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같은 작품, 한국에서도 나올 수 있다
기독 문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안게 됐다. 하나는 기독 문학의 본질, 즉 개념 정의와 관계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문학과의 관계에서 야기된 문학의 작품성과 예술성 문제다. 즉 기독 문학이란 현실적으로 개인적인 신앙 체험을 쓴 간증 문학이나 선교를 목적으로 쓴 설교 문학, 그리고 기독교인 작가의 작품이거나 작품의 소재와 배경이 성서를 근거로 작품이 구성됐을 경우로 국한됐으며, 그로 인해 기독 문학작품은 일반적으로 정의 되는 문학 작품에 비해 작품성과 예술성에서 매우 뒤떨어지게 됐다고 지난 시간에 말한 바 있다.
구체적인 예를 90년대 두드러졌던 선교 문화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교회 복음 전파의 특징 중 하나인 문화 선교가 각광받고 붐을 일으키면서, 문학과 선교를 하나로 묶어 마치 문학의 선교적 특성이 곧 기독 문학의 본질인 것처럼 인식하게 됐다. ‘무엇이 기독 문학인가’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신앙 고백이나 간증을 소재로 한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것은 기독교 소재론에 집착하는 한계를 드러내 결과적으로 일반 문학의 연구 성과를 무시한 기독 문학을 형성했다. 그 결과 기독 문학은 일반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문학의 예술성에서 변방에 처하게 됐다.
2천여년 동안 기독교 정신이 그 바닥에 면면히 흘러 온 서구 문학과 달리 한국 문학은 기독 문학이 서식하기에 척박한 풍토다. 복음의 전래와 함께 전래한 신 학문은 식자들의 주목을 끌기에 족했다. 문학가들은 처음 대하는 기독교의 참신성과 성서가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관에 몰입해 기독교적인 내용을 주제로 작품을 썼다. 그러나 기독 문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기독 문학을 변방의 문학으로 던져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는 기독 문학이 일반 문학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문학이란 하나의 울타리 속에 조화를 이루며 피어나는 것이다. 삶의 모든 정서, 자연의 아름다움, 사랑의 달콤함과 쓰라림, 그리고 그리움과 기다림, 삶의 뒤안길을 헤매며 부르짖는 처절한 절규 혹은 진한 감동으로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등 모든 것들은 문학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런데 기독 작가에게는 삶에서 직면하는 희로애락에서도 어쩔 수 없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감사가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 분에게 받는 은총이 깊은 곳에서 은은하게 혹은 진하게 풍겨나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독 문학은 전도문이나 간증문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크고 놀라운, 그러면서도 너무나 세세하고 치밀한 자연의 반영이다.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독특한 인간들이 서로 부딪히며 엮어내는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정서와 사상을 상상력을 발휘해 형식에 맞춰 써 나가는 글이 문학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그 세계 안에서 이뤄지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만 가능하게 판단되고 그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문학을 통해 하나님과 교류하고, 그 안에서 사는 방법 중의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독문학을 전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게 있어 문학은 곧 기독 문학일 수밖에 없으며, 기독 문학만이 진정한 의미의 문학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기독 문학이란 용어를 따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소신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까지 기독 문학에 전력하고 대학에서 이를 가르치는 이유는 문학의 사명을 새롭게 깨닫게 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기독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준거를 제시하고자 함이다.
무엇보다 세계에 걸쳐있는 인간의 창조적 표현이 서로 이해될 수 있고 전절될 수 있는 성격과 힘이 있음은 인간의 본성이 창조주의 속성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서는 이미지와 설문, 인유와 다른 형식의 언어적 표현을 생성해 내는 강력한 문학적 힘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문학의 요소 중 가장 핵심적인 경험은 결국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반영이며, 가장 중요한 상상의 생명력은 제한적인 인간의 상상이 하나님의 영역을 향해 열려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대학에서 기독 문학을 학문으로 연구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은총이라 생각한다. 머지않아 분명히 서구 문학에 못지 않는 기독교적 작가와 작품을 잉태할 토양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제까지 기독 문학의 행보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한국에서도 밀턴이나 단테, 그리고 제2의 번연이 배출되고 그들을 통해 불후의 고전을 생산케 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것이 한국 기독문학의 비전이 아닐까 한다.
-송영옥 박사(영남신대)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외 8권의 창작집이 있으며 영한시집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국제봉사단체인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이며 대구 제일감리교회 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