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가 없었다면 신은 권위를 잃었을 것이다”

이미경 기자  mklee@chtoday.co.kr   |  

[영화리뷰] 바흐 이전의 침묵

매년 고난 기간에는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이 곡의 탄생전설은 유명하다.

바흐가 세상을 떠나고 50년 후, 지휘자와 작곡자로 유명한 멘델스존이 우연히 하인이 가져온 푸줏간에서 고기를 싸준 종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고 펼쳐보는데, 그것이 바로 바흐가 작곡한 ‘마태수난곡’ 악보였던 것. 멘델스존은 1829년 3월 11일 베를린 징아카데미에서 마태수난곡을 초연 지휘하면서 19-20세기 바흐 부흥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


‘음악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독일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악기를 익히고 궁정악단에서 연주와 지휘를 맡았던 바흐는 바로크음악을 대표하는 수많은 곡을 남겼다. 동시에 그는 교회음악가였다. ‘요한수난곡’, ‘마태수난곡’을 비롯해 각종 칸타타 등 그는 수많은 교회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평생 교회를 벗어나지 않고 신탁을 받은 사제처럼 음악에 몰두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바흐에 대해 “그는 시냇물이 아니라 크고 광활한 바다라고 해야 마땅하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에밀 시오랑은 “바흐가 없었다면 신은 권위를 잃었을 것이다. 바흐가 있기에 세계는 실패작이 아닐수 있었다. 바흐 이전에도 세계는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 울림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은 그간 명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흐를 조명하며, 그의 삶과 음악을 성찰한다. 이 영화에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비롯해 ‘무반주 첼로조곡’, ‘평균률 클라비어 곡집’, ‘예수는 나의 기쁨’, ‘6개의 파르티타’, ‘나는 만족하나이다’, ‘오소서 거룩하신 성령이여’, ‘파니피카트’ 등 바흐가 작곡한 14곡이 시종일관 흘러나온다.

▲특별한 내러티브가 없이 바흐의 음악이 주인공이 된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

▲특별한 내러티브가 없이 바흐의 음악이 주인공이 된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


특별한 내러티브가 없는 영화이기에 약간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덕에 바흐의 음악은 전적으로 영화 속에서 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피아노가 스스로 건반 연주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노 조율사, 하모니카를 늘 가지고 다니며 틈만 나면 하모니카를 부는 트럭운전사, 바흐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며 관광객을 맞이하는 가이드 등을 따라가며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사람들이 바흐의 음악과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묘사한다.

피아노, 오르간, 첼로, 하모니카, 어린이합창단들의 목소리 등 바흐의 음악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연주들을 감상하노라면 그가 죽은 지 2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의 음악은 살아남아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음을 발견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바흐가 묻혔던 성토마스 교회 어린이 합창단의 연주로 장식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성토마스 교회 음악감독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그는 “믿지 않는 어린이들이 합창단에서 활동하지만, 바흐 음악에서 풍겨나는 영성에 영향을 받아 나중에는 세례를 받는 이들이 많다”면서 “성토마스합창단은 세속화된 세상에 종교음악을 알리고자 존재한다”고 말했다.

바흐의 음악은 정확하고 엄격한 질서를 품은 동시에 음악 본연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내적인 평안을 추구하며 평생 교회에서 묵묵히 오선지를 채워나갔던 바흐, 그의 소박했던 성품은 음악 속에 영원히 살아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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