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이자 작곡자로 살았던 故 이영훈
“우리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삶과 사랑은 하늘의 구름과 같이 항상 흘러만 갑니다.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하지만 돌아보면 그 사이 먼 곳으로
사라져가 없습니다.
항상 사랑하고 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여러분께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작곡가 故 이영훈-
1980년대 가수 이문세와 콤비를 이뤄 대중가요사에 한획을 그었던 故 이영훈 작곡가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광화문 연가(戀歌)’가 오는 3월 중 무대에 오른다. ‘광화문연가’는 광화문 정동 근처의 작은 교회와 덕수궁 돌담길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이영훈이 작곡한 대중가요다.
‘팝 발라드’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이영훈과 이문세의 고품격 발라드는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정도로 혁명적이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연가’, ‘옛사랑’ 등 가수 이문세의 수많은 히트곡은 이영훈의 손에서 빚어졌다.
천만장의 앨범을 판매한, 한국 대중음악의 독보적 존재와도 같은 작곡가 이영훈은 지난 2008년 2월 향년 48세의 나이로 대장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까지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시놉시스 작업을 진행하며 열정을 쏟았다. 단일 작곡가의 대중음악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뮤지컬인 이 작품에는 송창의 윤도현 김무열 임병근 리사 박정환 허규 양요섭 등을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대장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천국에 가서 좋은 음악 많이 쓰겠다”던 故 이영훈은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故 이영훈 1주기에 맞춰 출간된 ‘Artbook 광화문 연가’(민음사)에 수록된 1989년 1월 1일에 쓴 그의 일기 속에는 ‘주님께서 주신 재능’이라는 단어가 얼핏 보인다.
그는 주님께서 주신 음악이라는 재능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해하길 바란 음악인이었다. 대중과 영합하지 않는 음악으로 남고, 자신의 음악이 여러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기쁨으로 존재하기를 기도했다. 1994년 이영훈의 음악 노트에는 이런 기도문이 적혀있다.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고 창조한다는 기쁨을 가지고 음악을 하게 하소서. 모든 이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깨끗한 정서(기억)를 일깨워 줄 수 잇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결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이의 가슴에 숨겨져 있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음악을 만들게 하소서.”
그는 작곡가이자 사회인이었으며, 아들이며 한 여자의 남편으로, 아버지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갔다.(아내의 노트 중) 음악과 신앙의 조화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의 달란트(혹은 직업)와 신앙의 조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영훈의 삶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그의 어머니는 신앙심이 유독 깊었다고 한다.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을 결사 반대했던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 달리 그의 어머니는 남몰래 그를 늘 격려했다. 그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투병할 당시, 그를 세상에 처음 알린 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는 10주 간 각종 가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2주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1980년대 어두웠던 시대, 대중음악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위로가 되었고 상실한 청춘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치료제와도 같았다. 자신의 음악이 행복이 되길 바랐던 이영훈의 바람처럼 아름다운 그의 음악을 들으며 당시의 젊은이들은 어두운 시대상황에서 오는 상처들을 치유했고, 삶의 용기를 얻고, 희망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붙들 수 있었다.
‘옛사랑 서문’에서 그는 자신에게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고 밝히며 마치 유언과도 같이 “항상 사랑하고 늘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그는 지금도 천국에서 ‘하늘의 선율’을 연주하고 작곡하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기도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