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는 적자, 그래도 소송한 이유는…”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세브란스, 생명존중·바람직한 규범 정립의 사명감 피력

▲발제자와 개신교, 카톨릭, 불교, 유교 등 각 종교계 토론자들이 함께 나와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박형욱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이대웅 기자

▲발제자와 개신교, 카톨릭, 불교, 유교 등 각 종교계 토론자들이 함께 나와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에서 네번째가 박형욱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이대웅 기자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를 제거해 달라는 소위 ‘존엄사’ 소송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된 가운데 소송 당사자인 연세의료원 원목실에서 한국죽음학회와 함께 ‘인간의 생명과 존엄사’ 심포지엄을 지난 30일 연세의료원 6층 은명대강당에서 개최했다.

심포지엄에서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이자 변호사인 박형욱 교수는 이번 사건의 경과를 1심부터 3심까지 상세히 설명한 후 “일부 국민들은 세브란스 병원이 진료 수입 때문에 연명치료 중단을 거부한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며 그러나 중환자실은 병원 운영에서 적자가 큰 곳이며 인공호흡기 외에 특별한 처치가 요구되지 않는 환자를 장기간 입원시키는 것은 더 큰 적자를 유발한다”며 이를 부정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사회적 오해를 유발시키지 않는 ‘편한 길’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단체들은 이번 판결에 환영의 뜻을 표시하고 있으며, 서울대 병원의 경우 대법원 판결 직전 말기암 환자들의 소위 ‘자기결정권’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고, 일반 언론들도 약속이나 한듯 이번 판결을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세브란스 병원은 생명존중 의식과 바람직한 규범을 정립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며 “결국 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과 절차를 제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일반적 요건과 절차가 생명존중 의식을 확산시키고 의료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법원이 제시한 연명치료 중단 요건과 절차를 구체화하고 △병원윤리위원회 규정을 정비하고 외부인사 참여를 보장하는 등 절차를 투명화하며 △대법원이 사법부라는 한계로 결정하지 못한 부분들을 사회적 합의와 입법을 통해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재국 원목실장 “개신교는 생명의 종교”

▲조재국 연세의료원 원목실장이 존엄사에 대한 개신교적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조재국 연세의료원 원목실장이 존엄사에 대한 개신교적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가톨릭 구인회 교수(카톨릭대 생명대학원), 개신교 조재국 교수(연세의료원 원목실장), 불교 이덕진 교수(창원전문대 장례복지과), 유교 최영갑 교수(성균관대), 의료(호스피스) 김분한 교수(한양대 간호학과) 등이 패널로 참석, 해당 종교 및 분야의 생명에 대한 입장과 존엄사 문제 대처방안 등을 발표했다.

조재국 교수는 “개신교는 교회 탄생 초기부터 인간 생명을 죽음의 문제와 관련해 이해해 왔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으로 생명의 의미를 죽음 이후까지 확장했다”며 “그래서 초기 한국교회는 ‘예수 천당’이라는 단순 명료한 메시지로 전도했다”는 말로 개신교에서 ‘생명’이 차지하는 위치를 설명했다. 조 교수는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인간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에 경도되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기독교의 본질적 문제를 소홀히 해 왔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었는데, 이번 연명치료중단 논란으로 생명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고 본질적 가르침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돼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삶과 죽음은 본래 종교적 개념이며, 인간의 것이 아닌 하나님께 속해 있는 성질이고, ‘생명’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지극히 존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성경에 나타난 ‘생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생명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신성하고 거룩하며, 모든 생명은 존중돼야 하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는 개신교 내 보수·진보·중도의 세 입장에서 본 ‘생명’ 이해를 덧붙였다. 특히 한기채 목사가 본지 인터뷰에서 언급한 ‘미끄러운 경사면의 원리’를 인용[기사참조]하며 “존엄사를 인정하면 결국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게 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전혀 안 된다고 하기 어려우므로 어느 정도 법적 기준을 세우되 집행시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중도적 입장으로 소개했다. 보수적 입장에는 여러 차례 존엄사 세미나에서 발제한 이상원 교수(총신대), 진보적 입장에는 지난 NCCK 존엄사 세미나에서 박일준 교수(감신대) 등이 발표한 주장들을 언급했다.

“‘존엄한 죽음’ 이유로 죽음의 시기 재촉할 수는 없다”

조재국 교수는 “개신교는 무엇보다 생명경시 풍조를 경계하고 최선을 다해 환자 생명을 살리려 노력하는 의료진에게 경의를 보내야 한다”며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할 수는 없다(롬 3:8)’는 말씀처럼 존엄한 죽음을 이유로 죽음의 시기를 재촉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에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면 그것이 환자의 죽어야 할 의무로 전이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연명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호스피스나 통증 완화치료, 의료보험제도 등이 완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존엄사라는 명목으로 죽음을 강요당한다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한국교회가 반성할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생명의 신성성을 주장하면서도, 연약한 생명과 싸우는 환자와 의사의 고민에 동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 생명과 존엄사 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누구보다 임종 환자를 많이 만나고 장례를 주관하는 목회자들도 구체적인 사례 연구 등을 소홀히 했고 그 결과 오늘의 문제에 합의된 견해를 내놓지 못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합의된 견해를 내놓지 못했지만, 개신교의 견해는 △인간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신성하고 존엄한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생명 경시가 허용돼서는 안 된다 △비가역적 상태에서의 연명치료중단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프로세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 의견은 존중돼야 하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연명치료중단 요건이 될 수는 없다 △존엄사 찬반 논의보다는 호스피스나 완화치료, 경제적 부담 경감 등 의료제도 개선이 먼저다 △죽음 이해는 종교와 신앙적 이해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임종전문 간호사 등의 역할이 증대돼야 한다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의사들의 지식과 경험이 요청된다 등으로 종합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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