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혼예식을 본 한 젊은이의 고백
계명대학교 관광경영학부에서 30년간 봉직하신 효원 김진탁 교수께서 결혼 50주년 예식을 거행하게 됐다. 우리 부부와는 오랜 세월동안 YMCA와 국제와이즈돔에서 함께 활동해온 사이이기 때문에 두 분의 금혼 예식은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이런 각별한 관계이어서 효원 선생님은 까마득한 후배인 나에게 축하의 글을 부탁하셨다.
사실 결혼하여 50년 동안 부부가 무탈하게 살았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은총인것 같다. 우리 주위에는 결혼 생활이 평탄치 못한 사람들도 많고 부부 사이가 각별해도 오래 함께 살지 못하고 사별하는 경우도 있다. 한사람이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으로, 또는 천재지변으로 헤어져야 하는 부부도 많으니 50년 세월동안 그같은 변고를 겪지않고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축하를 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래서 금혼 예식을 거행할 수 있는 조건도 까다롭다. 자녀들 중에서 부모보다 먼저 세상 떠난 사람이 있어도 공식적인 결혼 예식을 거행할 수 없다고 한다.
축하의 글을 쓰기 전에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정말 효원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진정 내가 축하의 글에서 드러내보이고 싶은 게 무엇일까 하고. 그러다 공인으로서의 업적에 대한 존경과 찬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인간을 이야기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아마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입가에 번져가는 따스한 미소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는 그 한 사람의 인간적 면모, 그래서 생각할 때마다 우리 마음이 유쾌한 그런 일 말이다. 다음은 내가 쓴 축하의 메시지 중의 일부이다.
“… 효원 선생님의 결혼예식은 1961년 정월 부인 서영자 여사의 본가인 청천, 푸른 내가 흘러가는 과수원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웨딩마치는 교회에서 빌려온 오르간에서 연주되고 카펫 대신 하얀 광목이 깔린 길을 걸어서 서영자 여사를 만나 주례자 앞에 섰습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에 이미 웰빙 시대의 사람들이 꿈꾸는 야외 결혼식을 선보이신 셈이지요. 푸른 강물이 흘러가고 나무숲의 새소리 들으며 오늘 우리 후세대가 꿈꾸는 초현대식 결혼예식을 선보였으니 그 당시 시골 사람들의 입에 얼마나 화젯거리가 되었을까 짐작이 갑니다. 이 또한 야외결혼문화의 선구자 역할(?)을 하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교수님 슬하에는 3남 1녀가 있으며 그 들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네 명, 모두 대학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가 모두 12명, 예수님의 열두제자와 같은 숫자입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을 거쳐 오늘 결혼 50주년을 맞은 효원선생님께 우리 모두는 진심에서 축하의 큰 박수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분 곁에서 가깝게 정을 나누었던 우리는 그동안 받았던 즐거움들에 대하여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받은 즐거움은 효원 선생님의 뛰어난 유머감각 때문이었습니다. 유머는 우리의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메카니즘입니다. 인간이 일상생활에 직면하는 많은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처하며 안정과 평안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때문이지요. 교수님의 인간적 훌륭함은 바로 우리들에게 이 같은 특효약을 수없이 많이 선물해 주었다는데 있는 게 아닐까합니다. 고대 히브리 격언에도 “즐거운 마음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교수님의 유머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늘 묻어 있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웃을 때 우리의 눈앞에서는 노란 해바라기가 피어났습니다. 때론 관조와 열정사이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되었습니다. 숲의 새소리가 들리고, 푸른 강물이 흐르고…, 그래서 우리는 늘 유쾌하였습니다.
이제 오늘의 향연에서 우리 모두 바라는 것은… 앞으로 두 분께서는 더 삶을 여유롭게 관찰하시면서 깊은 사유와 상상력으로 더 많은 유머를 만들어주세요. 내면에 흐르는 소박한 언어들을 포착하여 영성을 빛내는 유머로 우리가 하늘과 소통하는 채널을 만들어주세요. 인생은 짧지만 그 짧은 조각 같은 시간들이 모여 강물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많은 다채로운 것을 경험합니다. 더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오늘의 감격을 안고 내일을 향하는 빛의 마차를 타고 힘차게 달리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그날 결혼 예식에서 한 젊은 청년하객이 내 곁에 앉아 있었다. 행사가 다 끝난 다음 그 청년이 내 손을 잡더니,
“… 나는 어른이 되는게 싫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려간다는 것은 나에게 끔찍스런 일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젊음이 사라져간다는 것, 아름다움이 없어진다는것, 그리고 인생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정말 빨리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있어 정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라고 감동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게 아닌가!
정말 효원 선생님의 금혼예식은 만인의 축하를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유쾌해진다.
/송영옥 박사(영문학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