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한국 총회, 자기 집에서 들러리 되지 않으려면”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NCCK 신앙과직제위원회 주최 세미나

3년 앞으로 다가온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회 부산총회를 앞두고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토론이 본격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NCCK 신앙과직제위원회가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를 주제로 25일 오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 소예배실에서 에큐메니칼 신학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교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부 보수 교계의 총회 개최 반대운동과 보-혁간 WCC 신앙 정체성 토론 등에서 벗어나 현재 WCC 내부의 관심과 방향성을 살펴보고, 부산 총회에서 논의될 내용들을 미리 알아보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교회가 해야 할 과제를 중심으로-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사회·윤리적 조명’을 주제로 장윤재 교수(이화여대)가 발표했다. 장 교수는 “WCC가 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 싶어 지난 겨울방학 때 스위스 제네바의 WCC 본부를 2주간 방문, 본부 임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털어놓았다.

유럽 교회, 이주자들로 인해 급격한 변화 겪어

▲장윤재 교수는 “WCC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이면서 인구의 1/4이 기독교인이고, 가장 높은 개신교 비율을 자랑하면서도 종교간 평화를 이루고 있는,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의 에큐메니즘이라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장윤재 교수는 “WCC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이면서 인구의 1/4이 기독교인이고, 가장 높은 개신교 비율을 자랑하면서도 종교간 평화를 이루고 있는,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의 에큐메니즘이라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장윤재 교수는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친교”라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지만, WCC의 핵심은 ‘대화(dialogue)’이고, 서로 다른 배경과 역사와 교리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만나 그동안의 다툼과 분열과 상쟁의 역사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가려는 ‘대화의 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WCC가 전개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가시적 일치(visible unity), 공동의 증언(common witness), 그리고 기독교적 봉사(Christian service)를 추구한다”며 “주어진 주제에 따라 셋 중 ‘봉사’를 중심으로 부산 총회를 앞두고 준비해야 할 과제를 제안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WCC가 제9차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 총회 이후 2007년 1월 중앙위원회 결의를 거쳐 현재 개편·운영중인 7개 프로그램<아래 참조>을 가만히 살펴보면 봉사가 일치 및 증언과 긴밀히 연결돼, 결국 ‘교회란 무엇인가’에 관한 깊은 신학적 성찰로 수렴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이같은 변화가 유럽 교회들이 직면한 새로운 현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세계화 영향으로 이주(migration)는 보편적 현상이 됐고, 유럽인들의 교회보다 더 큰 아프리카 이주자들의 교회가 유럽 안에서 생기는가 하면 이주 노동자 공동체가 유럽 교회의 성격을 바꾸는 등 유럽 교회는 다문화 교회가 되고 있다”며 “끝도 없는 이주자들의 행렬은 단순히 나그네들을 환대하는 차원(자선)을 넘어 그들을 고향에서 내모는 세계화 문제(정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WCC가 ‘일치’를 부르짖어 왔지만 변화된 상황에서 진정한 일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고, 선교가 단순한 응급처방(ambulance service)이 아니라 성서에 기초한 정의로운 경제체제를 옹호(advocacy)하는 차원으로 격상돼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봉사’의 영역이 ‘일치’와 ‘증언’에 도전하고 새로운 교회론과 선교론을 내놓도록 자극한다”며 “이러한 변화는 일치와 증언, 봉사를 기계적으로 나눠서 생각하는 우리들의 습속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주제 선정에 한국교회 의견 적극 개진을

장 교수는 현재 WCC가 추진중인 4가지 중요한 ‘봉사’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그것은 중동 평화, 에큐메니칼 평화회의, 가난-부-생태, 기후정의 등이다.

먼저 중동 평화에 대해서는 “만약 이번 총회가 경합지였던 시리아에서 개최됐더라면 세계교회는 앞으로 훨씬 더 중동의 평화 문제에 집중했을 것”이라며 “그런 아쉬움을 안고 이 문제 담당자들이 얼마 전 한국교회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중동교회에 빚을 지고 있고,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일해 온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어느 문제보다 깊은 관심과 연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에큐메니칼 평화회의에 대해서는 “평화와 화해 문제는 부산 총회의 유력한 주제 후보이기도 하다”며 “사실 부산 총회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시급히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주제 선정에서 한국교회의 목소리를 잘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세계적으로 과거 ‘정의·평화·창조’ 운동 이후 에큐메니칼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칠 새로운 신학운동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며 “한국교회는 오늘의 위기와 세계 속에서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이를 아시아 교회와 대화하는 가운데 세계교회 앞에 고백하고 제안할 때가 됐다”는 말로 총회 주제 선정에 주도력을 발휘하자는 바람을 피력했다.

가난-부-생태와 관련해서는 WCC 한 국장의 제안을 소개했다. 로마서 12장 1-2절의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인데, 이에 대해 “바울은 과연 교회가 ‘그리스도의 대안(alternative of Christ)’을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며 9차 총회가 ‘하나님, 당신의 은혜 안에서, 세상을 변혁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라고 했다면, 10차 총회에서는 그 변혁의 방향, 대안이 무엇인지 묻는 것도 좋겠다”고 풀이했다.

마지막으로 기후정의에 대해 장 교수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는 단순한 행동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과의 관계, 경제 정책, 소비, 그리고 생산 및 발전 등의 생각에 기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회개(metanonia)의 문제라고 WCC는 인식한다”며 “기후정의 문제 역시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영성의 문제이므로, 한국교회의 진정한 총회 준비는 이렇게 에큐메니칼 운동의 ‘삶과 일’에 함께 참여할 때 참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력(死力)을 다해야 한다, 능력-노력-매력-협력의 사력(四力)

▲장 교수의 강의에 앞서 김은수 교수(전주대)가 &lsquo;에큐메니칼 선교와 로잔운동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rsquo;라는 강의를 진행하며 지난 1백년간 이어져 온 &lsquo;에큐메니칼 선교&rsquo;와 &lsquo;복음주의 선교&rsquo;라는 현대 선교의 두 흐름을 고찰했다. ⓒ이대웅 기자

▲장 교수의 강의에 앞서 김은수 교수(전주대)가 ‘에큐메니칼 선교와 로잔운동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라는 강의를 진행하며 지난 1백년간 이어져 온 ‘에큐메니칼 선교’와 ‘복음주의 선교’라는 현대 선교의 두 흐름을 고찰했다. ⓒ이대웅 기자

장윤재 교수는 “이제 우리 앞에는 죽을 힘(死力)을 다해 달려갈 일만 남았는데, 그 전에 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있다”며 “오는 2011년 2월 WCC 중앙위원회가 공식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기 전, 한국에서 공식 준비위원회가 발족되기 전에라도 이번 총회 주제가 무엇이 돼야 할지 한국교회의 경험과 신학적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능력-노력-매력-협력의 사력(四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제네바가 다 알아서 할테니 우리는 멍석만 깔아주면 된다는 생각은 너무도 안이하고 소극적인 발상”이라며 “한국교회는 먼저 ‘능력’을 보여줘야 하고, 한국 기독교가 갖고 있는 자원과 힘을 최대한 결집해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계교회의 흐름을 따라 열심히 채우고 겸손히 부족한 것을 채우면서, 한국이 가진 5천년의 문화전통과 짧지만 식민과 분단, 독재에 저항하며 쌓아온 교회사적 전통의 ‘매력’으로 세계교회를 사로잡아야 하고, 무엇보다 모든 일을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부산 총회는 ‘혼자 몰래 먹기에는 너무 큰 떡’이자 ‘모두가 나눠먹고도 12 광주리 이상 남을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라며 “2014년에 세계복음주의연맹(WEA)도 한국에 온다는데, 어떻게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 순복음와 정교회까지 협력하는 가운데 이 일을 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자기 집에서 들러리가 되지 않으려면 지난 총회 때 브라질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총회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 한국과 아시아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는 제안이 부지런히 준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제네바에서 만난 WCC의 프로그램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한국교회 목소리를 듣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복음주의권 목소리를 적극 낼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된 셈이다.

“에큐메니칼의 반대는 에반젤리칼 아닌 섹테리안”

장윤재 교수는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만의 주가 아니라 세상의 주가 되시고, 성삼위일체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해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시다’”며 “그러므로 WCC의 대화는 교회 안에서 국한되지 않고 타종교로, 인류 공동체 전체로, 그리고 모든 창조의 세계로 확장돼 나갔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WCC는 분명 빈곤과 인권과 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참여’의 신학을 강조했다”며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정치적 해방으로 축소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을 결코 개인의 사후(死後) 영혼구원으로만 축소시킬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 사랑이고 그의 사랑은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며 “그가 다스리는 이 세상이 불의와 폭력과 생명파괴로 얼룩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고, WCC가 해 온 교회의 ‘봉사’ 혹은 ‘공적 증거(public witness)’는 이와 같은 신앙의 표현이었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에큐메니칼의 반대는 에반젤리칼이 아니라 ‘섹테리안(sectarian)’”이라며 “분파주의 혹은 당파주의는 자신의 특정 신앙체험과 진리 이해가 마치 유일하고 보편적이며 최고의 것인 양 주장하는 태도이고, 그래서 에큐메니칼 시각을 결여한 교회는 복음을 협소하게 해석해 스스로 끊임없이 분열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분열된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교회의 하나됨은 교회의 교회됨을 위한 하나의 관건”이라며 “이제 한국교회는 경쟁적이고 개교회적인 양적 팽창의 시대를 끝내고 질적인 성숙과 내실화를 도모할 때이고, 2013년 WCC 총회의 한국 유치는 바로 그런 패러다임 전환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초대”라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7개 프로그램이란 ①WCC와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WCC and the Ecumenical Movement in the 21st century) ②일치, 선교, 전도, 그리고 영성(Unity, Mission, Evangelism and Spirituality) ③공공의 증거: 권력에 집중하며 평화를 증언하기(Public Witness: Addressing Power, Affirming Peace) ④정의, 섬김, 그리고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Justice, Diakonia, and Responsibility for Creation) ⑤교육과 에큐메니칼 편제(Education and Ecumenical Formation) ⑥종교간 대화와 협력(Inter-Religious Dialogue and Cooperation) ⑦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등이다.

①은 세계 상황과 교회의 지형 변화 속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고, ②, ③, ④는 지난 1910년 에딘버러에 기원을 둔 ‘세계 선교(World Mission)’, ‘신앙과 직제(Faith & Order)’, 삶과 일(Life & Work)이라는 전통적인 세 강줄기를 표현한 것이며, 여기에 1907년 로마에 뿌리를 둔 ⑤와 최근 많은 중요성을 인정받는 ⑥이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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