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는 도스토옙스끼의 두 번째 이미지
<그대가 호수에 어린 그대 자신을 보듯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가 자기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을 본다.> -레드가
이미지란 통일성과 형식적 의미를 동반하는 구체적 형상으로 사고의 형식을 의미한다. 레드가의 경우는 이미지를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한다. 호수에 비치는 영상과 자신의 눈동자에 비치는 영상이다. 전자가 이미지의 객관성을 말한다면 후자는 이미지의 내면성에 대한 사고의 형식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는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총화보다 전체가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그리는 도스또옙스끼의 이미지도 그의 <잔인한 천재성>, <넋의 리얼리즘의 빛나는 광휘>, 그리고 <파란만장한 위대한 생애> 등의 객관성을 이 글의 밑그림으로 깔고 나의 내면을 텃치한 그와 만나고자 한다. 현대 신학자 니콜라이 베르자에프는 이렇게 말했다.
“도스또옙스끼는 나의 정신 생활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젊은 시절 그는 내게 접목이 되어 그와 나와는 생명의 합일체가 되었다. 다른 어떠한 작가도 철학자도 그처럼 나의 영혼을 자극하고 나를 끌어 올린 사람은 없다. 그를 알고부터 내게 있어서는 인간은 ‘도스또옙스끼인’과 ‘그와 무관한 사람’ 이 두 종류의 인간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슨 말일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도스또옙스끼의 영향 하에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스또옙스끼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그 삶이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벨자에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더구나 문학이라고 하는 독의 그물에 한번이라도 걸려들어 본 사람에게는 그의 말이 얼마나 설득력있는지 경험한 사실 아닌가. 어쩌면 인생 자체의 어려운 문제들과 도스또옙스끼의 난해한 천재성이 같은 이미지여서 그럴 것이다. 인생에는 쉬운 문제가 없다. 도스또옙스끼의 문학이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여전히 읽기를 기다리는 광활한 기호들의 저장고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인적이 없는 거리에서 울부짖다가 폰타카강의 시꺼먼 물을 강안의 철환보다도 높이 쳐 올리면서 둑의 초췌한 가로등에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도시의 음울은 가냘픈 신음소리를 내고 삐꺽거리는 가로등은 휭휭거리며 끝없이 떨리는 협주곡을 이룬다. 진눈깨비는 쉼없이 쏟아지고 바람에 찢긴 빗발은 사람들의 얼굴을 할키고 지나간다.”
이 글은 1846년 도스또옙스끼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 발표되고 이어 같은 해 크라예프스끼의 월간지 <조국의 기록>에 발표했던 장편소설 <이중인격>에 나오는 페테르스부르크, 지금의 레닌그라드의 모습이다. 그는 페테르스부르크를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라고 하였으나 한편 이 도시의 백야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꿈꾸었으니 그것이 그의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도시에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전 생애를 통하여 장엄한 대 서사시를 바쳤다.
표토르 대제가 큰 꿈을 품고 도시 건설을 계획했을 때 이 곳은 숲으로 둘러쌓인 늪지대였다. 핀란드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네바강의 흐름 중에서 ‘덤불섬’, ‘토끼섬’, ‘곰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지류가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지반이 된 것인데 이들 이름에서도 당시 도시의 음울을 연상할 수 있다. 작가는 1821년 11월에 모스코바에서 출생하여 1881년 2월에 이 도시에서 숨을 거둔다. 59세의 짧은 삶을 도시의 음울 속에서 마감한 것이다.
그의 일생은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러시아의 지식층, 인텔리겐치야의 폭력적인 혁명을 부정하는 투쟁의 삶이었다. 한편 그는 종교 재판을 행한 기독교의 폭력을 비판함으로써 교회가 참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악을 고발하였던 것이다. 단순히 기독교의 교리를 옹호하고 변증하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문학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본질을 인간의 영혼 속에 회복시키려 하였다.
내가 작가의 고향 마을에 첫 발을 대었을 때는 그가 죽은지 100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여러 차례 그가 살던 하늘 밑을 다시 찾아갔다. 나 역시 베르자에프의 말처럼 도스또옙스끼의 사람으로 그 영향력 속에서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