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7일 튀니지의 지방 소도시인 시지 부지드에서 대학을 졸업한 모하메드 부아지지(26)라는 청년이 취업을 못하고 물가는 날이 갈수록 오르고 생활비는 많이 드는데 수입이 없자 노점상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빚을 얻어 과일과 야채를 가지고 다니면서 팔게 되었다. 경험 없는 노점상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종일 서 있어도 팔리지도 않기에 좀 더 팔아보려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 쪽으로 갔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과일을 빼앗기게 되었다. 경찰서까지 쫓아가서 어려움을 하소연하면서 돌려달라고 간청해 봤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 자신의 억울함을 부르짖으며 몸에 불을 지르고 분신자살을 기도하여 1월 4일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나와 독재정치 종식을 외쳤고 결국 1월14일 튀니지를 23년 동안 통치하던 벤 알리 대통령이 시민들의 퇴진요구에 굴복하여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를 튀니지 국화의 이름을 따서 자스민 혁명이라 부른다. 이 과정에서 23~68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치렀다.
이 민주화의 불길은 이집트로 번져갔다. 30년의 장기독재를 참다못한 이집트의 시민 봉기는 무바라크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무바라크는 끝까지 물러나지 않겠다고 고집했으나 결국은 시민들의 끈질긴 요구에 18일 만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365명이 사망하고 1500명 정도가 부상을 당하는 대가를 치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다피의 42년 독재에 시달렸던 리비아의 국민들은 가다피의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가다피는 무력을 동원하여 강경진압으로 맞섰으나 이미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성공한 것을 본 시민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사망자만 6,000명 이상이 나왔으나 연합군이 개입하여 사태가 장기전 양상으로 가는 것을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 외에도 바레인 오만 예멘 이란 시리아 등 중동국가들의 국민들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중국이나 북한등도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그렇다면 과연 이슬람권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선 이슬람과 민주화는 상반된 개념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슬람은 아랍어의 아슬라마(aslama) 즉 복종이라는 뜻이다. 어떤 이는 이슬람은 쌀람(salam) 즉 평화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슬람과 평화는 전혀 다른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 두 단어의 연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모든 인류가 알라(Allah) 앞에 절대 복종 즉 이슬람 하면 그 때 진정한 평화 즉 쌀람이 온다고 주장하며 지금은 그 진정한 우주적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투쟁 즉 지하드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은 신께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기에 백성들의 소리는 알라의 뜻에 일치하지 않으면 들어줄 수가 없는 체제이다.
반면 민주화라는 말은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백성이 원하면 지도자도 바꿀 수 있고 법도 제도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슬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의 법은 샤리아(Sharia)라고 하는데 이는 무함마다가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며 7세기부터 이미 정해놓은 것이다. 이슬람의 법은 백성이나 성직자도 바꿀 수가 없고 다만 철저히 복종해야 할 뿐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자는 죽이라는 것이 이슬람의 법이다.(꾸란8:12)
예전에는 지구촌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주변 사람들 밖에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순식간에 온 세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보고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첨단과학 시대가 되었다. 더 이상 국민들의 보고 들을 수 있는 자유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의 국민들이 전에는 “사람은 태어나면 운명적으로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TV를 보니까 전혀 다르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인권과 자유를 원한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이슬람권에 민주화의 물결이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독재자가 물러났다고 해서 삽시간에 중동이 우리와 같은 수준의 민주화가 되고 언론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며 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리라고 보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국민들은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독재자가 물러간 사회가 정상화되어 안정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독재자가 물러갔어도 그 사회는 여전히 이슬람의 율법의 가치가 무시될 수 없는 사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시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 아니라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 1928년 하산 알 반나에 의해서 시작된 무슬림 형제단은 꾸란의 순수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원리주의 운동이며 비폭력을 원칙으로 시작했지만 그동안 이 단체는 1948년 누크라시 총리 암살, 1954년 가말 압드 나세르 대통령 암살 시도, 66년 나세르 정권 전복 시도 등 비밀 군사활동을 벌였으며 이때마다 조직의 지도자는 사형을 당하고 조직원들은 투옥됐다. 형제단에서 떨어져나간 알지하드와 이슬람그룹 등은 81년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고, 80~90년대에는 무바라크 정권에 대항하는 유혈 공격을 주도하여 2011년 2월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하기까지 불법단체로 묶여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무바라크가 물러가자 서서히 정계로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들은 대선 주자도 출마시키지 않겠다고는 하지만 그 심중에는 일단 여론을 안심시켜 놓고 기회를 노리자는 수순일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이란 이야기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이란도 1979년 2월11일 시민들의 힘에 의해서 54년의 대를 이은 팔레비 정권의 왕정을 무너뜨리고 알라(Allah)의 정의로 다스리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을 만들고는 온 국민이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환호했다. 혁명 다음해인 1980년 건국 이래 최초로 치러진 국민투표에 의해서 압도적인 지지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대통령은 1년 반 만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해외로 탈출했고 두 번째 선출된 모함마드 알리 라자이 대통령은 당선된 지 5개월 만에 암살당했다. 그렇게 해서 알리 하메네이가 대통령으로 오르면서 호메이니가 원하던 이슬람 성직자들이 다스리는 신정통치 국가가 되었다.
이제 무대를 다시 북아프리카로 옮겨보자.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이란처럼 신정국가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백성들의 뜻을 헤아려 다스리는 진정한 민주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뜻은 좋지만 백성들도 대부분이 무슬림들이고 무슬림들은 알라의 율법을 거부하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독재자의 통제로 불법단체로 낙인찍혀 활동이 금지되었던 무슬림 형제단들이 이제 정식으로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포했다. 이들은 학벌도 좋고 실력도 좋고 돈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슬람 율법에 정통하며 20% 이상의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그들은 모스크에서 매주 설교를 통해서 국민들의 여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만일 당선된 대통령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 길로 간다면 은밀하게 암살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이것은 이미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것으로 보아 확인된 사실이다.
이제 이쯤 상황을 파악하고 선교 이야기로 무대를 옮겨본다. 지금쯤 민주화 바람은 곧 성령의 바람이요 선교의 문을 활짝 여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며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사태만 안정되면 선교사들이 급물살을 타고 중동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금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성령의 바람이라고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것은 독재에 시달리고 빵에 굶주렸던 백성들의 부르짖음이지 이슬람에 반기를 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백성들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누구든지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꾸란에 정통하고 그들의 공통분모인 이슬람 신앙을 강조하지 않으면 무슬림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게 된다.
물론 친미를 주장하고 개방과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서방의 도움을 받아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지만 그는 잠시 자리를 지키다가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압력에 의해서 밀려나든지 암살당하든지 할 수도 있다. 이런 사태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암살사건이나 파키스탄에서 최근에 지나치게 인권을 말하는 살만 타씨르 주지사가 자신의 경호원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나 소수족 바티 장관의 암살 사건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겠지만 섣불리 덤볐다가 시행착오를 겪지 말고 신중하게 철저히 준비해서 제대로 쓰임 받아 풍성한 열매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심기보다는 그들의 필요를 따라 지혜롭게 돕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유익하겠고 외국인들이 단독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하여 실천하기 보다는 현지교회와 긴밀한 협력과 유대를 유지하며 현지인들을 앞세워 동역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직접 선교 보다는 문화 스포츠 기술 학문 무역 등을 통해서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며 전인 치유를 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불가능 속에서 기적을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에 사태를 절망적으로 보기 보다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적응하는 지혜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도우심의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