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보며, ‘죽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인터뷰] 존엄사 관련 한기총 논평 기초한 한기채 목사

▲전 기독교윤리학회 회장이자 존엄사 관련 한기총 논평을 기초한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 ⓒ 송경호 기자

▲전 기독교윤리학회 회장이자 존엄사 관련 한기총 논평을 기초한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 ⓒ 송경호 기자

4월 10일은 성금요일, 주님께서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날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 각지에서는 지금 ‘죽을 권리를 달라’는 외침이 들려오고 있다. 이번에 ‘존엄사’ 소송으로 갑론을박하고 있는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존엄사 법안’ 제정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생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이 법안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교계에서의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 법안을 우려하는 한기총의 논평을 기초한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전 기독교윤리학회장)는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생명은 분명 존엄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하지만 딜레마는 죽음도 존엄하게 맞아야 한다는 거에요.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 바로 주님이 하셨던 ‘겟세마네의 기도’입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찾는 존엄사 해법

“‘의미있는’ 죽음도 필요하죠. 물론 ‘의미있는’이라는 단어가 혼동을 일으켜서는 안 돼요. 모두에게 선물과도 같은 죽음이 돼야 합니다.”

한기채 목사에 따르면 겟세마네에서 하셨던 예수의 기도에는 ’생명의 존엄성’과 ‘의미있는 죽음’이라는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에서는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지지만, 이어지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이상 마 26:39)’에서는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그 죽음 자체를 의미있게 만들었다.

“이 기도가 없었다면, 예수의 죽음은 억울한 죽음일 수도 있었습니다. 타살로 느껴질 수도 있었죠. 생명을 함부로 포기했다고 생각될 부분도 있어요. 그렇다면 온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자살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존엄사를 비롯한 안락사 등 생명윤리를 바라보는 기독교적인 기준을 여기서 발견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에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윤리

한기채 목사는 이를 설명하면서 ‘예수의 광야 시험’을 예로 들었다. “시험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돌을 떡으로 만들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 ‘내게 절하라’는 마귀의 시험은 모두 이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이 되는 것이거든요.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힘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신 것’에 있었죠.”

능력이 있지만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는 설명이다. “많은 권한과 기술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일들이 얼마든지 가능해졌지요. 하지만 우리가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나 윤리 원칙에 서서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윤리’가 필요합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연구도 필요하지요.” 이를테면 최근 발견된 ‘기억 편집기술’ 같은 유전자 성형이나 배아 파괴의 결과를 초래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등을 그는 예로 들었다.

“북한 미사일 문제도 그런 것이지요.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것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공공의 이익과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기독교적인 가치에 부합하도록 활용하게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바울 사도도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고전 10:23). 저도 담임목사로서 많은 권한이 있지만 그것을 다 써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의료계에서 통용되는 ‘미끄러운 경사면의 원리’

한기채 목사는 이번 존엄사 법안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의료용어 중에 ‘미끄러운 경사면의 원리(The Slippery Slope)’라는 게 있어요. 경사면에 어떤 물체를 올려놓으면 미끄러져 내려오잖아요? 하나를 허용하면 경사면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듯 다른 것도 허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면 적극적 안락사도 인정될 소지가 크고, 뇌사를 인정할 때 식물인간도 결국 사망으로 인정한다는 거에요.”

그는 낙태 문제를 꺼냈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이지만, 모자보건법상의 예외적 허용조항 때문에 거의 합법화됐지요. 낙태하면서 의사가 이것이 ‘예외적 허용 케이스’라고 보고만 하면 그만입니다.” 존엄사 문제도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교묘하게 소극적 안락사, 그리고 적극적 안락사까지 합법적으로 시행되는 길이 열린다는 말이다.

현재 존엄사 관련 논쟁에서 사회·경제적인 고려가 많이 들어가 있는 점도 지적했다. “가족들로서는 의료비 부담이 많은데 지불능력이 없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요. 말기 환자들은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요. 병원에서 보면 가뜩이나 의료시설이 부족한데 말기 환자들이 다 누워있으면 의료자원상 문제도 생길 수 있고, 이런 부분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이 물질주의와 맞물려 경시되는 풍조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전혀 안 된다고 하기가 어렵지요. 그러니 법이 어느 정도 기준을 세워주되, 집행할 때는 굉장히 신중해야죠.” 그는 “살 권리는 있지만, 죽을 권리는 무한하게 인정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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