도참사상 같은 민간신앙을 상세히 설명하고, 전통적인 근대사회의 해체를 다루면서 동학과 천주교, 예언사상 등을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5장 근·현대문화 부분부터 갑자기 종교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개신교 주도했던 3·1운동도 천도교 주도로 나와

▲유요한 교수는 “역사 교과서는 흔히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제공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밖에 없는데, 한국사 교과서는 학생들이 종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유요한 교수는 “역사 교과서는 흔히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제공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밖에 없는데, 한국사 교과서는 학생들이 종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종교별로 비교해 보면 ‘개신교 홀대’는 더 뚜렷해진다. 먼저, 초기에는 한국 근대사의 종교를 논하면서 개신교와 천도교를 중심으로 설명했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모든 종교를 다 포함시키고 있다. 개항기 근대사에서 가장 많이 활동한 종교가 개신교와 천도교인데도 민족종교에 대한 강조가 이뤄지면서 대종교가 편입되고, 최근에는 유·불교도 언급되고 있다.

또 처음에는 다른 종교들의 경우 공과(功過)를 다 언급했으나, 최근에는 부정적 서술을 삭제해 버렸다. 동학의 초창기 친일 행각, 대종교의 보수성, 유교의 반근대성, 불교의 친일성 등은 원래 긍정적인 모습과 함께 설명됐으나 모두 삭제됐다. 그러나 개신교만 반대로 긍정적인 요소들은 시간이 가면서, 또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삭제되고 종교적 측면만 부각되고 있다.

이 근거로 박 교수는 지난 1968년 이원순 교수가 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들었다. 여기에는 기독교에 대해 “우리 민족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했으며, 자유와 평등을 한국사회에 알려준 종교”로 묘사하고 있으나, 현재 교과서에는 단지 교세를 확장했다는 설명만 하고 있다. 유 교수는 이에 대해 “좌파적 역사관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호 단절”이라며 “현재 국사 교과서는 이같은 역사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3·1운동에 대한 설명에서도 천도교와 개신교가 함께 있었지만 7차 교과서에서 개신교만 빠졌고, 개신교가 애국 계몽운동과 민족운동을 한 부분도 삭제됐다”고 덧붙였다.

비교종교학 관점에서 발제한 유 교수는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 △종교를 선사시대 및 고대의 전유물로 오해할 수 있고 △종교의 모든 행위가 정치적 의도와 경제적 목적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유 교수는 “선사시대 부분에는 ‘자연과 영혼에 대한 생각’을 독립된 항목으로 다룰 정도로 종교가 삶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것처럼 기술하면서 현대에는 종교와 관련된 서술을 소략하거나 아예 빼버리고 있다”며 “이런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종교가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옛 사람들의 유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의료·교육·문맹퇴치사업도 단지 ‘선교’만 위해?

▲이날 강좌는 ‘교과서 문제’인 만큼 신학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인 장년층 성도들도 많이 참석해 관심을 나타냈다. ⓒ이대웅 기자

▲이날 강좌는 ‘교과서 문제’인 만큼 신학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인 장년층 성도들도 많이 참석해 관심을 나타냈다. ⓒ이대웅 기자

특히 금성출판사에서 발간한 근현대사 교과서의 경우 의료·교육·문맹 퇴치 사업 등 개신교의 여러 활동들을 모두 ‘선교를 목적으로’ 라는 단서를 붙여 학교와 고아원을 운영하고 병원을 세운 것이 모두 ‘교세 확장’을 위한 수단처럼 기술되고 있다고 유 교수는 밝혔다. 그는 “이는 개신교가 이상적으로 지향하는 사랑과 섬김, 봉사 등이 동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애초부터 부인하는 것”이라며 “개신교가 오직 이데올로기적이고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움직인 것처럼 보이도록 진술해 종교 자체로서 갖는 힘이 무시되는 결과를 야기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논지를 정리하면서 개정될 교육과정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국사를 세계사와 관련시켜 세계 속의 한국인을 형성하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는 우리 민족과 다른 민족의 대립 속에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던 과거의 교육목적과는 매우 다른 것”이라 반기면서도 “그러나 위에 제시한 목표와는 달리 한국이 세계와 교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개신교의 역할을 언급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개정 교육과정 목적에는 지지를 보내면서 △역사교과서에 개신교를 소개하는 항목을 신설할 것 △근대사회의 종교 설명에서 역사적 중요도를 고려할 것 △개신교를 공정하게 설명할 것 △개신교가 한국에 근대문명을 소개한 것을 보다 사실적으로 설명할 것 △개신교가 민족운동·민주화운동에 공헌한 것을 분명히 기록할 것 △종교문제를 다룰 때 시대상황과 종교정책, 종교의 역할과 종교인구 분포 등을 설명해줄 것 등을 요구했다.

13회째를 맞은 영익기념강좌는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설립기금을 기증한 故 김영익 집사를 기념해 지난 1997년부터 매년 봄 열리는 학술강좌로, 저명한 학자들을 초빙해 한국교회 및 복음주의운동의 최근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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