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박사의 기독문학세계 특집] 고대에서 중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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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학에 대한 담론은 그 연구와 논의를 포함하여 창작에 이르기까지 교회나 신학교보다 일반대학 문학과, 특히 서구문학 전공분야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외국의 많은 대학들은 오래전부터 기독문학(Christian Literature)과 성서문학(Biblical Literature)을 전공, 또는 교양필수 강좌로 개설하고 있다. 특히 최근 외국의 대학에서는 ‘문학적 성격해석’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들어 겨우 신학대학교에서 ‘성서문학’이나 ‘기독문학’을 교양선택으로 강좌를 개설하였는데 이마저도 수강신청 학생들이 적어 폐강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성서와 문학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 기인하는게 아닌가 싶다. 즉 한국은 선교 초부터 문학예술은 교리 선포와 선교 그리고 교회 성장의 이면에서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고 한국의 기독 작가나 학자들은 그 개념 정의에 밀도있게 접근하지 않았다.
물론 기독문학론은 세계사적 측면에서 고려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서양의 역사는 이미 2천년을 넘겼고 이스라엘의 경우는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2세기, 개신교는 선교 1세기를 넘겼고, 한국문학사에서 현대문학이라 할 수 있는 개화기 이후의 문학 역사도 1세기를 지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문학사와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동시대의 역사적 전환기를 경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문학은 문학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변방에서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 기독문학의 존재가 문학사의 관심 밖에 있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의 문화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기독문화란 단순히 예배를 중심한 기독교적 의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란 넓은 의미로 정치, 경제, 교육, 예술 등 일상의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전시적 삶의 통일된 하나의 양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회와 교인들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교회문화공동체로서의 문화에 안주하고 있으며 교회 밖의 세상과 함께하는 삶의 통일된 양식으로서의 문화를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기독문학이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기획하게 된 것은 기독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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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서의 성경이라는 말은 순수문학으로서의 환원, 즉 성경이 허구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문학적 장치들로 쓰여졌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을 문학적 형식인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 하시지 아니하셨다(마 13-34)”. 이처럼 성경은 단순히 조직신학으로서가 아니라 문학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함으로서 보다 더 깊은 지적 헌신의 길을 찾게 될 것이다.
또한 현대문학에 대한 탁월한 전문지식을 융합시킴으로서 문학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특집은 문학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글은 3회에 걸쳐 세 가지 주제별로 전개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문학을 이야기한다’ 함은 먼저 문학을 문예사조별로 분류하고 그 사조에 따른 사회적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 그리고 사조의 문학적 특징에 대한 서술과 함께 대표 작가들을 선별해서 그들의 고전 작품들을 소개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기독문학에 대한 논의 역시 지면만 허락한다면 이같은 형식을 따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고는 학보의 제한된 지면과 편집 의도에 따라 중세 이전의 기독문학, 중세 이후, 그리고 근현대의 기독문학 이야기로 내용을 압축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역사적 기술로서의 기독문학론’이기보다는 ‘미학적 의미의 기독문학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문예사조의 흐름’이라는 역사성은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라 하였다. 이것은 과거의 사실(fact)을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사건(event)화시킨다는 의미이다. 이 글 역시 역사적, 문학사적 사건과 작품에 담긴 의미를 통해서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 미래의 좌표로 삼으려 한다. 즉 ‘인간은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보편적 진리에 초점을 두고 제3부에서는 한국 기독문학의 전망과 그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주제를 문학작품 속에서 미학적으로 다루려는 것은 이 글을 통하여 학생들이 삶을 담는 그릇인 문학에 삶처럼 자연스럽게 공명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학적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접근해 봄으로써 얻어지는 기쁨, 책임감, 이해력, 평화등을 널리 퍼뜨리는데 각각 독특한 형태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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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라는 말은 르네상스 시기의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 시기와 르네상스 시기 사이에 끼어있는 중간 시대(The Middle Ages)라고 한 말에서 기원하였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이 용어를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화를 단절시켜 서양의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했었다. 중세의 예술양식을 대표하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들은 종교 건축물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성경과 기독교 믿음을 더욱 신실히 하려는 예술 양식으로 유럽 전체에 유행했다.
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학, 예술, 법 등 모든 영역에서 교회가 중심이 되었다. 모든 학문은 기독교의 교리와 믿음을 더욱 굳세게 만들고 이를 더욱 공고히 아름답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후일 르네상스의 인문학자들은 중세 동안 모든 학문과 예술이 오로지 기독교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독자적인 영역을 갖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또 중세를 어두운 이미지와 종교적 알레고리로 가득 찬 암흑기로 규정하게 된다.
종교적으로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는 기독교가 전 유럽에 적용되었던 초민족적 이데올로기였다. 인간은 더없이 나약한 존재로서 오직 신에 의탁해 두렵고 어두운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종교적 삶과 일상적 삶의 경계가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문학은 기독교의 엄숙함과 신앙심을 돈독하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나 문학은 왕, 귀족, 기사들 같은 소수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분야였다. 언어는 이들의 봉건사회를 반영하여 그들의 기독교 신앙을 구체화하는 도구였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 속 인간적 감정과 한 개인의 삶의 내용보다는 신에 대한 계율과 상위 귀족계급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이 미덕으로 문학 속에서 형상화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대해 그대로 심판을 행하는 두려운 존재, 율법 속에서 이해되는 하나님이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그로 인한 상상, 창의성과 다양한 경험을 본질적 요소로 삼으면서 그 허구성을 통하여 진실을 드러내는 본래의 문학은 필연적으로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