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라는 게 매일 위기이고 고난이고 갈등이지요. 사람이 천이면 천 다 다르니까요. 어떤 원리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나 이걸 고난으로 여기지 않는 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뜻을 이뤄가는 중요한 사람들이니 의견 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속에 하나님 사랑이 부어지면, 어떤 사람들이 절 힘들게 하고 심지어 죽이려 해도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까요?”
은평성결교회 부임 6년째를 맞아 내년 교회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비전센터 건축을 진행중인 한태수 목사는 ‘회심’ 이후 하나님 사랑만을 좇아 이 자리까지 왔다. ‘거듭남’부터 ‘사명’, ‘성결’의 은혜까지 하루 아침에 경험한 1973년 1월 어느 날의 기억은 그래서 특별하다.
“지금은 증가교회 원로목사님이 되신 이정봉 목사님이 제가 중학교를 다닐 때 12번도 넘게 절 전도하셨어요. 고등학교에 합격하면 가기로 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1년을 ‘나가줬는데’ 말씀이 믿어지질 않았어요. 천지를 창조했다느니, 물 위를 걸었다느니,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게 다 ‘뻥’ 같았습니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랐고, 돈도 없는데 헌금도 해야 했으니까요(웃음).”
그는 교회를 ‘끊을’ 생각을 하고서, 마지막으로 1주일간만 매달리기로 했다. “하나님 살아계시면 이러면 안 되는거고, 그렇지 않으면 더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이틀째 저녁집회가 끝나고 통성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죄 지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 이상 마술사가 속에서 만국기를 끄집어내듯 막 나왔어요. 덩어리같이 나오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하고 나니 갑자기 창세기 1장 1절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기적, 부활, 영생, 천국이 설명을 안해줬는데도 믿어졌어요. 그러면서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는 듯한 가벼움과 행복, 기쁨이 왔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어제까지도 미웠는데, 남녀노소 모두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거든요. 안 믿는 사람들은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처럼 보여 너무 슬프고 아팠어요.”
저들을 어떡하냐고 했더니, 하나님은 ‘말씀을 대언하라. 그리하면 저들이 살리라’고 하셨다. 이를 위해 신학과 성경을 공부해야겠다는 부르심까지 받았다. ‘목사’가 돼야겠다기보단,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일념이었다. 신학대에 가기도 전에 나가서 무당도 전도하고, 어린아이 3명으로 시작한 교회학교는 6개월만에 50명이 되기도 했다. 예비 법학도는 그렇게 방향을 틀었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따라다닌 ‘가난’은 그대로였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1학기만 다니고 자퇴했는데, 검정고시에 합격해 빨리 신학대에 입학했어요. 차비가 고등학교를 못 다닐 정도였지만, 박사 과정까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습니다. 중학교 짝꿍과 ‘S대 법대’ 가서 30년 뒤 만나기로 했는데, 그 친구는 거기 가고 전 ‘S대 신대’를 간 셈이죠(웃음). 나중에 만나서 그 친구가 ‘내가 너보다 좋은 건 차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 기쁘고 행복한데 그에게는 행복이 없으니까요.
그날 부름받은 이후 지금까지 개척교회도 하고 청빙도 받고 했지만 목회자로 부름받은 데 한 번의 후회도 없고 늘 감사 뿐입니다. 성도가 단 한 명이 있어도 작은교회라는 생각이 없고, 큰 교회엘 가도 큰 교회라는 생각이 없어요. 한 명을 만 명처럼, 만 명을 한 명처럼 목회하고 있습니다.”
가장 힘든 건, 더 사랑하고 싶은데, 육체의 한계 때문에…
부르심 당시의 특별한 기억 때문인지 전도는 한 목사의 목회 1순위다. “어디서 누굴 만나든,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따지지 말고 전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저 자신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절대적으로 하나님 사랑이 있어야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을 얻을 수 있지요.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어갈 때까지 기도해야지요. 사람이기 때문에 싫은데 금방 좋아지진 않지만, 계속 밉다면 기도가 끝난 게 아닙니다. 기도의 완성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나고 보면 어려운 시절을 많이 지나왔지만, 지금은 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껴져요. 성경은 과거에 끝난 게 아닙니다. 살아 움직여요. 21세기에도, 내일 당장 먹을 쌀이 없을 때 까마귀가 오더라고요. 그걸 보여줄 수 있어야 목회가 되고,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어려움을 외부 환경에서 찾기보단, 자신에게서 찾고 있었다.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작다는, 육체의 한계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하고 나눠주고 기도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피곤할 때가 있잖아요? 이런 게 힘든 거지, 경제적이나 관계 문제는 언제나 있는 문제에요. 지금 교회를 짓고 있는데, 이런 건 ‘행복한 비명’이지요. 요청하는 곳은 많은데 다 나눠주지 못할 때, 다 못 뛰어줄 때 제일 큰 문제입니다.”
한태수 목사는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목회현장 속에 나타나도록 하는 일에 주력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보혈, 성령의 능력이 전부가 되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목회,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 잡힌 바 된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 이래야 넓게는 갈라진 교회·교단을 통합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민주주의나, 능력있고 권위있는 사람이 이끄는 것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면 누구도 항거할 수 없이 하나될 수 있을 거 아니겠어요?”
포용과 조화, 성도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목회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포용’과 ‘눈높이’를 강조한다. 그는 ‘죄와 사탄’을 빼놓곤 누구든 포용하는 목회, 남녀노소, 빈부귀천, 정상인·비정상인 모두 포용하는 교회를 꿈꾼다. “아프리카에 가 보니 한 나무에 새집이 200개씩 있어서 1000마리가 한꺼번에 날아다녀요. ‘이게 교회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새집이 다 가지 끝에 있는데, 도마뱀이나 원숭이들이 빼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전체 생명을 끌어안은 나무처럼, 교회도 어떤 생명체든 ‘사람 같이 생겼으면’ 다 끌어안을 수 있어야지요. 죄를 100번 지었든, 인격이 모자라든, 장애가 있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심지어 교회에 덕을 보기 위해 나왔든….”
은평성결교회 어린이들은 한태수 목사와 ‘거침없이’ 하이파이브를 나눈다고 한다. 그의 눈높이 강조 때문이다. “유치부 교사는 유치해야 해요. 아이들은 설교를 하려고 가운을 입고 있는데도 저에게 막 달려오죠(웃음). 장애우들하고도 잘 노니까, 제가 들어가면 ‘한태수~’ 하고 뛰어와요. 그게 눈높이 아니겠어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추려 이 땅에 오셨고, 가난한 자들, 세리와 창기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셨잖아요.이게 바로 ‘인카네이션(incarnation·요 6:14)’입니다. 인간이 올라갈 수 없으니 눈높이를 맞춰 내려오신 거죠.”
한 목사의 철학에서 알 수 있듯 은평성결교회에서는 ‘조화’를 중요시한다. “초신자니까, 냄새나니까, 지적으로 모자라니까 차별하지 않아야지요.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쉽게 얘기하면 목사니까 특별대우를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식사할 때도 똑같이 줄 서서 밥을 타 먹으려 해요. 시간이 없어서 못할 때도 있지만요. 저는 ‘군중 속에 있는 리더십’을 꿈꿉니다. 앞에서 끌고가지 않고, 그들과 더불어 가되 특별한 존재는 아니지만 군중이 같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거에요. 목회자나 교회가 누구를 피해선 안 되겠다, 어떻게 교회를 얘기하든 무슨 얘길 하든 제가 사랑하면 이기는 거잖아요. 미운 마음이 들어오면 지는 거에요. 북한도 일본도 미워하는 사람 많지만, 누가 뭐라 하든 복음은 그렇게 작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틀이 커요. 모든 백성을 수용할 만 하지요.”
‘교실과 현장의 조화’도 그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가 교실에서 끝난 건 ‘죽은 교육’이지요. 배웠으면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목사부터 가야죠. 그래서 미얀마도 갔고, 일본도 갔다 왔어요. 일본이 얼마나 힘든지 가 보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하루에 3번씩 지진이 나고, 방사선 수치를 선포하고… 일본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한지 느껴졌어요. 조금 힘들더라도 목회자가 설교하는 단에서만 나타나면 안 되겠다는, 서해안 기름유출사건 때도 교구별로 9번이나 다녀왔어요. 하나님 능력과 인간의 최선을 조화하는, 보이는 부분과 안 보이는 부분, 양과 질의 조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조화 같은 것들이지요.”
뼈를 깎는 아픔 있어도… 교회가 교회로 돌아가는 운동
어려움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에 할 말은 없을까. “교회가 원형을 유지해야 다음 세대에도 계승되고 오랫동안 생명력이 이어지는데, 많이 일그러진 모습이 없지 않지요. 일그러져서 들어온 점도 있고, 들어와서 일그러진 점도 있습니다. 최초 복음이 유럽으로 넘어가면서 이성에 파묻혀 책 안에 하나님을 가둬뒀잖아요. 미국으로 넘어가면서는 성공주의나 실용주의 속에 복음이 파묻힌 상태로 한국에 들어왔지요. 숫자가 많고 헌금이 많아야 목회가 성공이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한 영혼을 목회하면 어떤가, 문제는 그 한 사람을 어떻게 하고 어떤 사람으로 여기느냐이지요. ‘아이들은 돈이 들어가기만 하지. 장애우들은 와 봐야, 가난한 사람들은 와 봐야’ 이런 생각으로 중요한 것이 안 중요한 것들에 파묻혔어요.”
그런 면에서 뼈를 깎는 아픔이 있더라도 교회가 교회로 돌아가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한 사람에게 끌려가다 왕창 무너지는 모습들이 안타깝습니다. 전세계에서 한국교회만 살아있는데, 세계를 살려야 할 한국교회가 교단끼리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분토와 같이 버린 명예와 가문, 학벌을 다시 잡으려고 가는 꼴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장(長)’ 되는 게 그리 중요한가요? 섬길 기회일 뿐인데, 기회가 오면 섬기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섬기면 되지 않습니까. 한국교회가 원형을 회복하고 성령의 불이 타오르지 않으면 마귀가 지배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내 마음대로 됩니까? 하나님이 몰아주셔서 받은 거지요. 내가 끌어모았으면, 언젠가는 다 흩어집니다. 일시적인 부흥에 치우치지 맙시다. 잘 가기만 하면, 부흥 안 되는 게 기적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가면, 사람들이 몰려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한태수 목사는 한국교회에 첫사랑의 불, 예수님 만났을 때의 그 순수함과 뜨거움, 열정과 사랑을 내적으로 회복해 나가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외적으로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오대양 육대주로 나가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해마다 10-15명을 전도해요. 목사도 전도해야죠. 해외는 매년 2번 정도 대륙별로 나가서 복음 전할 기회를 갖습니다. 지금까지 70개국 정도 밟았는데, 나머지 200여개국도 힘 닿는 데까지 가서 땅도 밟고 복음도 전하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한국교회가 ‘한 지붕’이 되는 것이다. “주님이 원했던 교회 모습이 어땠을까… 한 사람이라도 더 믿음으로 돌아오게 해야 하고, 우리나라 모든 교회가 손에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지붕 안에 교단을 초월해서 묶는 작업을 속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각개전투 하니까 아무 빛도 안 나고, 이쪽 저쪽 비난하니 해 놓은 게 다 묻히고 말아요. 한 지붕 아래서 이를 극대화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고, 한국교회 저력이 굉장해질 겁니다. 그러려면 교단 색깔을 좀 줄여야겠지요. 내 교회 이름도 줄이고 한국교회 이름으로, 정 교단이 필요하면 조그맣게 쓰고요. 전체 교회가 하나로 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