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거장에서 만난 톨스토이의 문학과 삶
생의 마지막 날들까지 순결한 신념과 정직함으로 치열하게 인생을 살았던 톨스토이. 나는 그의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목구멍까지 무엇인가 차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동요는 비단 나에게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크리스천들 가운데 그의 이름을 동요없이 대할 수있는 지성인들이 몇이나 될까. 특히 제이피리니의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을 대할 때 말이다.
이미 1백년 전에 톨스토이는 “인생의 가장 높은 목적은 기독교적 사랑의 왕국을 세우는 일이며, 이 이상을 인간의 마음 속에 심어주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고 외쳤다. 과거 대부분의 예술론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것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주장을 별 가치없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미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톨스토이의 예술에 대한 관점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때문에 내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려는 것은 톨스토이가 거부한 것이 예술적 미 자체가 아니라 ‘단지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미’의 속성에 대한 부정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톨스토이는 예술을 포함한 인간 활동을 해석함에 있어 그 의미와 가치가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 먼저 인간활동을 그 원인 및 결과와 관련지어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그 활동으로부터 얻은 쾌감만을 연관시켜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톨스토이의 관점에서 예술의 목적을 쾌감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톨스토이에게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접속시키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 인간을 융합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언어이며 또 하나는 예술이다. 언어는 사상을 전달하고 예술은 감정을 전달한다. 언어를 매개로 예술활동이 이뤄지는 문학을 통해 톨스토이는 하늘과 인간 사이의 융합을 꿈꿨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적 이상으로 19세기 제정 러시아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자신의 방탕한 삶을 뼈아프게 고발하는 <참회록>을 쓰고, 종교·도덕·교육·혁명 등 인생과 사회의 밑바닥에 도사린 위선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파헤치고 고발했다. 주위에는 그의 사상을 따르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회에는 톨스토이즘이란 새로운 물결이 번져갔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인생의 정거장에 섰을 때는 평생을 내조하던 톨스토이의 아내가 그를 배신한다. 그녀는 남편의 ‘회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지막 생을 청빈과 순결로 마감하려는 톨스토이에 대항해 재산 상속권을 쟁취하려 자식들과 함께 투쟁을 벌였다. 결국 톨스토이는 이에서 벗어날 시도를 할 즈음 간이역 아스타포브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 >은 이러한 말년을 그렸다.
이 작품은 저자 제이피리니가 말년의 톨스토이 비서였던 발렌틴 불가코프의 일기장을 나폴리의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을 계기로 집필한 책이다. 톨스토이의 만년에 거대하고 처절한 균열의 틈바구니에 끼인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과 목소리로 그의 만년을 들려주는 책이다. 소설에는 여섯 사람들의 목소리가 교차 편집돼 있다. 아내 소피아, 비서 볼가코프, 막내 딸 사샤, 주치의 막터 마르코비스키 등의 목소리가 들어있으며, 톨스토이 자신의 편지일기 등이 인용됐다.
지금 독자들은 내가 서두에서 했던 말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 속 동요 없이 <마지막 정거장>을 대하기 어렵다고 했던 것을. 위대한 사상가의 기독교적 신념과 꿈을 상기할 때, 왜 우리는 목구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뜨거움을 갖는 것일까<계속>.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