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전 인류 아닌 유대인들 위해 죽으셨나?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성경신학회, 대표적 복음주의자 라이트 비판

현재 한국교회의 복음주의적 칭의론은, 루터와 칼빈으로부터 이어진 개혁주의 칭의론이라 할 수 있다. 즉,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믿음’에 의한 것이며, 이는 사도 바울이 성경 갈라디아서 등을 통해 주장하는 바와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전형적인 복음주의 신학자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는 이 칭의론에 수정을 가하고 있다. ‘믿음’보다는 ‘행위’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 그것인데, 한국성경신학회(회장 박형용 박사)는 8일 서울 신반포중앙교회(담임 김성봉 목사)에서 제25차 정기논문 발표회를 갖고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먼저 발표한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는 라이트의 이러한 칭의론이 그가 전형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라는 점 때문에 더욱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라이트의 칭의론은)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복음주의를 모호하게 하거나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자인 N.T 라이트

▲영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자인 N.T 라이트

그렇다면 이날 논문 발표를 통해 언급된 라이트의 칭의론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했고, 이것을 사도 바울이 반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라이트에 의하면 당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통한 구원의 개념은 없었고, 전형적 바리새인이었던 바울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1세기 유대교는 ‘율법주의적’(a nonlegalistic)이지 않은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 nomism)를 갖고 있었다는게 라이트의 주장이다. 언약적 율법주의에서 은혜는 이스라엘이 맺고 있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율법의 행위는 그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작용한다. 바울도 선한 행위는 언약 안에 머무르는 조건이지, 그것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게 라이트의 견해다. 또한 그는 바울 시대의 유대교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바리새인인 바울은 당대의 많은 유대인들과 같이 이스라엘이 아직 포수기(바벨론 포로기, exile) 상태에 있으나 하나님께서 악을 파괴하시고 이스라엘을 빛나게 드러내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바울이 회개했을 때도, 흔히 알듯 그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자신의 구원관을 바꾼 것이 아니고,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포수기에 있는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해방시켰다고 믿게 된 것이라고 라이트는 말한다.

이러한 라이트의 해석은 바울이 구원의 개념을 보편적인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한 것이 아닌, 이스라엘에 국한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갈라디아서 3장 10~14절은 모든 인류에 적용되는 구절이 아니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갈라디아서 3장 10절 역시 바울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갈라디아서 3장 13절도 모든 사람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속죄신학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이트는 이 구절에 나타난 ‘우리’라는 단어를 유대인들로 국한시킨다.

라이트가 성경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가 명제적 본문 읽기를 지양하고 서사적 본문 읽기를 성경해석 방법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에게는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에 관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라는 개념이 근저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유대문헌이든지 ‘유대인들이 가진 이야기’를 이해해야만 올바른 접근이 가능하다. 라이트는 이러한 관점에서 갈라디아서 3장 10~14절을 이스라엘의 이야기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해석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전 인류가 아닌 ‘유대인들’을 위해 저주를 받아 ‘유대인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고 유배(exile)의 저주를 축복의 귀환으로 바꾸셨다는 해석에 이른 것이다.

결국 라이트의 칭의론은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이방인들은 ‘믿음’을 통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성경신학회는 8일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제25차 정기논문 발표회를 개최했다. ⓒ 김진영 기자

▲한국성경신학회는 8일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제25차 정기논문 발표회를 개최했다. ⓒ 김진영 기자

이승구 교수는 “라이트의 생각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삶 전체를 놓고 행하시는 것, 곧 ‘행위에 근거해서’ 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연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라이트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하심을 받으리니’라고 말하는 로마서 2장 13절을 매우 강조하면서 ‘바울이 여기서 행위로 말미암는 칭의를 진술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그의 칭의론 견해를 비판했다.

그는 또 “행위를 갖고 심판하신다는 이 계속되는 라이트의 주장은 ‘반 펠라기우스(semi-Pelagianian)주의’적 주장을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며 “사람들이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을 낼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으로 어떤 선행을 한 것이 마지막 날에 공로로 여겨진다는 것이 바로 천주교회적 반 펠라기우스 사상이 주장하는 바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라이트가) 성경을 주해하고 그 결과를 표현해낸 방식은 전통적 반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표현한 방식과 일치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며 “라이트가 자신을 반 펠라기우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려면 적어도 자신의 주해 방식과 궁극적 표현 방식을 고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라이트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자기 나름의 독특한 성경 해석에 사로잡혀 전통적 성경 해석에 대한 비판이 너무 크게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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