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문화정책 현황과 기독교의 대응’ 세미나
다문화 시대 정부의 종교문화정책 현황과 기독교의 대응을 놓고 토론의 자리가 마련됐다.
23일 오후 부천 소사동 서울신학대학교(총장 유석성 박사) 성봉기념관 강당에서는 위 주제로 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 제66회 정기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발제자들은 정부가 ‘문화’가 아닌 ‘종교’에 대한 금전적 기타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며 기독교에 대해서는 정부의 종교문화정책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울 연구기관과 정부와의 단일창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세미나에 앞서 이용규 한기총 증경회장은 격려사를 통해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가 정부의 교과서 왜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데 이어 정부의 종교문화정책을 분석하여 한국교회에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데 감사를 드린다”며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이번 세미나를 통해 정부가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잘 설정해 ‘문화’라는 이름으로 특정종교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문화에도 더 깊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종구 교수 “정부가 정교분리 정확히 지켜야 갈등 방지”
‘한국 현대 종교문화정책의 역사와 전망’에 대해 제1발제를 진행한 백종구 교수(서울기독대)는 일제 식민지 때인 1910년부터 현대까지 정부의 종교문화정책을 분석하고, 종교편향 문제와 개선 방향을 살폈다. 먼저 일제의 종교정책은 모든 종교에 대해 무단정치(1910-1919) 시기에는 회유와 규제, 문화정치(1919-1930) 시기에는 회유와 분열, 전시동원(1930-1945) 시기에는 전면 통제로 특징지어진다.
백 교수는 “해방 후 제헌헌법 12조에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규정했지만, 특정 종교에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종교간 평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 군정과 이승만 체제(1945-1960)에서는 기독교에, 박정희 등 군정 체제(1960-1987)에서는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불교에 다소 치우쳤다. 민주화 이후(1988-현재)에는 가능한 종교계에 관여하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문제점으로 백 교수는 ‘종교편향’을 들면서,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종교 공인정책과 함께 전통사찰 및 향교에 대한 규제 등을 꼽았다. 그는 “전통사찰이 문화재로 지정돼 국가로부터 보호와 관리 경비 일부를 지원받아 재정상 유리하지만, 사유재산권을 행사하는 데는 많은 제한을 받는다”며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라 해당 건물과 시설을 개축·변경해 개발해야 하는데 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관련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한이 있다”고 했다.
이같은 종교개선 방향으로는 기존 향교와 사찰에 대한 특별법을 폐지하고 모든 종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종교 특별법인 종교법인법 제정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자율성 침해의 소지가 있다. 또 하나는 종교관련 행정을 맡는 종무실 업무 활성화다. 주로 신흥종교 실태조사에 집중하는 종무실 업무를 종교 전반으로 확대하고,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종교편향 실태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종교편향 문제를 사회적 동의를 얻어 민간기구 등을 설치해 토론하면서 접근하는 방법이다.
백 교수는 “종교편향 문제는 다종교 사회에서 정부가 정교분리를 지키지 않을 때 일어나는 문제”라며 “현재 우리나라는 종교편향 문제를 의식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종교간 긴장과 갈등이 심화될 수 있고 결국 이는 국민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명수 교수 “정부의 전통종교 편향지원 정책 수정을”
제2발제는 ‘정부의 전통종교 문화정책 현황과 기독교의 대응방안’을 놓고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가 발표했다. 박 교수는 주로 재정적인 면에서 정부의 전통종교 지원현황과 기독교계를 비교하면서 편향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이명박 정부 이후 오히려 불교에 편향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문화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정부는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불교를 비롯한 전통종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며 “특히 불교는 대장경 번역사업, 템플스테이, 국제불교테마공원 등 관광과 연계시킨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세워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편향적 지원은 20세기 중반까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기에 바빴던 한국 사회가 문화생활 전반이 향상되면서 ‘우리의 것’에 대한 향수가 일어났기 때문으로, 한국 기독교가 ‘근대문화의 통로 역할’을 했던 문화사적 위치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근대문화 유산에 관심을 갖고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재과를 신설하면서 이 부분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한국 기독교가 정부의 종교문화정책과 연결할 통로가 바로 이 근대문화재”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러한 종교문화정책에 대해 기독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박 교수는 가장 먼저 한국 기독교를 대변할 강력한 연합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 기독교는 개교회와 개교단은 강하지만 한국교회 전체로는 힘이 없으므로, 이런 대표기구를 통해 정부와 협상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또 목회자와 정부를 잘 아는 평신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정부 정책기획단을 만들어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정부에 제안할 수 있다.
특히 선거에서 불교가 정책 기획단을 만들어 각 후보에게 정책을 전달하듯 분명한 기독교만의 주장을 펼치고, 후보들의 정채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 박 교수는 “그러나 교회는 정치기구가 아니므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닌, 기독교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정당과 후보를 지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후에는 인수위를 통해 공약을 재삼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각 지역 교회들이 지자체와 협력해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박 교수는 “이런 문제를 논의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한국이 다종교사회라는 것”이라며 “이는 타종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편향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부의 종교문화정책은 지나치게 전통종교 중심으로 이뤄져 왔으므로, 이는 수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 땅 종교인구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기독교도 이 땅의 종교이고, 따라서 기독교는 이 땅의 문화로 대접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이 권리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선 교수 “기독교가 전통문화도 부분적 수용해야”
마지막으로는 ‘정부의 민족종교 및 민속문화정책의 현황과 기독교의 대응’에 대해 이은선 교수(안양대)가 발제했다. 이 교수는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와 동학에서 시작한 천도교, 굿 등의 무형문화재, 단오제, 대보름맞이 등 지방축제 등 전통문화 예산을 분석하고 기독교계의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가 민족문화 발굴과 보존을 단순히 반대한다면 옹졸하고 배타적이라 비판받기 쉬울 것”이라며 “전통문화 가운데 기독교가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은 비판하고 극복해야 하겠으나, 수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적극 수용해 기독교의 가치관으로 변환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독교의 가치에 맞는 전통문화들을 오히려 수용하고 발전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긍정적 전통문화의 발전을 적극 후원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또 전통문화에 대한 정부 정책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기독교계는 전통문화의 건전한 계승 발전과 해외 전파에 기여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건전한 기독교문화가 한국 전통문화를 풍요롭게 할 방안을 연구하자고 건의했다. 이 교수는 “부정적인 접근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적극 기독교문화를 개발해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에서 지원을 받는 긍정적인 접근도 필요하다”며 “그러나 종교활동으로서 무속을 지원하는 데는 적극 반대해야 하고, 이는 동학이나 전통종교, 불교와 유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전통문화 지원에 대해 지금처럼 상호비난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면 종교간 갈등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사회의 비난과 불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므로 예산집행에 있어 국가와의 대화와 협의,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통해 상호이해와 신뢰를 구축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각 발표에 대한 논평은 고병철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이경문 선생(전 문화부 차관), 이억주 교수(칼빈대) 등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