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인정하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WCC 대토론회’ 보수·진보 신학자들 한 자리

▲WCC를 두고 보수와 진보 신학자들이 대 토론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김상복 박사, 이형기 박사, 김영한 박사, 양권석 목사(사회자), 심광섭 박사, 김명혁 박사, 채수일 박사. ⓒ 김진영 기자

▲WCC를 두고 보수와 진보 신학자들이 대 토론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김상복 박사, 이형기 박사, 김영한 박사, 양권석 목사(사회자), 심광섭 박사, 김명혁 박사, 채수일 박사. ⓒ 김진영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권오성 목사)가 26일 오후 서울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김홍기 박사) 웨슬리채플에서 WCC를 주제로 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한국교회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단체가 복음주의 신학자 3명, 진보 신학자 3명을 초청해 WCC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복음주의 신학자에 김명혁 박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영한 박사(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김상복 박사(할렐루야교회 원로)가, 진보 신학자에 심광섭 박사(감신대 교수), 이형기 박사(장신대 교수), 채수일 박사(한신대 총장)가 나와 WCC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털어놨다.

“보수와 진보, 서로에 귀 기울이자” 이구동성

입장차를 줄이기 위한 자리였던만큼 이날 토론은 자신의 의견 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발제자들 대부분이 ‘다른 점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합력의 방안을 찾아보자’는 의견에 공감했다.

심 박사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복음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이 마치 대립과 배척의 관계로 인식돼 왔는데, 이것은 잘못”이라며 “복음주의의 반대는 에큐메니즘이나 진보주의가 아니다. 복음주의의 반대는 율법주의와 가톨릭주의다. 따라서 개신교 안에는 복음적 전통주의와 복음적 진보주의가 있을 뿐”이라며 양 진영이 서로를 비판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했다.

김영한 박사도 “WCC 총회의 부산 유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지지한다”면서 “세계 기독교인들의 잔치인 WCC 총회를 부산에서 개최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WCC 총회에 부정적이지 않음을 드러냈다.

김상복 박사는 “WCC 공식 문서에 나타난 교회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WCC 총회가 이미 결정됐고,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한국인의 긍지를 위해서라도 최대의 예의를 갖춰 정중히 그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채 박사 역시 “그 동안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은 서로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그 신학적 기준이 모호하다”며 양 진영이 대립적 관계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김명혁 박사는 “(나는) 누구보다 WCC를 비판했던 사람이다. 근본주의적 색채가 짙었던 사람”이라며 “그러나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니 배울 점이 있었다. 복음주의 교회와 지도자들도 WCC 총회에 참석해 WCC의 급진적 입장을 비판하면서 복음주의적 입장을 나타내 보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각자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라며 “일부 복음주의적 교회가 부산 WCC 총회 개최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 보일 때 한국교회 안에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 개회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역시 WCC를 사이에 둔 양 진영이 ‘상생의 길’을 함께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박 목사는 “에큐메니칼과 에반젤리칼,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와 로만 가톨릭이라는 다양성을 인정하자.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며 “그러나 다양성의 인정에는 중요한 신앙적 기준이 있다. 바로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다. 토론을 많이 하되 항상 이 근본은 잃지 말자”고 말했다.

보수측 “범종교주의적 WCC는 ‘땅의 신학’”
진보측 “한 시대 주장 일반화 시키지 말아야”

그러나 양 진영을 대표하는 신학자들은 WCC의 기독론과 구원론, 교회론 등에서 상반된 의견을 내놓으며 서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김명혁 박사 등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전통적 입장에서 WCC의 다원주의와 지나친 사회참여 등을 비판했고, 이형기 박사 등 진보 신학자들은 그 반대편에서 WCC을 옹호했다.

김영한 박사는 “WCC는 복음을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아우르는 통전적인 복음으로보고 영적인 구원만이 아닌 신체의 구원에 대해서도 말한다”며 “구원을 가난하고 눌린 자의 해방이라고 해석하면서 바울이 증언한 십자가 대속의 복음, 죄로부터의 영혼 구원을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WCC의 구원론은) 실제에 있어 통전적인 구원론이 아니다”라고 WCC의 구원론을 지적했다.

김상복 박사는 “WCC 문서 자체엔 그다지 많은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서도 “그들의 과격한 표현과 행동이 복음주의자들을 자극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교회 일치를 외친 WCC가 50여 년 전 한국교회 분열에 빌미를 제공했고,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매우 아이러니”라고 안타까워 했다.

김명혁 박사는 “선교적 전통 위에서 시작된 WCC는 그러나 총회를 거듭하면서 그 선교적 관심을 지나치게 정치, 사회, 군사, 환경, 인권 등에 기울였고 범종교주의적인 대화와 포용의 입장을 취했다”며 “제6차 밴쿠버 WCC 총회는 보다 급진적인 방향으로 진행됐는데, 타종교와의 대화분과 위원장인 물더는 ‘불신자들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은 매력이 없는 하나님’이라고 지적하며 범종교주의적, 휴머니즘적 보편주의 신학을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총회에 참석해 그 진행 과정을 세밀히 살핀 나는 이 총회가 ‘땅의 신학’을 주창했다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이러한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진보 신학자들은 “WCC의 특정 총회는 분명 사회참여나 기타 복음주의자들이 비판하는 대목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총회에선 영혼구원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일치의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이형기)”며 “어느 한 시대에 나타난 WCC의 주장을 전 시대에 걸친 WCC의 입장으로 일반화시켜선 안 된다. WCC는 늘 변하고 있다(채수일 박사)”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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