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인디오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페루에서 만난 도자기들

▲ 송영옥 박사.

▲ 송영옥 박사.

남미 여행의 추억은 페루의 수도 리마의 음산한 겨울 하늘과 코파카바나의 밤과 카롤로스 카르텔이 거닐던 아르헨티나의 항구와 탱고를 춤추었던 부둣가의 술집과 폰초를 두른 남자, 내 인디오 친구로 인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친구 몰리가 나를 위해 배려해주었던 시간들은 참으로 잊을 수 없다.

몰리는 만날 때마다 폰초를 두르고 나와서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의 웃음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감돌았다. 마치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듯 눈은 깊고 외로워 보였다. 화려한 색깔의 폰초 때문에 더 그랬다.

머리에는 갖가지 구슬을 매어 만든 관을 썼는데 큰 구슬 두 개가 귀 밑으로 내려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박자를 쳤다. 마치 포크롤레를 연주하듯 그의 폰초에 리듬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나를 리마 시내에 있는 라파엘 라르코에레라 박물관으로 데리고 간 것은 페루 여행이 거의 끝날 쯤이었다.

박물관은 치무를 비롯한 페루 해안지방에서 출토된 토기와 도자기를 모아놓았는데 전시실 지하에 있는 작품들은 모두다 포르노 도자기들이었다. 성을 본뜬 도자기들은 하나같이 표현이 직접적이고 미세하였다.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여성 성기 옆에 발기한 남성 성기를 진열해두고 마치 성의 교환이 오케스트라적으로 이루어지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성애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인디오의 생활감정은 나에게 하나의 과제를 안겨주었다. 몰리는 국립 페루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는 친구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 선조가 만들었던 황금의 조각상 대부분이 성을 본떠 제작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작품들은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침공했을 때 모두 약탈당해 불에 녹여졌다고 하였다.

가톨릭 국가에서 온 침략자의 눈에 인디오의 예술품이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아마도 그들은 추잡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고 남녀의 색정적인 접촉을 표현한 조각상은 신의 섭리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몰리는 치무 왕국의 옛 터전으로 나를 안내했다. 프레잉카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치무 지방에는 지금도 인디오의 생활감정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이 발굴되고 있다. 황금으로 된 것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 흙으로 만든 부장품들인데 그 가운데 치자를 담은 용기가 있다. 치자는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술로서 인디오들은 제례나 혼례 기타 의식에서 치자를 즐겨 먹었다. 그리고 지금도 인티 라이미 축제 때에 태양신에게 바쳐진다.

그곳에 있는 치자 용기는 모두 남녀의 성기를 본떠서 만든 것들이었다. 인디오들은 사후에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믿었다. 죽음에서 깨어난 후 다시 살아 갈 세계를 위해 무덤 속에 성을 본떠 만든 그릇에 치자를 담아 함께 묻었으니, 성기에 담긴 술은 그들이 얼마나 진한 성적 쾌락을 추구했었는지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자신의 인생관에 따라 그들만의 도덕적 원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삶을 향유하며 쾌락을 추구한 이들에 대해 누가 정죄할 수 있을 까. 스페인 사람들이 죄악시한 쾌락은 인디오의 신성한 예배 의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풍요의 신이 내려준 은총과 그들 삶의 젖줄에 대하여 제사를 드리는 의식 말이다.

나는 다소 혼돈스런 맘으로 성의 영역에 발화된 창조성과 다양성을 생각해 보았다. 고대 페루인들이 참으로 큰 성의 기쁨 속에 살았던 것 같다. 거리낌 없이 포옹한 남녀의 나체, 육체와 육체의 색정적인 접촉, 관능의 희열에 빛나는 눈빛, 이렇게 자신의 역사에 성을 솔직하게 섞어놓은 안데스의 옛 주인에게 부러움과 친밀감을 동시에 느꼈다.

사막을 지나던 태양이 힘겹게 고개를 넘는 시간 우리는 리마로 되돌아왔다. 오아시스처럼 빠나나밭이 보였다 사라지는 길을 돌면서 인디오 친구는 나를 위해 케나이를 불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내 의식은 거의 한곳에 머물렀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뼈에 살을 붙이고 혈관을 놓아 피를 통하게 하는 것은 성애를 통한 삶이 아니던가. 인간의 본질적인 삶 그 자체, 몰리는 내 마음을 읽은 듯 케나이를 내려놓고 말했다. “성은 역사를 보는 또 하나의 눈이 아니겠느냐”고.

나는 지금도 남미 여행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평범한 이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 나를 흔드는 때문이다. 안데스의 설원은 여전히 의식의 창공에서 빛나고 그 인디오 친구는 나를 원시의 바람 앞에 다시 세운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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