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톨스토이 문학을 찾아서(11)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안나 카레리나> 다르게 읽기

▲ 송영옥 박사.

▲ 송영옥 박사.

<안나 카레리나>는 한 마디로 말하면 미모의 유부녀 안나의 불륜을 둘러싼 러시아 귀족 사회의 단면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톨스토이 내면의 혼란과 그로 인해 점차 깊어가던 종교적 탐구에 대한 의문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내가 여기에 ‘문학적 형상화’란 표현을 쓰는 것은 안나의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녀가 간통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보복을 받았다는 것으로 치부하고 단순한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내가 이 작품을 읽을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양권 국가에서는 안나를 읽는 형식이 그러했다. 1920년대 터키 신문 <타난>에서는 “<안나 카레리나>는 방탕하고 부정한 아내를 징벌하는 교훈적인 작품” 이라 평했고, 톨스토이와 동시대 시인인 네크라소프 역시 “이 작품의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안나의 연애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회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평했다.

특히 톨스토이는 소설의 권두에서 히브리서 10장 30절의 말씀을 인용, 의도하는 주제를 제시한다. 한 인간에 대한 죄의 심판은 인간이 행할 수도 없거니와 행해서도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이 땅 위의 삶에서 인간이 이루는 성공이나 실패도 선과 악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안나의 최후는 신이 내린 징벌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로서 독자는 <안나 카레리나>를 읽을 때 교훈적인 메시지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안나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아이까지 버리고 많은 사람들을 파행으로 몰아넣은 뒤, 비윤리적인 행위의 보복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품을 읽을 당시 안나를 미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물론 그 생각에는 몇 가지 합리적인 전제가 있었다. 안나의 삶이 개인의 잘못으로 판단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안나는 매우 어린 나이에 숙모의 중개로 관리인 카레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지만, 남편은 늘 계산적이고 냉정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안나의 사랑과는 대조적이다. 또 다른 사랑의 대상자인 브론스키는 책임에 대한 일말의 자각도 없으면서 안나를 유혹했고, 소문 때문에 안나와의 사랑을 배신한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로 각오한 안나와는 매우 다른 성향이다. 그러하니 카레닌과 브론스키와 관련된 사람들의 파멸은 안나 때문만이 아니고 모든사람들의 속박 안에서 이뤄졌음을 이해하려 했다. 사랑의 문제를 좀더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고 할까.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안나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생명력이었다. 그녀의 내면은 언제나 생명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열정이었다. 때때로 열정은 사랑에 기대어 허물어진 겉잡을 수 없는 욕망과 몽상까지도 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육체의 열광도 아름다움이며, 넋을 정화시키는 순수이게 해 준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며 생명감이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안나에게서 넘쳐 흐르는 생명감이 바로 톨스토이가 추구한 최고의 진(眞)이며 미(美)였다는 것을 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열정이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면서 우주를 향해 통합을 이뤄가는 움직임이다. 때문에 그 자체가 생명력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내면을 항상 생기있게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은 열정인것 같다. 열정 때문에 흙을 만지고, 대륙을 밟고 싶어한다. 때론 폭풍우에 고파하고 풀을 베어낸 목초지에 서서 봄을 보고싶어 한다. 빛에 눈부셔하고 지식에 목말라하고 게걸스럽게 일을 먹어치운다. 열정 때문에 우리는 어두운 밤하늘이 활짝 피어 별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어린 시절 읽은 안나는 삶 전체를 할애하고서라도 향유하고 싶은 열정을 나에게 가르쳐 줬다. 그리고 열정과의 교감은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엄청난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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