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그의 페르퀸트, 그리고 솔베이그의 노래
비 오는 날 아침 출근길에서 그리그의 음악을 들었다. 이 음악 CD는 함께 근무하던 후배가 승진하여 전문직에 들어가면서 선물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와는 오랫동안 크고 작은 기쁨들을 함께 나누어온 사이다. 그의 전공은 전자이지만 취미는 음악과 사진인데 두 분야모두 완전 프로이다. 페르퀸트의 조곡 외에도 영화음악, 그리고 몇 장의 사진을 주고 갔다. 그 날 후배는 ‘비 오는 날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으면 절절한 그리움으로 생각날 거야’ 하고 뒤돌아 가더니, 다시 뛰어와 ‘내가’ 라고 엉뚱한 소리를 덧붙이고 갔다.
음악을 듣다가 생각하니 후배의 목소리를 들은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았고 그의 근황도 궁금해졌다. 나는 전화로 그의 출근길을 찾아서 ‘오늘 비 오는 날 아침인데 이 음악 들어도 너가 절절하지 않으니 어쩌지’라고 안부를 전하였다. ‘할 수 없지 뭐 또 기다려야지.’ 후배의 유쾌한 목소리가 빗줄기를 타고 전해왔다.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메고 산과 들을 누비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마음 길을 오가는 이 작은 따스함들이 빗물처럼 고이어 결국 그리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교문에 들어섰을 때 음악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나는 메인 주차장을 피하여 켐퍼스의 담 밑에 차를 세웠다. 담이라기보다는 장미 꽃나무로 담을 만든 울타리 밑이다. 울타리 맞은편 정원에는 여러가지 유실수와 작은 화초들로 조경을 잘한 정원인데 이 사이길이 우리학교에서 가장 아름답다.
길에 서면 나무숲에 싸인 넓은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먼 산도 가까이 다가선다. 새들의 지저귐이 하루종일 이어지고 이따금 지나가던 구름들이 나무 가지에 걸리기도 한다. 나는 시동을 끈 채 잠시 기다렸다. 아직 꽃을 피워내지 못한 장미꽃 나무들은 가녀린 잎들을 땅으로 떨구고 힘겹게 서 있고 맞은편의 재귀나무와 석류나무도 휘어진 가지를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차창으로 내다보니 세상이 온통 뿌옇고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있는 듯 하였다. 차 안의 작은 공간만이 유일하게 내가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형상 같았고 그 속에 나는 아침시간의 여유를 끼워넣고 싶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다시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었다. 선율은 하얀 레이스 창이 달린 그리그의 작곡실에서 들었던 그날의 느낌으로 출렁거렸다.
세상의 많은 노래들 가운데서 솔베이그의 노래만큼 그 마디마디에 절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노래도 드문 것 같다. 그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고 또 그 봄을 보내도 끝을 모르는 기다림, 오직 속에 품은 한 사람 페르퀸트에게 바친 순애의 리리시즘, 그래서 솔베이그의 노래는 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더 생명이 길다. 갑자기 내 가슴도 시리고 아파왔다. 북구의 우수 같은 한기가 스며들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단, 노르웨이의 하늘 밑에서 입센 축제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 나는 솔베이그의 노래의 산실을 찾아 가본적이 있었다. 오슬로의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제2의 항구도시 베르겐까지의 여덟 시간의 열차여행이었다. 그 밤에 나는 그리그의 음악당에서 죤 헨릭 카이져의 바이올린 연주로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그의 흉상도 베르겐항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음악실 천 사백여석을 가득매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나오는 둥글고 깊은 공명탄의 되울림을 들었을 터였다.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열차를 타고 지나온 산 속의 이 백 개의 터널과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교량 위로도 그리그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비 오는 날 아침, 나는 고마운 후배 때문에 잃었던 시간을 되찾은 듯 하였다. 베르겐의 추억이 살아났고 표르드 해안의 물소리를 다시 들었다. 깊은 계곡을 달려 북상하면서 보았던 아름다운 연봉들이 빗줄기를 헤치며 찾아왔다. 그러나 내 생각이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데도 빗줄기는 약해질 모르고 시간의 틈새에 모처럼 마련했던 여유는 내 속에 묶어두었던 생각의 끝자락을 풀어놓고 말았다. 목구멍까지 보고픔이 차올랐다.
마침 토요일이었고 나는 수업이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교무실로 들어가지 않고 차문을 닫고 느린 걸음으로 산책로에 들어섰다. 우산을 썼지만 신발과 스타킹엔 금새 물이 베이고 발자국을 옮겨놓을 때마다 출렁거렸다. 내 가슴 마디마디는 더 시리고 아파왔다. 몸도 마음도 노래도 젖어왔다. 그래서 비오는 날 아침 시인은 ‘비가 눈물이 되어 흐르고 눈물은 그리움을 안고 강물처럼 흘러간다’고 노래했었나 보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