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냐 진화냐 지적설계냐, 세 주장이 만나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감신대, 다윈 탄생 2백주년 맞아 기념 세미나 개최

▲왼쪽부터 신학자 박일준 교수, 지적설계론자 이승엽 교수, 진화론자 박문호 연구원. ⓒ이대웅 기자

▲왼쪽부터 신학자 박일준 교수, 지적설계론자 이승엽 교수, 진화론자 박문호 연구원. ⓒ이대웅 기자

감신대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소장 이정배 교수)가 6일 오후 웨슬리채플에서 다윈 탄생 2백주년을 맞아 진화론자와 지적설계론자, 신학자를 함께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다. 주제는 ‘우주와 자연은 목적이 있는가’, ‘생명 현상은 스스로 발생하는가’, ‘종교는 자연의 부산물인가’ 등이다.

이정배 소장은 “기독교 서구는 올해 다윈 탄생 2백주년과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 탄생 5백주년 행사로 무척 분주하지만, 이 두 사람의 생각은 서로 평행선을 달려왔다”며 “자연선택을 통해 생명의 변이를 말한 다윈과 하나님의 예정을 설파한 칼빈의 사상은 내용적으로도 철저히 대립된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그러나 서구는 지난 1천년간 주요 인물로 다윈을 9위, 칼빈을 50위에 올리는 등 과학적 사유의 중압감을 떨치지 못한 상황에서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교회에서는 창조와 섭리를 학습하는 학생들 입장은 난감할 것”이라며 “진화론과 유전학을 결합한 신(新)다윈주의의 출현이 기독교의 위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이 때 진화론자와 지적설계론자, 신학자를 초청해 상호 토론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세미나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종교와 철학은 뇌 작용의 산물일 뿐”

진화생물학적 입장에서 발표한 박문호 책임연구원(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우주와 자연은 목적이 없지만, 생명 현상은 목적지향적”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우주와 자연은 대칭성에 의해 움직이고, 이 대칭이 깨어졌을 때 ‘생명 현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힘은 중력, 전자기력,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 등 네 가지 뿐으로, 대칭의 자발적 붕괴와 숨겨진 대칭에 의해 다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우주 구성의 출발점인 대칭이 붕괴되거나 숨겨진 찰나적인 순간 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 상호작용 등이 분화돼 지금과 같은 힘이 만들어졌고, 이 중 하나인 전자기 상호작용에 의해 생명체가 출현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지난해 <뇌, 생각의 출현>을 저술했던 뇌과학자인 박 연구원은 따라서 생명 현상의 주역은 전자기 상호작용이며, 철학과 종교 등도 뇌(두정엽)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극단적인 명상 상태에 들어가면 좌우측 두정엽에서 수입로가 차단돼 더 이상 신경 입력이 들어가지 못하면서 공간지각과 자아감이 사라져버리고 시·공간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적설계론은 ‘복음’이 아닌 ‘세례 요한’”

▲이날 토론회에는 늦은 시간에도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다. ⓒ이대웅 기자

▲이날 토론회에는 늦은 시간에도 많은 학생들이 참석했다. ⓒ이대웅 기자

이어 발표한 지적설계연구회장인 이승엽 교수(서강대)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진화론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현재 주류 과학계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진화론만을 인정하고 있으며, 진화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지적설계론에 대해 ‘비과학적’이라 치부하고 있는 상태다.

이 교수는 “지적설계론은 종교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현재까지 화석학적·생물학적 증거들이 자연 선택과 돌연변이의 신다윈주의 진화 메커니즘에서 생물학적 기원과 생명체의 복잡성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과학적 비판에서 출발된 것”이라며 “지적설계론이 혹독한 과학적 반증 논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며, 진화론에 대항하는 최초의 유신론적 과학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지적설계론에 ‘복음’이 들어있지는 않다”며 “세례 요한과 같이 높은 산들을 허물고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역할만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창조란 신학적 대답, 물리적 참·거짓 따질 문제 아냐”

박일준 교수(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는 진화론이 말하는 생명 현상의 ‘우연성’을 하나님의 자리로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생명의 기원에 통상 ‘우연발생’이라는 설명 인자를 두고 자연과 생명을 논하는 것이 진화론자이고,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 담론의 구조였다”며 “여기서 ‘하나님’을 세상에 ‘우연으로 여겨지는 창조성’을 도입하는 ‘인자(factor)’로 볼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창조를 말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생각과 계획, 이성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를 염두에 둔다”며 “창조란 우리의 생각과 기대로부터 이뤄진 것이 아니라 우리 기대와 예측에 반하는 참으로 창조적인 하나님의 활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창조란 고난의 현실에 대한 신학적 대답이지, 결코 물리 사건의 참·거짓을 증명하는 게임이 아니다”며 “물리학적 또는 생물학적으로 참·거짓으로 판명되는 것이 결코 진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진화론은 생물학 분야에서 현재까지 창조론을 제압했음에도 기독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건재하다”며 “여전히 많은 나라들에서 진화와 창조는 문화와 문명의 문제가 아닌, 개인적 신앙과 신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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