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문화원 2010 목요강좌서 첫 강연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왜 슬플까?”
뜬금 없고 무의미해 보이는 질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질문을 받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저 별 생각 없이 피식 웃어넘기리라. 그러나 그 질문을 던진 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 중 하나인 이어령 박사(이화여대 석좌교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화진문화원이 개최한 2010 목요강좌 첫번째 강의에 나선 이어령 박사는, 이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김소월의 짧은 시 한 수만으로 기독교와 한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통찰했다.
몇 년 전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이어령 박사는 11일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담임 이재철 목사)에서 ‘소월은 왜 강변에 살자고 했나? - 김소월의 시로 본 한국 문화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강연을 전했다. 교회에서 열린 강연이었으나 내용이 종교적인 데만 국한되지 않았던 데다가, 강사가 범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이어령 박사였던 만큼 비기독교인들까지 1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강연이 있던 선교기념관 뿐 아니라 홍보관 등 모든 공간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소녀가 맑고 고운 목소리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를 부른 뒤 강단에 오른 이어령 박사는 “이 시를 가사만 보면 전혀 슬픈 내용이 없는데 왜 이렇게 슬플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이유에 대해 이 박사는 “부르는 것은 다 슬프다”고 답했다. 부른다는 것은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게 보면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서 없는 것은 ‘엄마’와 ‘누나’이고, 있는 것은 ‘아빠’와 ‘형’이다.
이어령 박사는 이 시에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를 그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아빠’와 ‘형’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은 싸우고 투쟁하는 모습이지만, ‘엄마’와 ‘누나’로 대변되는 여성성은 생명을 낳고 생명을 살린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기독교에서는 분명 여성 원리가 강한데 교회에서는 늘 남성적인 것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남성의 권위가 무너진 ‘아버지 없는 사회’를 경계하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현실사회에 아버지가 없어지면 하나님의 메타포(은유)가 사라진다는 것. 그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붕괴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그는 이 시가 화자 공간과 작자 공간, 남성 공간과 여성 공간, 자연 공간과 반자연 공간 등 이중 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시가 묘사한 정경이 앞에는 시각공간이고 열려있으며 수평이고, 뒤에는 청각공간이고 닫혔으며 수직이라고 하는 등 짧은 시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설명했다.
이처럼 시에 대해 꼼꼼히 분석하던 이 박사는, “시는 지상의 논리로 알지 못하는 천상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이라며 “시나 소설을 보면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강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젊은이들이 무조건 믿기만 하지 말고 의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더욱 단단한 믿음을 세울 것을 조언했다.
그는 “예수님도 우리가 하늘의 것을 모르니 지상의 것으로 비유를 들어 시적으로 말씀하셨다”며 “그런데 시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니고데모처럼 문자 그대로만 알아들으면 ‘진짜 예수교’를 믿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사랑과 하나됨을 나타내는 언어 중에는 유독 ‘먹는다’는 것과 연관된 말이 많다고 설명한 이어령 박사는, “진리는, 사랑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되는 것은, 어금니로 적극적으로 씹어야 하는 것”이라며 “여러분들처럼 (지성으로) 무장된 사람들일수록 시를 읽어야 하나님과의 피가 흐르는 교감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편 100주년기념교회가 설립한 양화진문화원은 이날 첫 강의를 시작으로 4월 22일까지 매주 목요일 박완서, 김훈, 염재호, 박홍규, 안철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을 초청해 ‘함께하는 우리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갈등과 과제에 대해 듣는다.
특히 총 8회에 걸쳐 ‘이어령-이재철 대담 : 지성과 영성의 만남’도 계획돼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사람의 첫 대담은 4월 8일 ‘삶과 가족’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양화진문화원 측은 “날로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계층, 세대, 빈부, 성별, 이념 간의 갈등 해소에 힘을 보태기 위해 목요강좌를 개설한다”면서 “먼저 각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통합과 희망을 위해 헌신해 온 양심적이고 책임 있는 리더들의 목소리를 겸손하게 들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