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조부 유진 벨 선교사 이어 한국서 헌신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와 의료사역을 펼쳐 온 전 호남신학대 학장 드와이트 린튼(한국명 인도아) 목사가 지난 11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13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린튼 목사는 11일 밤 애틀랜타 인근 게인즈빌에 있는 체스트넛 교회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 참석한 뒤 승용차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구한말 한국에서 활동한 유진 벨 선교사(1868-1925)의 외손자인 린튼 목사는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 과정을 마친 뒤 1952년 한국으로 돌아와 이후 25년간 의료봉사를 펼쳤고, 1973년에서 1978년까지는 호남신학대 학장을 지냈다. 은퇴 후 미국에 머무르던 그는 1992년 빌리 그래함 목사가 당시 김일성 주석 초청으로 방북할 당시 통역관 자격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한편, 그의 외조부인 유진 벨 선교사는 1895년 미국 남장로회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나주, 목포, 광주 등 전라도 지방에서 활동했으며, 근대교육과 의료봉사에 힘을 쏟아 교회는 물론 많은 학교와 병원을 설립했다.
벨 선교사의 사위인 윌리엄 린튼(1891-1960, 한국명 인돈) 목사는 한국 독립을 후원했고,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1959년에는 대전 한남대학교의 전신인 대전대학교(대전기독학관)를 설립하기도 했다.
윌리엄 린튼 목사는 아내인 베티 린튼 여사(한국명 인애자)와의 사이에 4남을 뒀는데, 넷째가 바로 드와이트 린튼 목사로, 셋째인 형 휴 린튼(1926-1984, 한국명 인휴) 목사와 함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한국을 위해 섬겨 왔다.
휴 린튼 목사의 장남인 스티브 린튼(59, 한국명 인세반)은 1994년 유진 벨 재단을 설립해 대북의료지원 사업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고, 차남인 존 린튼(50, 한국명 인요한)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어, 유진 벨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한국 사랑이 4대째 이어지고 있다.
린튼 가문은 미국에서도 한국 선교사 가문으로 유명한데, 1995년에는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Christian Friends of korea: CFK)’이란 인도주의 단체를 설립해, 식량 지원과 구호물품 전달, 의료봉사 등 인도적 대북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드와이트 린튼 목사는 CFK의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외에도 1991년에 애틀랜타 인근 한인 밀집 지역인 덜루스에 한인 이민 2세들과 함께 `오픈 도어 커뮤니티’ 교회를 열기도 했다.
현재 고인의 장례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애틀랜타 한인교회협의회는 한국에 헌신한 린튼 목사의 삶을 기리는 뜻에서, 유족들과의 협의 하에 장례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유족에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아내 마지 린튼 여사와, 딸과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