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큐티] 9월 4주 552장 빛의 사자들이여(259장)
-찬송묵상: 빛의 사자들이여 동서남북 땅 끝까지 복음의 빛 비추자
-찬송요약
1절: 주님을 알지 못해 어두움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복음의 빛 비추자
2절: 주 함께 하시니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어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자
3절: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산과 바다 건너가 복음의 빛 비추자
4절: 어두워서 못 보는 백성들 동서남북 땅 끝까지 찾아가 복음의 빛 비추자
-찬송가 해설
작시자 루이스(J.E.Lewis)와 작곡자 제임스 에드먼드 죤스(J.E.Jones)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에서’에서 말하는 ‘빛의 자녀들’이라 함은 이 땅에서 죄로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어야 하며,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야 하며, 주님 부탁하신 선교의 사명(마 28:18-20)을 이루기 위하여 동서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가서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 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같은 빛의 사자들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 이겨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죄로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일 수가 없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40대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고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며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고후 11:24-27)
하지만 이러한 모든 어려움들을 믿음으로 이기어 낼 때 비로소 복음이 확장되었듯이 우리도 단순히 주일 예배 드리는 정도의 신앙생활에 만족해서는 안되며, 나아가 남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도록 영적 무장을 해야 한다. 이 같은 영적 무장은 성경읽기와 묵상훈련 등으로는 부족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에 ‘그런즉’이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뜻은 ‘빛의 자녀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란 뜻으로 해석해야 하며 그리고 연이어 18절에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였듯이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의 자녀로서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는 빛의 사자들로서의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할 수가 있다.
-찬송 설교
‘빛의 사자들이여’라는 찬송을 통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우리에게는 빛의 자녀로서의 신분과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과 9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가 빛의 자녀라는 사실과 또한 빛의 자녀들이 행하여야 할 여러 가지 본분과 사명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먼저 몇 가지 질문부터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태어나면 모두가 다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어떤 전제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빛의 자녀는 아닙니다.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참 빛의 능력과 본질이 되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먼저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빛의 자녀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빛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그에 대한 답변은 요한복음 1장 9절과 요한복음 8장 12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장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였습니다. 두 말씀을 통해 빛의 아버지는 다른 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마음 속에 영접할 때 빛의 본질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악한 것들과 불평불만 근심 염려 걱정들을 다 몰아내어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 5:14)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비추기 위함이라.”(눅 8:16)는 말씀에도 있듯이 빛의 자녀들은 등대와 같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 멸망과 심판과 진노에 이르지 않도록 사람을 구원해내는 영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빛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채 전도 한번 하지 못하고 매일매일의 반복되는 죄와 부끄러움 속에서 습관적인 회개와 예배를 통해 위안받고 사함받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제가 군 시절에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첫 자대배치를 받은 날이 수요일, 저는 당연히 수요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신병 중에 교회 갈 사람이 있느냐?”고 묻기에 “저요!” 대답을 하고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돌아와서 “신병이 신고식도 하지 않고 겁없이 교회를 다녀와, 이런 놈은 분명하게 얼차려를 받아야 하지” 함과 동시에 얼마나 많은 매를 맞았는지 인생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이 맞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주일날도 역시 교회를 출석하였고, 그 날도 반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또 수요일 저녁에 또 교회를 갔습니다. 고참 한 명이 아예 저를 이를 갈고 잡더군요. 그 당시 혹독한 매질과 고문으로 온전히 걸어 다닐 수 없음을 물론, 한쪽 귀가 찢기어 덜렁거리고 심한 훈련과 얼차려로 살이 썩어 곪는 등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진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나의 믿음과 신앙을 굽히지 아니할 때 부대장을 위시하여 내무반의 전 사병에 이르기까지 “저놈은 확실한 예수쟁이야! 저 놈은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날 교회를 가야되는 놈이야”라는 인정을 받게 되고 그로부터는 조금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병이 되면서부터는 사병들을 이끌고 영내 밖에 있는 민간인교회를 출석할 수가 있는 행운과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맨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이 위기를 잘 딛고 일어서면 출석하는 신앙에서 전도하는 신앙으로 간증하며 찬양하는 신앙인으로 바뀌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선한 싸움 즉 선한 역사를 위하여 힘을 내어야 합니다. 어떠한 고난이 내게 닥쳐온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살전 5:16-18) 모든 고난과 싸우며 담대하게 복음의 빛을 증거하며 전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놀라운 부흥의 역사, 은혜 충만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