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모독 금지안과 같은 맥락… 인권 제한 소지 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더반 검토회의)에서 지난 21일(현지시각) 채택된 반인종주의 선언문에 기독교 인권단체들이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인권을 희생하고 있다”며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 달 26일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이슬람 회원국들의 전폭적 지지로 통과된 종교 모독 금지안의 내용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이번 선언문은 인종적 또는 종교적인 차별과 모독, 폭력 행위를 반대하면서 특히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슬람 혐오증과 반아랍주의, 기독교 혐오증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회원국들의 엄격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불참 국가들을 제외한 183개 유엔 회원국에서 만장일치로 동의를 얻어 채택된 이번 선언문은 사실상 국제법의 지위를 지닌다.
비록 선언문이 종교 모독 행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거나 해당 종교를 이슬람으로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애초에 종교 모독 금지안이 이슬람 국가에서 반모독법이나 반개종법을 정당화하고, 개인의 인권을 ‘종교 모독’이란 이유로 탄압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해 왔던 기독교 인권단체들은 이번 회의를 통해 금지안에 더 큰 효력이 부여될 것을 우려해 왔다.
180여 국제 기독교 인권단체들이 참여한 반대 운동을 이끌어 온 CSW(기독교세계연대)의 티나 램버트는 “회의가 인권과는 거리가 먼 아젠다를 좇는 국가들에 의해 ‘납치’됐다”며 “우리는 몇몇 국가나 종교를 모독 행위로부터 보호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인권 특히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간과될 것이 뻔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회원국들은 인권과 자유를 보호해야 할 그들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번 유엔 세계인종차별회의는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차 회의의 연장선상에서 개최되고 있어 더반 검토회의로 불린다. 제1차 회의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시오니즘을 인종차별과 동일시하는 등 이슬람 회원국들의 반유대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포함한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등 일부 서방국가들은 이번 회의가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참석하지 않았으며 특히 미국 정부는 선언문 초안이 종교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항의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선언문은 당초 회의 마지막 날인 24일 채택될 예정이었으나 회의 첫날인 20일 첫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이스라엘은 사악한 인종주의 국가” 발언 파문이 확산됨에 따라 조기 채택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언문은 인종 우월성에 대한 주장을 강력히 거부하며 회원국들에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을 단호히 배척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 “홀로코스트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반유대주의와 관련 제1차 회의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