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위기는 기회다 1] 제자원 김시열 대표
목회자라면 대부분 소장한 <그랜드종합주석>
성경 깊이 알고자하는 이들에게 ‘전과’ 역할
오로지 기독교 전집류 출판이라는 한 길만을 걸어온 제자원 김시열 대표의 30년 출판 인생은 ‘인내와 열정, 사명감’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원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랜드종합주석>이 바로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1990년대 후반 완간된 <그랜드종합주석>은 지금까지 17만질 정도 팔렸다고 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대략 10만명 정도 된다고 하면, 그들 중 대부분의 서재에는 <그랜드종합주석>이 꽂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좀 더 깊이 알기 원하는 일반 성도들은 물론, 성경에 관심을 갖는 비기독교인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고 있는, 성경 이해를 위한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제자원은 총신대 신학과 동기인 한성천, 김시열 대표가 1990년 공동창립했다. 대학시절부터 학보사 등에서 일하며 기독교 출판 사역을 꿈꿔온 이들은 기독지혜사 등에서 수 년간 편집장으로서 실무경험을 익혔으며 유수의 기독교 출판사에서 편집인들로 일하던 동역자들이 뜻을 합해 1990년에 출범했다.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편집전문 상근 정규직원만 20여명이 일하고 있고, 복음주의, 개혁신학에 취지를 공감하는 여러 교단 목회자들과 소장파 신학자들로 구성된 초교파 비상근 집필위원 40여명이 동역하며 편집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 기독출판계에 커다란 획을 남긴 <그랜드종합주석>은 어떤 배경하에서 기획됐을까. 김 대표는 “기독교가 급성장했던 8-90년대에 성경을 깊이있게 알고자하는 평신도들을 위해 일종의 ‘전과’와 같은 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 내용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 ‘전과’가 학습에 도움이 된 것처럼 성경전과의 역할을 하는 주석서 개념으로 <그랜드종합주석>을 기획했다는 이야기다.
번역 위주의 주석서가 주류였던 당시에 흔치않게 한국인이 직접 기획하고 편집하여 한국교인들의 수준과 필요에 철저히 맞추었다는 점이 <그랜드종합주석>이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랜드종합주석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목회자와 전문가를 위한 주석서를 펴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획과 편집만 12년, 투자비 35억, 110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이 그것이다.
김 대표는 “목회자는 성경전문가여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라면 언어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원어로 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구약), 헬라어(신약), 라틴어(교회사) 등 언어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정확한 해석과 분해는 물론 읽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목회자들의 정확한 해석 돕고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도 기획
10여년간 휴가 반납하고 편집만 몰두, “40권으로 줄일까 생각도…”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은 목회자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원어 해설 강해’를 통해 쉽고 정확하게, 설교와 학술적 연구에 필수적인 성경 원어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기획한 작업을 위해서 결성된 제자원 편집진들은 휴가도 반납하고 10여년간 온 종일 전집 편찬에만 온 힘을 기울였다. 김 대표 역시 가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편집에 몰두했다. 재정의 부족함으로 인해 빚은 점점 늘어만 갔다. 영업을 위해 40권 분량으로 줄여볼까 생각도 했지만 필요한 모든 내용이 포함되기 위해서는 110권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10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 책값만 3백만원 정도 되지만, 김 대표는 “한국교회 구성원을 신뢰했다”면서 “책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면 3백만원을 주고서라도 구입할 것”이라 믿었기에 과감한 투자가 가능했다고 전했다. “경영이익을 따진다면 이러한 작업을 착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김 대표는 “한국교회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까 하는 고민 끝에 ‘사명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감성세대들을 겨냥한 가벼우면서 얄팍한 신앙서적들이 넘쳐나는 요즘의 세태와 비교하면, 제자원의 행보는 뚜렷하다. 자신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오롯이 유지하면서 뚝심있게 한 길만을 개척했다.
상업성 물든 전집류 출판사들은 성도들에 외면… “사명으로 해야”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성경을 깊이 사경하고 알고자하는 이들이 있어, 전집류 출판이 붐을 일으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기획과 편집을 철저히 하지 않고 상업적인 이익을 따라 출판을 한 결과, 정확하지 않고 빈약한 정보를 담은 결과물들이 독자들에게 판매됐다. 결국 전집류에 대한 매력을 잃어버린 독자들은 전집물을 외면하게 됐고,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전집류를 출판하던 건실한 출판사들은 단행본과 성경 위주로 경영방향을 수정했고, 출판 인재들도 강단이나 교단으로 흡수됐다. 전집류 출판은 지금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 됐다.
김 대표는 “기독출판은 이윤극대화라는 경영논리로 운영하기보다는 신앙심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면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나갈 때 목숨을 건 각오를 하는 것처럼, 기독출판인들도 투철한 사명감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독출판도 저널리즘의 한 형태이기에 계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