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케이프타운 빈민사역 현장을 다녀와서
지난달 17일부터 24일까지 제3차 로잔대회가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후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최초로 월드컵을 치러내고,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도 참여하는 등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청산 후에도 그 잔재로 남아 있는 사회 부패와 높은 범죄 및 실업률, 백인과 유색 인종 간 극심한 빈부 격차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시급한 사회 문제가 되어 선진 국가로 나아가려는 남아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로잔대회가 열렸던 케이프타운 역시 남아공의 입법수도로 이 나라에서도 가장 발전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남아공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의 공존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대회 장소였던 국제컨벤션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도심은 놀랍도록 잘 정비되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볼 수 있는 천혜의 자연은 그 주위로 형성된 백인 부촌들과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보고 케이프타운의 ‘모든 것’을 봤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길을 걷다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걸인들은 모두가 흑인이었으며, 이들 갈 곳 없는 흑인들이 모여들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빈민촌의 극심한 빈곤상은 앞서 봤던 케이프타운의 발전된 모습과는 충격적인 대조를 이뤘다.
케이프타운에서 흑인 빈민들을 위한 사역을 3년째 해오고 있는 한국외항선교회 한인섭 목사(51)는 이를 “천국과 지옥의 공존”이라고 표현한다. 한 목사가 사역하고 있는 카일리처(khayelitsha)는 케이프타운 도심에서 불과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지만 마치 다른 지역에라도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12년 전 백인들의 거주 지역으로 정해졌지만 토양이 모두 모래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개발이 불가능해지자 버려진 땅, 바로 이 땅에 가난한 흑인들이 모여 들어서 오늘날 80만 명이 거주하는 빈민촌이 만들어졌다.
남아공의 흑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와 경제 여러 분야에서 인종 간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갖가지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혜택들이 모든 계층의 흑인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현재 남아공 백인 실업률은 4%에 불과한 반면, 흑인 실업률은 40%를 육박한다. 심지어 한 목사가 사역하고 있는 빈민촌의 경우 실업률이 80%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빈민촌 사람들에게는 구걸, 그리고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매춘이 스스로와 가족들의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 될 때가 많다. 한 목사가 돌보고 있는 빈민촌 가정들만 해도 대부분이 아버지가 없는 가정, 즉 여성이 생계를 위해서 매춘을 했다 낳은 자녀들을 또다시 매춘을 통해 부양하고 있는 가정들이었다.
이처럼 극심한 가난은 또다른 문제를 빈민촌 안에 가지고 왔다. 그것은 바로 범죄와 에이즈다. 불법으로 형성된 정착촌이다 보니 치안 안정 노력은 공백인 상태에서, 빈곤으로 흉흉해진 민심은 한낮에 현지인들도 출입을 꺼릴 정도로 강도, 살인, 강간 등의 강력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한 두 명쯤 죽어나가도 모른다”라고 하니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또한 강간과 매춘을 통해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HIV 감염은 이 곳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런 땅에도 희망은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현지인들에게 절망의 상징과 같은 이 땅의 이름 ‘카일리처’의 뜻은 ‘희망’이다.
제3차 로잔대회에 모였던 4천여 참석자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선교를 성취하기 위해서 복음전도와 함께 교회가 반드시 개입해야 할 문제들로 빈곤과 에이즈를 꼽았다. 이들 문제들은 비단 교회의 사회 참여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선교에도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문제라는 데 참석자들은 공감을 표했다. 매년 빈곤과 에이즈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이들 대부분이 복음이 가장 전해지지 않은 지역들에 살아가고 있고, 이는 다시 말해 이들이 복음을 전해 듣기도 전에 이 땅에서 사라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곤과 에이즈는 유엔이 지정한 가장 시급한 세계 현안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은 아직 요원해 보이는 이들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대회장의 분위기는 어두움이 아닌 밝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밝은 빛은 이 세상을 치유하는 ‘복음’과 그 복음을 따라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하는 ‘교회’ 안에서의 희망이었다.
‘희망’이란 이름 뿐인 땅에 진짜 ‘희망’을 심기 위해서 처음으로 발을 들인 것도 멀고 먼 땅 한국에서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 바로 한 목사였다는 사실은 복음 안에서 우리가 희망할 이유를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 목사가 빈민사역을 시작했던 3년 전, 이 곳의 버림 받은 사람들은 낯선 동양인을 거부하고 해하려 했다. 차를 세워 놨다가 도난을 당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 목사는 말했다. 그러나 한 목사와 함께 이 곳을 찾은 로잔대회 사흘째 되던 그 날, 마을 어귀에서부터 한 목사를 알아보고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은 물론, 차에서 내려 교회로 향하는 길에서는 연신 “패스터, 패스터(pastor, pastor)”를 외치며 반가이 한 목사를 맞이하는 성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던 한 목사가 한국어로 찬양을 하자 아이들은 어느새 한 목사를 따라 한국어로 찬양을 따라 부른다.
처음 이 곳에 와서 한 목사가 시작한 일은 선교를 위해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해뒀던 수지침으로 의료 봉사를 베푼 것이었다. 그렇게 주민들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먼저 섬기니 그들도 마음을 점차 열고 한 목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 곳에 개척한 베드로교회는 매주 후원을 받은 옷가지와 음식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한 목사가 손으로 직접 지은 작은 교회는 기댈 곳이라곤 없는 주민들에게 따뜻한 안식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 목사의 섬김과 사랑에 감동한 이들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어두운 이 땅을 희망을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복음을 접하고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인생에 대한 ‘희망’이라고 한 성도는 말했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들에게 이 희망의 빛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교회의 좀 더 많은 관심이라고 한 목사는 말한다. 카일리처의 희망은 무엇보다 이 곳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아이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 만난 아이들 대부분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서 매춘을 한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부모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보살핌의 부재 속에서, 그리고 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을 제공해 줄 어떤 책임자도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도 전에 강간 등 범죄와 HIV의 희생양이 된다.
현재 한 목사가 주력하고 있는 사역은 바로 이 아이들을 일대일로 후원해 줄 결연자를 찾는 일이다. 현재까지 한 목사를 통해 100여 명의 아이들이 결연자를 찾았지만 아직도 150명 이상의 아이들이 후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외에도 칼일리처 주민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한 목사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자리 창출과 에이즈 확산을 막아 줄 보건 시설의 설립, 성교육 프로그램 도입을 목표로 자신의 사역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직은 소수의 교회와 성도들로부터의 후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사역이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한 목사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한 목사는 “2,000여년 전 돌아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이들 같은 소외된 자들을 가장 먼저 찾지 않으실까 생각한다”며 “모든 이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그 사랑이 지금 이 곳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가장 희망이 필요한 이 곳에, 빵과 복음으로 희망을 전하는 일, 그것은 바로 로잔정신이 말하는 온전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 될 것이다.
한인섭 목사는
15년간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해오던 어느날 근육소멸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를 겪었다. 그동안 ‘선데이 크리스천’으로서 형식적인 신앙을 유지해 왔던 그는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이를 통해 하반신 마비가 깨끗이 치유되는 은혜를 경험했다. 2000년 목회자가 되기 위해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던 그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전주에서 교회를 개척해 지역의 불우한 이웃들과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는 사역을 하던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됐고, 3년 전 한국외항선교회 선교사로서 이 땅에 들어섰다. 기자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CGN TV 남아공 리포터로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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