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또옙스끼의 문학을 찾아서(13)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송영옥 박사의 기독문학세계] <악령>으로 들어가며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악령>은 도스또옙스끼의 5대 장편소설 중 하나다. 책의 제목은 성경 누가복음의 귀신 들린 돼지떼에서 따 왔다. 그 의미는 1860년대 러시아 사회에서 서구 사상을 기형적으로 받아들인 청년들이 혁명을 앞세워 파괴적인 행동에 광분하다가 스스로 파멸해 버린 혁명 운동가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서구 사상에 젖은 청년들은 마치 거라샤 지방의 귀신들린 돼지 떼처럼 욕망이 이끄는 대로 광분하다 스스로 자멸해버린다.

혁명 조직과 사상의 병리를 묘사한 작품은 <악령>만이 아니다. <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후기 대작은 모두 다 시대 첨단의 사회적·사상적·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키고 있다. 이 문제들을 통하여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 도스또옙스끼 후기 소설들의 특색이다.

<죄와 벌>에서는 이론적 살인자 라스콜니코프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추구하였고 <백치>에서는 미슈킨 공작(公爵)의 패배를 통하여 조화와 화해의 아름다운 인간을 그렸다. 청년의 야심적 생태를 다룬 <미성년>과 존속살해범을 주제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이 모든 작품들은 소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으로는 내면적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다. 이 내면적 통일성이 바로 도스또옙스끼 문학의 위대성과 천재성의 핵심이다.

그 가운데서 특히 <악령>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문제를 가장 난해하게 제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난해한 문제에 대한 답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다. 뭐랄까 문제 제시와 답이 고등 수학적으로 제시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산술문제 밖에 풀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문제 자체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답을 내려는 엄두조차 갖지 못하도록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악령에 접근했을 때 느낀 당혹감과 놀라움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악령을 읽고 단 한 줄의 감상문도 적을 수 없었고 단 한마디의 독후감도 말 할 수 없었다”라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소설가 이병주(1921-1992)의 고백을 보자.

“20세의 그 때 이 작품을 처음 읽고 놀라기만 하고 한 줄의 감상도 쓸 수 없었다는 것은 산술의 지식밖에 없는 사람에게 고등수학의 문제를 안겨놓는 격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아직도 이 작품의 마력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의 절실성을 깨달을 정도는 되었는데 그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고등 수학적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고 풀이한다. <죄와벌>이 제시한 문제는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고 심각하다 해도 결국 산술적인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령>이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이렇게 다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악령>에 제시된 문제가 난해하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현실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생과 관계없는 요원한 문제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 속에 있는 삶과 생명의 문제라는 의미이다.

성경 누가복음 8장에서 예수가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렀을 때, 귀신들린 자 하나를 만난다. 그 사람 속에 들어가있는 귀신의 이름은 군대, 즉 귀신의 떼를 의미한다. 예수로 인하여 사람에게서 나온 귀신은 돼지떼에게로 들어간 후 질주하여 호수에 들어가 몰살한다. 귀신은 스스로의 광기로 파멸해 버리지만,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로인해 온전해진다.

<악령>은 마치 돼지떼처럼 광분하는 행동과 극적인 사건으로 가득찬 줄거리이다. 그러나 혁명 음모가들을 바보와 악당으로 풍자하면서 자신의 반혁명사상이라는 주제를 광분한 혁명당원들에게 희생당하는 개심한 샤또프를 통하여 반영시킨다. 그는 구원자요 새 생명의 상징이다.

도스또옙스끼의 이같은 반혁명적 태도는 제정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그의 민족주적 신념이었다. 이 신념은 러시아정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으며, 그것이 바로 도스또옙스끼가 추구한 러시아적 인간상이었고, 암담한 시대에서 그가 꿈꾼 러시아의 미래였고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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