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 교수 글 ‘하나님의 아들은 월경과 무관하게 탄생’ 전문
한스프라이의 내러티브 신학에서 본, 마리아의 월경 잉태론에 대한 신학적인 반론
1. 한스 프라이와 내러티브 신학
내러티브 신학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예일대학의 한스 프라이(Hans Frei)는 매킨타이어와 후기 비트겐슈타인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신예일학파’ 혹은 ‘자유주의 후기’(post-liberal)의 내러티브 신학자로서 그 유명한 <성서적 내러티브의 일식(1974)>을 저술하였다. 한스 프라이는 이 저서에서 성서적인 내러티브가 유럽의 기독교 역사에서 어떻게 일식(日蝕)되어 왔는지를 말하고 있다.
대체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고대 교부들에게서는 내러티브 신학이 지배적이지만 중세의 철학적 신학에서는 그것의 생명력이 질식을 당하였고, 16세기 종교개혁에 와서 다시 꽃피어났다가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에 오면 다시 그것의 활력을 상실했으며, 19세기 신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는 성서의 각 명제가 사실 지시적 가치(factual reference)를 지니고 있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였으나(propositionalism), 19세기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은 성서시대와 오늘날 우리들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사회문화적 혹은 문화 언어적 심연을 심각한 해석학적 문제로 보면서, 중요한 것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의 경험이고 이 경험의 표현인 성경본문(experience-expressivism)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데 반하여, 내러티브 신학은 성서의 이야기를 “성경의 실제적인 혹은 역사 같은 이야기들”(realistic or history-like stories of the Bible)로 보면서 구속의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와 이야기들(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다른 장르들도 있으나)에 나타난 계시와 구속과 신학을 중요시한다.
이것은 “실증주의적인 사실주의”(positivistic factualism)와 “문학”(literary turn 혹은 linguistic turn) 사이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 즉, 이 입장은 성경을 “픽션이 아닌 픽션”(non-fictional fiction)으로 본다. 즉, 성경의 중심 줄거리는 “역사 같은 이야기와 이야기들”(history-like Story and stories)이라고 하는 말이나 마찬 가지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본문들은 하나의 거대담론과 작은 이야기들(the One Grand Narrative와 small stories), 역사서들, 시편, 지혜문서, 예언서, 서한들, 묵시서들 등으로 되어있고, 성경의 명제들(propositions)은 이와 같은 장르들 안에 자리하고 있고 그 곳에서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말이다.
성경의 “거대담론”은 “초문화적인 거대담론”(transcultural Meta-narrative)을, 그리고 나머지 장르의 글들은 역사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진 메시지들과 가르침들과 명령 등을 포함하고 있다. 오늘의 역사와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사는 우리는 전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후자를 해석하면서도, 후자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을 감안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걸 맞는 다양한 메시지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러티브 신학은 성경의 본문을 중요시한다. 데리다가 주장하는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명제가 내러티브 신학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요하다. 이 신학은 성경 본문들 안에 있는 신학적인 논리를 중요시하고(intra-textuality), 분문과 분문의 관계에서 신학논리를 추구하다(inter-textuality). 그러니까, 인간학이나 사회학이나 역사철학과 같은 성경 외적인 해석학적 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최종 본문, 본문들, 그리고 본문과 본문의 관계 혹은 단락과 단락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신학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스 프라이에게 영향을 준 H. R. 니버는 신약성서의 주요 내러티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후 성령강림과 더불어 시작된 사도들과 초기 공동체의 설교에 나타난, 회상된 이야기들로 본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현과 관련된 큰 사건들에 대한 하나의 단순한 이야기요, 제자들의 공동체에게 일어난 것들에 대한 하나의 신앙 고백이다.…” 그리고 니버에 따르면, “신비들과 감추어진 지혜”에 호소하는 고린도 교회의 영성주의자들에 반대하는, 고린도 전서 15:1-8 역시 복음서 내러티브의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이야기“를 전승으로 받았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니버는 요한복음의 로고스와 빛과 생명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고,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스데반의 설교 역시 “기독교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의 큼지막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누가복음 1:1-4절 역시 이미 복음 사건들에 대하여 이야기한 사람들이 많다며 누가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나름대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도들과 초기 교회의 설교는 구약의 구속사의 이야기들을 회상하면서 복음의 사건들을 설명하였으니, 오늘에 이르기 까지 교회 공동체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이야기는 하나님의 계시 이야기에 해당한다. 성서 그 자체가 계시라기보다는 성서의 내러티브들이 그것을 담지하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한스 프라이 역시 복음서 내러티브를 주님의 부활 후 성령강림으로 비롯된 사도들의 선포 속에 있는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야기’로 보는 것이다.
2. 한스 프라이의 내러티브 신학
한스 프라이는 그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서 공관 복음서가 제시하는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말한다. 프라이에 따르면, 복음서의 주인공은 대체될 수 없는 인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시고(마 1:1-25), 모든 인류를 대표하시는(눅 3:23-38) 신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이 하나님 나라를 말씀과 행동으로 미리 보여주셨고, 부활하셨으며, 재림을 약속하셨다.
따라서 공관복음서는 이스라엘과 인류의 대표로서 이들의 죄와 죽음과 흑암의 권세를 대신 걸머지시고 세례를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참 인간이시요, 하나님 나라의 대표(인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왕 등)로서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께서 선포하시고, 행동으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3. 마리아의 월경 잉태론에 대한 신학적인 반론
우리는 성경의 명제들이나 단락들을 복음서의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이야기’ 전체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 한스 프라이에게 있어서 공관 복음서의 핵심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어 모든 인류를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고, 시험을 당하였으며,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하셨으며, 급기야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셨다고 하는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이야기이다.
이제 필자는 ‘성령-기독론’과 ‘삼위일체론’으로 프라이의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이야기를 보완함으로써, 마리아의 하나님의 아들 잉태에 대하여 논하려고 한다.
즉, 아버지로부터 나오시어 아들 안에 계시던 성령께서(내재적 차원) 다시 아들로부터 이 땅으로 파송되셨으니(경세 차원),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게 하시고, 모든 인류를 위하여 이 아들에게 세례를 베푸시고 성령을 내려 주셨으며, 그를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인도되시어 시험을 받게 하셨고, 성령으로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게 하셨으며, 급기야 성령을 통하여 모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게하셨고, 모든 인류와 모든 우주의 새 창조를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그를 부활하게 하셨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피가 아니라 성령으로 하나님을 잉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임하신 위격(the Person of the Holy Spirit)으로서의 성령께서는 이상과 같은 아들의 하나님 나라 사역에 근거하여 그리고 아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하에서 교회를 창조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여 낳으셨으니, 그녀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시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는 마리아를 인간의 어머니로 보는 네스토리우스의 입장(anthropotokos)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어머니로 보는 시릴의 입장(theotokos)을 지지하였다. 그래서 정통 기독론을 확정한 451년 칼세돈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못 박았다. 결국, 마리아는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신,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님을 낳으셨다고 하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월경과 무관하게 태어나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은 월경과 무관하게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태어나신 것이고, 내재적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선 아버지로부터 영원 전에 낳음을 입으셨다(eternally begotten). 그리고 성령께서는 아들로부터 시간 차원(경세 차원)으로 파송되시기 전에 아들의 아버지이시요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발출하셨다. 이 성령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성서의 중심 이야기를 중요시하는 내러티브 신학은 성서의 어떤 한 명제에 대한 생물학적, 사회학적, 역학적, 철학적인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마리아에 대한 성서의 명제들을 이상과 같은 기독론적이고(한스 프라이) 삼위일체론적인(몰트만) 하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이야기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성서의 명제를 생물학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돼
그러니까, 하와와 뱀(사단)의 성관계에 의한 가인의 탄생이나 마리아의 월경 잉태론과 같은 주장은 성서의 명제를 생물학적으로 보려고 하는 오류에 빠져있으며, 창세기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창세 이야기에 대한 자연과학적 이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100세가 넘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 역시 성령을 통한 것이었다.
출처: 에클레시안
http://www.ecclesian.com/sub_read.html?uid=1712§ion=sc55§ion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