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극심한 빈궁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에 대한 고발
모스크바의 하늘은 끝없는 크림색이다. 이제 곧 하늘과 땅 사이 공간을 통해 차갑고 검푸른 빛이 북쪽으로부터 흘러오면 아침엔 서리가 내리고 박대까치들이 숲의 밝은 잎새로 변함없이 날아들 것이다.
금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회오리바람처럼 대륙을 휩쓸었지만 여전히 이 나라는 나에게 문학적 느낌으로 이해되고 있다. 먼 곳에서 울리는 음향이 얼어붙은 공명 상태에서 더 잘 전해지듯 러시아의 모든 것들은 문학 속에서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릴 것 같은 생각인 것이다.
초목도 새들도 벌레도 아이들도 모두 즐겁고 흥이 넘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자란 어른들만은 자신을 속이고 괴롭히며 남을 속이고 괴롭히기를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봄날의 아침이 아니고 온갖 살아있는 것의 행복을 위하여 주어진 하나님 세계의 아름다움, 평화와 화목과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아름다움도 아니었다. 오직 서로가 남을 지배하기 위해 그들 자신이 궁리해낸 일들만이 그들에게는 신성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톨스토이가 71세 때 쓴 장편소설 <부활>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작품이 태어난 때는 1899년이었지만 <부활> 속 모든 인물들의 삶은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의 러시아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작품은 생명이 길고 오월의 초목처럼 다시 태어나 바로 어제 흐르기 시작한 물처럼 싱싱한 것이다. 생령들의 소생의 기쁨을 노래하는 봄의 향연에 초대되는 것이다.
정녕 부활의 힘은 세계의 독자들로 하여금 문학을 통해 빛을 보며 밤의 어둠을 깨고 눈부신 태양과 마주할 수 있게 만든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독교 고전문학 작품을 논할 때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의 <천로역정>, 밀튼(John Milton, 1608-78)의 <실락원>에 이어 톨스토이의 <부활>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쓴 이유는 지극히 인도주의적 입장에서였다. 두호보르(Dukhobors) 교도들이 러시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캐나다로 이주하게 됐을 때 그 이주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그의 만년을 장식하는 이 대작은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이며 극작가, 비평가였던 로망 롤랑(Romain Rolland)의 지적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톨스토이의 예술적 성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부활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쓰여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톨스토이의 모든 국면이 이 한 권 속에 구체화돼 있으며 집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 가장 예리하게 지적한 것은 기계 문명의 발달과 부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궁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에 대한 고발이다. 사회의 모순과 부패의 원인과 관리들의 부정과 불의, 그리고 기성 종교와 도덕의 타락상을 펼쳐 보인다. 71세의 나이답지 않은 활력을 작품은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부활이 기독문학 작품이라 간주되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건을 전개하면서 작품의 소재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다뤘다는 점이다. 작품의 주인공 네플류도프공작도 톨스토이가 소설의 서두에서 개탄해 마지않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신을 속이고 남을 괴롭히는 일에 가담한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서 빛의 자아로 거듭난 주인공과 만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기독교적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다(계속).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