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이 환경을 변화시킨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요약>
1.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1) 악은 양적인 것이 아니고 질적인 것으로 못된 성질을 가진 사람은 악한 행동이 넘쳐남
2) 악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 혹은 반(反)신론적임(시 10:4)
3) 악한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뿐임(요 10:10)
4)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야 악한 옛 사람을 모습을 벗을 수 있음(골 3:8-10)
2.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1)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는 행동이다 -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자기 영혼을 지키는 것임(출 20:3-17)
2) 계명이 없으면 범법함이 없고 죄도 없다 - 율법이 있기 전부터 죄가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음(롬 5:13)
3) 길이란 행위를 말한다 - 율법을 범하는 행위를 안 하면 죄인의 길을 피할 수 있음
4)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면 죄의 길을 벗어나게 된다 -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킴(롬 8:1-2)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음
1) 마귀가 인류를 꾄 조건은 오만이다 -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된다고 하며 유혹함(창 3:5)
2) 아담과 하와는 오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에덴에서 쫓겨났다
3) 바벨탑의 오만과 하나님의 심판 - 교만한 인간에 대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흩으심
4. 복 있는 사람
1)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함 - 복 있는 사람은 늘 말씀 읽기를 즐거워함(시 1:2)
2)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 모든 길이 평탄하고 형통케 됨 (수 1:8)
3) 복 있는 사람 - 환경이 복되어서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으로 인해 환경도 복되게 변하고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임(시 1:3)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려면 복인(福人)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천국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같이 되어 모든 길이 평탄하고 형통한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음만 조금 먹으면 사랑과 행복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랑과 행복을 나누기로 결심을 하고 우리 한국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서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있으니 정말 사랑과 행복이 우리 가슴속에도 넘쳐납니다. 여러분께서 이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것을 너무나 크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큰 은총과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주실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50년 전부터 제게 가난하고 병들고 어렵고 고통당하는 자에게 소망을 주라고 말씀을 하셔서 소망을 전하면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을 전하라고 하셨으니 소망을 전하면 하나님을 믿게 되고 믿게 되면 하나님이 함께 계신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이됩니다. 오늘도 여러분 소망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2부예배 때 이영훈 목사님 설교를 텔레비로 듣고 병자위한 기도할 때 나도 기도한다고… 왜냐하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을 실천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뭘 잘났다고 자기는 기도 안받겠다고 버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께서 믿음으로 주를 찾으면 주님이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더불어 “복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뭘 하나님께 나오면 복을 받느냐. 그런데 저는 그와 같이 생각을 안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적 육적인 존재의 근원이요, 아버지신데 아버지께 나와서 복을 안 받으면 누구에게 복을 받습니까? 왜 아버지께 나와서 복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당연한 이치지. 아버지께 나와서 복 받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 당사자가 좀 잘못되었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창세기 12장 2절로 3절에 읽은대로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불러 내실 때 제일 첫째 약속이 복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면 복주겠다. 하나님께 나오면 쥐어박겠다고 말 안했었습니다. 고통을 주겠다고 말 안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말만 들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을 들으면 아브라함이 마음 속에 꿈이 창대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이 말씀을 들었으면 화닥딱 일어날 것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제게 이런 말씀을 주십니까? 놀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다 받아야만 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써 복 있는 사람이 되어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를 오늘 성경에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복을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복받을 수 있는 조건에 관해서 하나님 말씀하시는 것은 귀를 안기울일 때가 많습니다.
<본론>
1.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첫째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에는 악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악이란 것은 양적인 것이 아니고 질적인 것입니다. 저 사람 악이 굉장히 많다. 저 사람 악이 조금 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 악이 아주 깊다. 저 사람 악이 그리 깊지 않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성격이 악질인 사람 그렇게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도 있습니다만 두려워해야 될만큼 마음이 아주 악질인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그 입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악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고 하나님 말씀한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에서 입으로 말을 합니다. 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은 마음에서 쌓은 선을 통해서 입으로 선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사람 말을 들어보고 아~ 악질이구나. 아~ 선한 사람이구나. 우리가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 혹은 반신론적 사람인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 중에 어느 정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시편 10편 4절에 보면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야훼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악인은 하나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반역하는 악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 드리지도 아니하고 공경하지도 아니하는 악질이 있는 것입니다. 악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원래 여러분, 악은 천사장 루시퍼를 통해서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천사장 루시퍼는 하나님이 만든 천사 중에 가장 훌륭한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이 루시퍼를 만들어서 천국에 있게 했는데 루시퍼가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서 하나님의 북극산 위에 자기 보좌를 배설하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겠다고 하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천국에서 쫓겨나서 지금 하늘나라와 우리 지구 사이 공중에 권세 잡은 권세로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마귀는 옛날에는 찬란한 새벽별이었습니다. 영광의 광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흑암의 권세요, 더럽고 추악한 귀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루시퍼에게 잡히면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루시퍼에게 걸렸습니다. 루시퍼가 아담과 하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동산에 모든 실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와가 빨리 대답을 했어요. “동산의 모든 실과는 따먹되 이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뭐 결론 내려 버렸습니다.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죽을까 하노라. 안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천만에~ 이것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 너도 하나님처럼 똑똑해진다. 먹어!” 그러니까 그것을 따 먹고 머뭇거리는 남편에게 먹으라고 하니까 “잔소리 말고 먹어!”남편인 아담에게 강요를 해서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그때로부터 이 세상에서 마귀의 악과 하나님의 선 두 사이에 끼어서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마귀는 우리 인류에게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와서 좋은 일을 해주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전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밖에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귀에서 놓여남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그 대가를 지불한 것이니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신해서 그 후손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면 마귀가 다른데 다 큰소리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 나타나면 맥을 못춥니다. 그리스도 보혈 앞에는 기진맥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보혈의 찬송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8절로 10절에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습대로 형상을 우리가 본받아 입었은즉 이제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깨끗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항상 투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값없이 용서와 의를 받고 거룩함을 받고 성령을 모셨는데 계속해서 마귀의 유혹이 있고 세상 유혹이 계속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넘어져서 상처를 입고 의의 옷이 더러워지고 거룩함을 상실하고 부끄러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늘 이 고통 가운데 있는데 언제고 그는 완전히 죄악을 이기고 주님 앞에 의롭고 거룩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을 주님이 버리시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을 영원히 주님의 백성으로 이미 정해 놓고 품에 품은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을 낳아서 기르면 자식이 자라는 동안에 넘어진다고 발길로 던져 버리고 수채에 빠진다고 발로 걷어차 버리고 진흙창에 넘어진다고 내버리고 그렇게 합니까? 그렇게 하면 하나 놓아 기를 여가도 없어요. 뭐 둘 낳을 기대도 할 수 없고… 그러나 우리는 자식을 하나에서 아홉, 열을 낳아도 전부 넘어지면 또 거두고 옷이 더러워지면 또 새로 벗기셔서 빨래를 새로 하고 손발이 더러워지면 씻어주고 몸을 닦아주고 그 부모의 자식을 기르는데 들어가는 정성이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요, 아버지지. 그게 남이 아니고 친아버지요, 친어머니가 다른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우리 친아버지인 것입니다. 우리 가짜 아버지가 아닌 것입니다.
형식상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그 억센 고통을 감래하고 몸찢고 피흘려서 여러분의 죄를 한평생 청산한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할 때 한평생 아니라 영원히 다 청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이후로는 여러분,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짓을 하더라도 주님은 또 회개시켜서 또 정하게 하시고 또 씻으시고 계속 보혈로 씻습니다 이제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계속 씻어서 성령으로 새로워지고 새로워지고 그러면 점점 여러분이 하나님 자녀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점점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안따르게 되면 그때부터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악인의 꾀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유혹을 통해서 우리를 넘어뜨리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유혹이라도 유혹을 받아들이지 말고 유혹을 발길로 차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서면은 유혹이 없으면 악도 안따라오고 우리가 마귀에게 상처도 입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가지고서 여러분을 유혹해서 넘어뜨려서 악인의 손에 잡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믿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인의 거짓말을 안 믿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우리는 본격적으로 마귀에게 쇠사슬에 꾀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 진리에 어긋나는 길은 단호히 싸워서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혈을 보내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치고 이 땅에 있는 종교 중에 성령을 보내서 도와주는 종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른 보혜사는 헬라어로 알로스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알로스라는 말은 예수님 말은 두 개가 있는데 똑같은 것중에 하나 다른 것, 알로스. 파라클레토스란 무슨 말이냐면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 자. 그분이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나서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악에서 이겨내기 위해서 힘을 주기 위해서 보혜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외롭지 않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와서 계십니다. 어떻게 와 계신 것을 내가 아느냐? 성령이 와서 여러분을 손잡고 이끌어줬기 때문에 오늘 교회에 나온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열심히 있어서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을 감화, 감동 시켜서 기쁘게 교회 나오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를 악에서 건져 내시고 악의 유혹을 이기고 감화, 감동적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대비해 놓은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둘째, 복있는 자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죄는 뭐가 죄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9장 16절에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계명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계명을 지켜서 이것 이것 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것을 하면 하나님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중심적인 계명은 뭡니까? 십계명!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엄한 중심적인 계명은 십계명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계명이라면 십계명 빼놓고 난 다음에는 그렇게 중대한 계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은 유대교의 십계명이요, 우리 개신교의 계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 20:3~17)
그게 열가지입니다. 그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을 다 지키고 살사람이 없다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나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자가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꼭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다구요. 하라 하라 하면 덜하는데 하지 말라 하면 그것 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노? 내게 좋은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아닌가 살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계명이 없으면 법이 범함이 없습니다. 범함이 없으니까 죄인이 아니지요.
로마서 5장 13절에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이 없는데 무슨 죄가 죄가 됩니까? 율법이 있으니까 율법을 어겼으니 죄를 지었지요. 그런데 율법을 범하는 행위를 안하면 죄의 길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의 길로 걸어가는 길이 있어요. 그 죄의 길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율법으로 가는 길을 피하면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0장 9절에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이게 바른길, 굽은 길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러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올 때 언제나 율법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율법을 가지고서 오늘날 지켜 주었느냐, 안지켜 주었느냐, 가장 주님을 과거에 시험한 것은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이 여자는 죄인의 길에 서있었다. 간음하는 현장에서 우리가 잡았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에게 훌륭한 정의감을 가르키기 위해서 일부러 당신에게 데리고 왔다. 당신 어떻게 하느냐 이 여자! 참 땅팔 노릇입니다. 힘든 일이에요. 왜, 보통 사람 같으면 힘들지 않아요. 보통 사람 같으면 죽여 죽여!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거든요.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굉장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발길로 차버리고 던져 버린 것도 예수님은 충심으로 사랑하는데 그 여자를 돌로써 쳐 죽이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계속 와서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으니 당신은 어떻게 하느냐? 율법은 돌로 쳐죽이라고 했다. 당신 율법을 어기면 당신 하나님 아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자리에서 손가락으로 적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에 적은 것을 다 그들이 어깨 너머로 보니 틀림없이 예수님이 십계명을 적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네가 십계명을 떠나서 어디를 가겠노? 올바르게 산다. 바른길로 간다. 그런데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다 적고 난 다음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시고 난 다음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먼저 쳐라!
그리고 난 다음 주님께서 엎드려서 또 글로써 쓰는데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까 전부 자기 죄를 다 적는 거라. 예수님이 그 옆에 서서 돌을 들고 여자를 쳐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죄를 다 적어 내려간다. 그러니 가만히 보니까 자기 돌로 쳐서 이 여자를 쳐 죽였다가는 그 다음 예수님의 손에 의해서 돌에 맞아서 죽겠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른체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돌을 내버려 놓고 달아나 버려. 다 달아나버려. 잠시후에 예수님이 고개를 드니까 돌무더기가 이렇게 쌓였습니다. 돌무더기가. 그 예수님께서 여자보고 너희 정죄하는 자들이 다 어디갔나? 보니까 돌무더기만 쌓여있고 사람이 없거든. 없나이다.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돌아가서 다시 죄짓지 말아라!
까다로운 조건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약한 율법을 어기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주님이 거듭나고 성령받아 능력을 얻을 때까지 의무와 책임을 짊어지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아무리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지킬 힘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죄도 이기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 다음에 거듭나게 하신 다음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의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면 죄의 길을 벗어날 수 있어요.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누가 해방했다구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도 역시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죄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유혹해도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자유, 해방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에게 올 수 있는 길은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다 청산되었으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없어지고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마음대로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와 불의가 다 청산되고 의롭고 거룩하게 되고 성령이 오셔서 성령이 그 능력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성령이 성가대원 여러분 붙잡고 계세요. 여러분도 성령이 붙잡고 계세요. 앞에 계신 여러분도 성령이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성령이 붙잡고 계세요. 우리가 성령님을 항상 같이 계신 분으로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성령께 부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이 여러분의 부탁을 안 받으면 강제로 역사 안해요. 여러분의 부탁을 받아야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신데도 불구하고 부탁을 안하기 때문에 여러분 인간의 힘으로 죄와 불의와 추악과 저주와 절망과 싸우다가 좌절하고 낙심하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와 계신 보혜사 성령님을 언제나 여러분 인정하십시오. 환영하십시오. 모셔들이십시오. 의지하십시오. 저희들이 식당에 가든지 서비스업에 가면 그 주인이 기겁을 하고 뛰어 나오지 않습니까? 아이구~ 빨리 오십시오. 뭘 해드릴까요? 여기 앉으십시오.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그 점포에 물건 사주러 가고 싶습니다. 물건 사러가는 점포의 주인이 반갑게 대하면 우리가 가고 싶은데 주인인 성령이 우리에게 왔는데 우리가 반갑게 대해야지. 오늘날 너무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령님을 반갑게 안대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이유는 여러분보다도 조금 쬐금 더 반갑게 대합니다. 눈에 안보이니까 반갑게 안대하거든요. 그러나 나는 결심을 하고 조금 반갑게 대합니다. 오늘도 엎드려서 기도하고 나오기 전에 성령님 나갑시다. 예?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나와 손잡고 나가십시다. 성도들이 저렇게 기다리는데 내가 어떻게 말씀을 가르칩니까? 나가십시다. 나가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역사해 주신다구요. 그러니까 여러분 위기에 처했을 때 성령의 도우심을 꼭 구하십시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당신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함께 하십시다. 그러면 와따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같이 계신 신자가 되어서 나가면 새로운 변화를 우리 한국에 가져올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음
셋째로, 복있는 사람들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장 마귀가 인류를 꾄 조건이 오만입니다. 다른 죄도 죄지만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나쁜 죄가 오만입니다. 왜냐, 천사도 루시퍼가 교만 때문에 하나님 보다 높아진 교만 때문에 마귀가 되었지 않습니까? 아담과 하와도 오만 때문에 타락해서 죄인이 되었고, 어떤 개인도 어떠한 나라도 교만이 들어오면 망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아담과 하와는 오만해서 타락했지만 우리는 오만해도 타락안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만이 에덴을 잃게 한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의 에덴과 같은 아름다운 삶을 오만이 들어오면 다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오만과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는 꼭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후손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고 번창하라고 명령했지만 시날 평지에 도착해서 거기에서 도시를 세우고 자기들 이름을 내고 하나님처럼 보좌를 하늘에 높이려고 하다가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여러분 우리에게 파멸을 가져옵니다.
시편 5편 4절로 6절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악인이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아서 세계 산업국과 선진국 20개국이 우리 한국에 11월 달에 와서 모여서 국제회의를 합니다. 굉장히 자랑할 수 있는 문제고 또 우리가 거기에 끼었다는 것이 왔다입니다. 불과 5,60년 만에요. 아주 완전히 거지나라였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그러려고... 저는 그때 세계를 돌아다녔으니까 알잖아요. 어디가도 내가 가면 저 코리아 거지! 나 거지입니다. 간판 붙여놓고 돌아다녔어요. 그런 우리가 지금 세계에서 15번째 잘 사는 나라가 되었어요. 그래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전차에 바친 사람처럼 어리둥절해요. 정말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되었지 어리둥절해요.
그런데 이 가운데서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가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진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은 참으로 좋으나 교만해지면 절단 강산이 나는 것입니다.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 이제는 너희들 도움이 필요없다.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다. 우리는 이제는 잘 살게 되니까 이제는 잘사는 대접해달라. 교만해지면 하나님은 그때부터 손털어버리십니다. 그게 제일 겁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만 하지 않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서 나가면 얼마 안있어 아시아에서 톱이 됩니다. 그것 왜 그러느냐 여러분 세계의 시대의 흐름을 보면 때가 있거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끌어 모을 때가 있으면 흩을 때가 있고, 돌아올 때가 있으면 흩어져 나갈 때가 있고, 지금 우리 한국은 무슨 때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낮아져서 예수님을 열심히 모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전도 열심히 하고 겸손하게 살면은 하나님이 주신 때를 통해서 우리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우리가 중심이 되어서 이루어질 것인 것입니다. 그런 좋은 일들이 우리에게 다 나와 있는데 그 좋은 일이 우리 힘으로 되느냐 하면은 우리 힘으로 안되고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따라 하나님과 같아지려던 아담과 하와는 결국 교만하다가 심판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여러분이 사람 쓸 때 대학졸업장 꼭 전문직이 아닌 다음에는 별 필요없습니다. 유명한 집, 자녀, 크게 빽 안쓰려 하면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 주인 명예 쫓아서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제일 필요한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찾으십시오. 겸손한 사람. 여러분의 자녀들도 겸손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제일입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겸손은 모든 하늘의 보화를 우리에게 가져오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탐욕을 가지면 몰인정해지는 것입니다. 주던 것도 안주고 빼앗아버리고 가혹하게 몰인정하게 하는 것은 탐욕이고 교만은 자기를 높이고 불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인류를 꾄 조건은 오직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든 국가이든 교만하고 오만하면 에덴을 잃고 저주를 갖고 오는 것입니다.
4. 복 있는 사람
네 번째, 복있는 사람은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도 성경에는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는 신약시대에 우리들은 구약시대 십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을 율법이라고 하면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율법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1편 2절에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자가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시편 112편 1절에 “할렐루야, 야훼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율법과 계명은 다 하나님의 명령인데 지키면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는데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묵상하는 것을 잘 모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수양회에 가면 그곳에 묵상을 하라고 합니다. 텔레비에도 묵상하러 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묵상은 입술로 중얼거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신유의 말씀을 늘 입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묵상했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이것은요 하면 할수록 정신이 집중됩니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마음에 믿음이 생겨나요. 희안합니다. 나는 이 묵상 덕분을 얼마나 봤는지 몰라요. 비행기 타고 태평양, 대서양을 건너가면서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나니. 나중에 비행장에 내리면 마음에 믿음이 가득하고 하나님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입으로 자꾸 중얼거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묵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묵상하는 것 조금도 어렵지 않아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두날 가진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 103편도 종종 말합니다. 시편 103편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며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3~5)
자꾸 하니까 집중이 되고 믿음이 자라고 그리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믿음을 행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얼마나 책임이 큽니까? 가나안 칠족을 멸하기 위해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 전부 광야를 지나서 너즈레한... 그 여호수아가 데리고 들어가야될 사명을 가지고 있어요. 그 유일한 무기가 뭐냐. 모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여호수아에게 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묵상해라! 그러면 네가 책임완수한다. 묵상 안하면 너는 못한다.
우리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여기에 담고 다녀요. 생활에 안 나타나요. 여기에 담고 다녀요. 이게 여기에 담기기 위해서는 입술로 자꾸 외우면서 생각이 달라져야 되고 꿈이 달라져야 되고 믿음이 달라져야 되고 말이 달라지면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봐야지.
누가복음 11장 2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려니까 마음에 믿음이 생겨야 되는 거에요. 그 말씀을 통해서 변화가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묵상기도하는 것이 일종의 기도인 것입니다. 묵상을 해서 마음 속에 믿음이 생기면 굉장한 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묵상을 해서 내 생각이 바꿔지도록 기다립니다.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 다음에는 고개를 들어 그 말씀대로 꿈을 가져요. 아름다운 영광스럽고 훌륭한 이루어진 꿈을 바라보아요. 꿈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나는 꿈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저게 나다! 하나님 은혜로 나다! 꿈같은 소리하지만 그 꿈이 나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나는 밑천이 있다. 믿음이 밑천이다. 세상 사람들은 부귀, 영화, 공명이 밑천이지만 나는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하는 믿음이 밑천이다. 그 믿음이 내게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내 입술의 고백이 창조적인 능력이다. 나는 된다. 나는 축복받는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합격한다. 나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 내 입술의 말로써 내가 환경을 바꿔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땅 뒤지는 농부와 같이 입술의 말로써 환경을...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정말 복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복있는 사람은 집이 좋은 집에 들어가야 복있는 사람이다. 높은 지위를 얻어야 복있는 사람이다. 점포를 얻어야 복있는 사람이다. 사업이 잘되어야 복있는 사람이다. 그것 다 엉터리입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으면 가는 곳마다 복이 따라와요. 문제는 여러분이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겠다. 장소는 여러분이 선택하는 거에요. 환경은 여러분을 따라 변하는 것이지 여러분이 변하지 않는데 환경이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되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 보십시오. 가는 곳마다 형통하지요. 가는 곳마다 열매맺지 않습니까?
시편 1편 3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2010년 우리 나라에는 5만 교회와 1천 2백만 성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을 섬길 때 민족과 국가 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뿌리인 것인 것입니다. 뿌리가 태산만한 나무를 봤습니까? 나무가 태산만해도 뿌리는 힘이 있으나 적은 부피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 뿌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5만 교회와 1천 2백만 성도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도 그 뿌리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뿌리 중에 하나에요. 우리 기도가 효과를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려면 우리 마음에 생각이 달라져야 되고, 꿈이 달라져야 되고, 믿음이 달라져야 되고, 말이 달라지면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사차원의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환경을 잡고 뒤적거려도 별볼일 없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로 6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기가막힌 말씀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에 제일 중심적인 인물이 누구입니까? 나.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읽었다면 이 말씀에 중심적 인물은 누구입니까? 나. 그만큼 여러분이 비중이 큽니다. 여러분 들어오는데 나가는데 앉는데 서는데 온 주위가 변화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려면 내가 복인이 되어야 돼요. 내가 복인이 되어야 돼요. 복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됩니다. 천국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고 형통함을 얻은 사람이 되면은 여러분 원치 않아도 하나님 법칙이 그러니까 여러분 복을 받게 되어 있어요. 나는 우리 성도 여러분이 모두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받은 천국 백성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화를 가져오지 말고 복을 가져오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 10. 31.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