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 ‘도마복음…’ 비판
도올 김용옥 씨가 최근 ‘도마복음한글역주’(통나무)를 완간하며 또 한번 기독교에 도전적 메시지를 던지자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차정식 교수가 김 씨의 책과 사상을 분석한 글을 최근 한 언론에 기고했다.
‘도올 김용옥의 도마복음한글역주를 평함’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차 교수는 “도올이 자신의 신념에 강하게 함몰된 나머지 도마복음에 대한 전문학계의 논의를 편취해 그것이 보편적 대세인 양 선전하고 있다”며 “이러한 방식에서 왜곡된 과잉 열정과 그로 인한 파행의 흐름이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김 씨는 ‘도마복음…’에서 “도마복음이 영지주의 사상에 기초해 기존 복음서의 내용을 짜깁기한 후대의 외경문헌이 아니라 그것들 본래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로빈슨, 크로산 등 서구 학자들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차 교수는 “도마복음이 예수의 본래적 원형을 담아내고 있다는 주장은 도올의 말대로 학계의 대세가 아니며 일부의 주장일 뿐”이라며 “그가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크로산을 비롯한 학자들은 북미 성서학계의 지극히 적은 일부 신약성서학자들 및 고대기독교문헌학자들”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대중적 어필을 목적으로 한 의도적 파격임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진술은 과도한 자의식의 도취로 인해 더러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사실의 왜곡과 황당한 허세를 동반하는데, 이는 그의 학문적 성취를 얼룩지게 하는 결함”이라며 “가령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재판 운운하는 거창한 장면들은 모두 마가의 드라마 구성에서 연유된 픽션으로 간주되는 것이 현재 성서학자들의 대세’라고 하는 것은 직관적 판단을 넘어 과도한 비약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차 교수에 따르면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를 보는 김 씨의 시각은 대략 다음과 같은 말들에 잘 나타난다.
“묵시주의적 종말론과 예수에게 부과된 온갖 기독론적 인식은 후대 교회에 의한 왜곡이다. 그것은 고작해야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에 의한 복음서 작가들의 변형 결과였을 뿐이다” “도마의 예수에게 천국은 시공간의 개념으로써의 천당이 아니요 곧 주체의 개벽일 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결국 도마복음의 예수가 보여준 구원의 길은 개인의 해탈이요 득도에 다름 아니었다” “구원론과 관련해 예수에 대한 일체의 신앙을 거부해야 한다. 오로지 예수의 말씀에 대한 해석과 깨달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과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예수는 니체보다도 더 본질적인 무신론자다”
차 교수는 “무모한 일반화 등은 동서고전을 섭렵한 저자의 방대한 탐구 의욕이 섬세한 학문적 검증의 결여라는 패착으로 드러난 사례”라며 “이러한 과잉 자의식은 한 술 더 떠 ‘나 도올을 모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 도올이 말하는 말씀에 내재하는 성령, 그 진실을 모독할 수는 없다’는 식의 치기어린 독백으로 추락하기도 하는데, 이는 너무 비성찰적인 진술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의 탐구 정신은 기독교인들도 배워야”
김 씨의 이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차 교수는 학자로서의 그의 탐구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차 교수는 “도마복음의 사상적 정수를 발견하고 예수의 원형적 신학을 조명하면서 도올은 그 특유의 풍부한 동양사상적 지식을 맘껏 활용한다”며 “동서사상의 융합과 소통을 도모하고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을 기획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고 했다.
또한 “특히 그의 비판적 지적대로 자폐적이고 배타적인 체제의 논리를 고수하면서 사회적 반성과 검증을 거부하는 한국교계의 인습적 관행에 비판적 메스를 가하려는 그의 예언자적 결기는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리라 본다”며 “동양사상의 원융적 지혜와 이로써 촉발되는 계몽적 선기 역시 도마복음의 주해뿐 아니라 교조주의적 체계로서의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성찰적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차 교수는 “그는 도마기독교의 원산지인 근동의 여러 지역을 장기간 여행하면서 온 몸으로 자신의 지식을 검증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더했다”며 “이 치열한 탐구 정신의 진취성과 구도자적 모험의 개방성은 그를 싫어하는 기독교인들도 열과 성을 다해 배워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인류 문명의 기원과 역사의 원형을 찾아 온 몸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치열한 예수의 구경적(究竟的) 신학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