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거장에서 만난 톨스토이가 몰랐던 한 가지
“죽음은 삶의 많은 고상한 면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생의 마지막 정거장에서 불가코프가 압축한 톨스토이의 사상이다. 인간은 문학을 통해 길을 찾고 진리를 모색하고 생명을 꿈꾸는데, 문학을 통해 찾아가는 길은 어디까지나 감동이라고 하는 심리적 반응을 통해서다. 감동이라는 이 울림은 한 인간이 대상을 자기의 온몸으로, 직관으로 파악하는 행위다. 따라서 문학적 감동이란 문학을 삶의 한 조건으로 수용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 울림이다.
톨스토이에게 있어 문학은 곧 그의 사상이며 삶 자체였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그 반성으로 인한 각오가 인간을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억압하는 러시아 사회의 이 부정적인 힘에 대한 인식이 그로 하여금 에덴 회복에의 열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진정한 에덴회복이 그리스도의 은혜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죄와 구원의 문제까지도 이성의 힘에 기대었다.
톨스토이는 위대하고 심오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참으로 인간의 심성에 닿아있다. 난해하지도 않다. 그의 작품을 읽기 위해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뭐랄까,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이미지랄까. 그의 필치 속에는 멀고 가까운 산들이 펼쳐져 있고 봉우리 사이 사이에 구름들이 떠돈다. 먹구름이 몰려들어 비를 부르고 뇌성이 천지를 진동하며 번개를 친다. 사람들도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모든 사건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리로 흐른다.
또한 그는 인간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건강했으며 귀족적인 가문에서 태어나 남들이 부러워할 부를 누리고 살았다. 지위도 있었고 명에도 있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톨스토이즘이 만연할 만큼 추종자들이 따랐다.
그의 대작들은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명성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인류의 스승으로서 고뇌하고 자각적으로 투쟁한 위대한 사상의 소유자였다. 82세의 긴 삶을 살면서 그 영광의 절정기에 영광스럽게 죽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위에 찬란히 빛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들은 기독 문학의 위대한 고전으로 남아 여러분과 나를 감동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가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순간의 고독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왜일까. 나는 톨스토이를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톨스토이에게 미적 정서의 최고 기능인 열정과 그 열정의 최상위 단계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연계돼 있음을 체험할 시간이 좀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그리고 영어의 passion의 어원 passio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임을 일러준다. 열정은 단순히 사랑한다는 감정을 넘어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전부를 희생하고 그 고통을 감수하는 상태다.
톨스토이는 성경 말씀이 세상을 구원할 위대한 진리인 것을 알고 또 말한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성경적으로 작품 속에서 형상화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죄성이 이성에 의해 구원되고 변화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에 기대기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더 기대 모든 해결책을 구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목구멍까지 무언가 차오르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톨스토이의 작품 세계를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이미지로 구성해 본다. 마치 루벤스의 풍경화 같다. 산봉우리들이 솟아있는가 하면 대해를 흐르는 도도한 물줄기가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다. 무엇 보다 전쟁 같은 인생의 마지막 날들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관통해 낸 그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하리라. 이 문학적 감동으로 우리의 삶이 격려받는 것을 고마워하리라.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