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사랑의 향기, 그리고 삶의 불꽃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도대체 내 속에 이는 이 그리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송영옥 박사.

▲송영옥 박사.

벌써 여러 날 해가 질 무렵이면 습관처럼 꽃나무 울타리가 쳐진 작은 길로 나와 마음을 달래곤 한다. 길은 수목 사이의 산책로로 이어지고 양 옆으로 높은 언덕이다. 인근 전체에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사실은 숲인지 길인지 구분이 안 된다. 언덕을 넘으면 풀을 베어낸 목장이다. 이 시간에는 목초지까지 무르익는 저녁 빛으로 가득해 하나의 우주처럼 보인다. 잠시 발을 멈추면 저녁 빛에 물든 하늘이 내 머리 위에서 진홍색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속에 고인 그리움이 함께 타오르는 것이다.

나는 목초지 끝 닿는 벌판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도대체 내 속에 이는 이 그리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예측할 수 없는 풍랑처럼 찾아오는 것, 붙잡아서 형태를 보여줄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의식의 일부가 되어 나를 뒤흔들어 놓는 이 생명감의 실체, 그것은 마치 오래동안 내가 생명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처럼 친밀감을 느끼게 만든다. 미적 정서의 혼합감정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 감정은 그에 의해 신선해지고 또 고양되는지도 모르겠다.

숲 속으로 좀더 들어가면 둥지를 찾아든 새 소리들이 요란스럽다. 새들은 다투어 리듬감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그들 역시 음을 감(재료)으로 속내를 드러낸다. 아마도 무사이(mousai: 예술과 학문의 여신)가 새들에게도 음감을 부여하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새 소리를 듣는다. 한 줌 여유가 바람을 흔든다. 숲에서 향기가 난다. 그 안에 서서 귀를 기울이면 소리들이 셈과 여림을 반복하는 것을 느낀다. 높낮이가 있고 빛깔이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머리 위에는 별들이 하나 둘, 바람을 탐하는 숲의 향기처럼 퍼져간다. 바람 속에서 나뭇잎들은 때를 춤추듯 떨린다. 숲 속의 모든 것들은 알고 있다. 춤이 멈추면 시간이 지난다는 것을.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선율적인 색체에 어울려 영혼의 현을 울려준다. 그 속에서 내 그리움은 눈물겨운 기쁨이 된다. 당신은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춤사위처럼 우리의 시간들이 형태를 갖추고 함께 왔다.

나는 왜 당신을 생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비록 커다란 혼돈일지라도 태초의 카오스 같은 그 속에서만 그리움의 실체가 잡힌다고 느끼는 것일까. 당신에게 닿으려는 몸부림은 태초의 카오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넘쳐 흐르는 생명력으로 가득찬다. 이 육체로 살아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나는 찬양하고 싶다. 그 경이로움에 숨을 죽이며 늘 맞닿아있는 하늘과 땅을 본다.

어느새 달이 휘영청 밝는다. 나의 정면에 높이 걸려서 숲속 길과 언덕과 계곡을 눈부시게 가득 채운다. 여전히 의식을 꿰뚫고 들어온 거대한 생명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광대한 무한 속에 닿아있는 것 같은 존재감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의 자궁으로부터 창조된 우주의 근원적인 혼돈일지도 모르겠다.

무심한 카오스 속에 우리 가슴과 내장에 흡수된 태양빛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는가. 당신과 내가 낮에 빨아올린 비가 있고 그리움이 형상을 갖추는 시간이 있다. 사랑은 그렇게 중핵처럼 그리움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덤불 곁의 길로 걸어가서 흰 장미가 눈부시게 피어있는 곳에서 멈추어 선다. 부드럽고 상큼한 꽃잎은 아침과 햇볕을 생각나게 한다. 저녁별이 내리고 별빛으로 밝아질 때 까지 나는 오랜 시간 걸어왔다. 그리고 내일이면 또 다시 이렇게 들판을 가로질러 가며 미가목의 빨간 열매들이 어둠에 덮이는 것을 보려고 할 것이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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