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6:9-13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가치 바꾸기>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도 이해하기 곤란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불의의 재물은 세상의 물질이고 없어질 재물입니다. 청지기는 물질로 인심을 삽니다. 청지기는 물질관계를 인간관계로 발전시켜나갑니다. 구체적인 것으로 궁극적인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구체적 가치는 건강, 물질, 권력 같은 힘에 속하는 것이고, 궁극적 가치는 구원, 자유, 평화 같은 사랑에 속하는 것입니다.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청지기가 물질을 빼돌린 것은 아닙니다. 물질로 마음을 산 것입니다.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썼고, 쾌락이 아닌 투자를 했습니다. 친구는 물질보다 상위의 가치입니다. 썩을 것으로 썩지 않을 것을, 없어질 것으로 영원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삽니다.
<땅의 보화 창고 vs. 하늘 보화 창고>
이렇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둡니다. 물질을 하나님 나라에 가지고 갈 수는 없지만 미리 보낼 수는 있습니다. 이 땅에 살 때 하나님 나라에서 쓸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물질도 제대로 못 나눈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어떻게 맡기겠습니까? 여기에 “작은 것”과 “큰 것”,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 “남의 것”과 “너희의 것”, “재물”과 “하나님”이 서로 대격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한기채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