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설교]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느냐(요 3장 14~21)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느냐”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잘 사는데 나는 왜 유독이 예수 없이는 못 사는가? 그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습니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히 예수 없이는 못 살아요. 예수님 믿기 때문에 삶에 용기와 힘이 생기고 또 예수 믿기 때문에 너무나 행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행복은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행복이란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파스칼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존 웨슬레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이란 없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144편 15절에“야훼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했었으며 시편 16편 2절에“내가 야훼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고 예수님 없이는 복도 행복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러느냐.

<본론>

1. 예수님 안에서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

첫째로, 저는 예수님 안에서 비로소 내가 누군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깨달아 알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본 자가 없잖아요. 여러분도 하나님 보시지 못했잖아요. 하나님을 왜 믿습니까? 어떻게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셨으므로 우리가 따라서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계신 것을 확실히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 있고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사랑도 안받으면 정말 외롭고 쓸쓸하고 버림받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얼마나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믿는 자마다 공부 잘하는 사람마다, 돈 많은 사람마다, 지위가 높은 사람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하시니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다가 육신의 장막집 벗어 버리면 하늘나라 집으로 간다는 것을 가르켜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육신은 장막집입니다. 장막집이라는 것은 쉬운말로 말하면 천막집인 것입니다. 천막이라는 것은 영구히 있을 곳이 못됩니다. 비도 새고 낡아지고 바람불면 날라가고 나중에는 걷어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육신은 장막집이 되어서 언제 거두어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위해서 천국에는 집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장막집이 아닌 주택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집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천국의 아름다운 영광이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천국을 체험한 사람도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말로써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바울 선생은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처럼 천국은 아름답고 영화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막 속에 바람불고 비새며 덥고 춥고 하는 곳에 사는 우리들이 영원한 주택으로 들어간다는 것 상상도 못할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이 미래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께 이처럼 사랑을 받았으므로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도 사랑하고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정욕이나 탐욕도 사랑하고 그 부분에 하나님도 사랑한다. 그러면 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되지 못하지 않습니까? 부분적인 사랑이요, 전적인 사랑이 되지 못하고 가짜 사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할 것 먼저하면 나중할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끊임없이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다 돌보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로 밥 먹인 것을 보십시오. 3백만을 매일같이 하나님이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셨습니다. 보통 많은 손님들 아니지 않습니까? 3백만을 대접하려니까 엄청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집에 손님 30명이 와도 감당하기 힘들 것인데 하나님은 매일같이 3백만을 아침, 점심, 저녁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고기도 먹이고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물을 다 마시게 한 것입니다. 그것 왜 그랬느냐.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는 표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만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서는 나는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이 돌볼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때 진짜로 응답해 줄 것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기도하면서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 많습니다. 정말 기도 응답하실까? 마음 속으로 안하실꺼야. 그러나 해보자! 밑져야 본전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 많은데 밑져야 본전으로 기도해서는 안돼요. 정말로 하나님 진리를 알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이 사랑을 베풀어 주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천국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예수님 안계시면 천국 있는 것을 모르지요. 예수께서 천국 있는 것을 확실히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거처입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맨션인지 아파트인지 모르겠지만 천국에 아파트는 없을거에요. 맨션일 것인데 예수님이 같이 있겠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위해서 몸찢고 피흘려 십자가에서 희생해 주신 예수님은 그 전체가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어제가 무슨 날입니까? 부부의 날이지요? 많은 남편들이 부부의 날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잊어 버렸어요. 저도 잊을뻔 하다가 기억을 했습니다. 그러면 부부의 날에는 무엇을 해야 되나요? 사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해야 되는데 사랑이라는 것은 입술의 말로만 사랑해서는 증명이 되지 않아요. 말로써 사랑합니다 말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돈 안드니까. 그러나 부부의 날이 다가왔을 때 나 당신 사랑합니다. 그 말하면 아내가 속으로 뭐라고 하겠습니까? 40년이나 같이 살았으면서 입술로 얼마나 그런 말을 많이 해도 증명되지 못했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증명하려면 뭐냐. 뭘 드려야 돼요. 조금 드려가지고서는 효과가 없어요. 듬뿍 드려야 돼요. 예수님은 우리 남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입술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뭘 조금 해주시고 난 다음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가면 입이 딱 벌어지고 놀라서 말을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가장 이상적이고 놀라운 우리 남편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행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장차 어떻게 할까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딱 믿고 가십시다. 지금 이 세상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죽는 것은 영원히 사는 시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은 죽음이란 영원히 사는 시작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잠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고 또 살고 살고 또 살고 영원히 사는데 늙어지지 않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이냐. 죄와 흑암에 잡힌 사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음받아 구원받은 사람으로 나를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조용기 너가 누구냐? 내가 누군지 알려면 십자가를 바라보면 알 수 있다. 죄에서 용서받은 나, 더러움에서 씻음 받고 거룩하고 의롭다함을 얻은 나, 채찍에 맞은 공로로 병에서 고침받고 건강한 나,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나, 부활 영생 천국을 얻은 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나를 보면 내가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전인구원을 받은 사람 아니냐. 나는 이런 사람이다. 또렷이 말할 수 있어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보고 당신은 누구냐고 말하면 확실히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는 땜쟁이입니다. 나는 농부입니다. 나는 장사꾼입니다. 나는 공무원입니다. 나는 관리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자기가 누군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정체성이 뭐냐. 모르지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허무하게 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구름같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 밑에 가면 예수님을 쳐다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누군지를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 첫조상 아담을 통해서 얻은 육신의 삶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청산되고 육의 사람이 신령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받은 의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 건강한 사람, 축복받은 사람, 영생복락을 얻은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 사람된 것은 매일같이 갈보리산 밑에서 예수님을 쳐다보고 확인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기가 누구인 것을 확실히 알고 자기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일에 형통케 해주는 것입니다. 꿈이 없고 환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형통케 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꿈도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 밑에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내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 안에서 희망과 꿈을 갖게 된다

둘째로, 내가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희망과 꿈을 갖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은 희망과 꿈이 없으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이 희망인 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오늘 어떤 고생이 있어도 참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내일 희망이 없으면 오늘 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고 꿈이 있으면 정말 양쪽 날개단 것과 같은 것입니다. 훨훨 날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을 살아도 그 가운데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정말로 놀라운 하나님 아니십니까? 우리 함께 이 성경구절을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어려움을 당하거든 하나님을 찾을 때 아실 것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내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것이지 재앙을 주어서 나를 낭패와 실망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재앙에서 건져내 주지 않았었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의 재앙을 예수님이 담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앞에 있을 때 모든 재앙에서 해방되고 미래와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그 깃으로 너를 덮으시리니 내가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의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해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패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시 91:2~7) 재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은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참으면 내일과 희망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희망과 꿈을 얻게 되므로 예수님 믿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옛 사람을 어떻게 벗어버립니까? 내가 죽었다가 새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옛사람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사람이요, 더럽고 추하고 마귀의 종이 된 사람, 아무리 물로 씻어도 때가 지지 않는 옛사람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돌보아 주마. 우리를 덥썩 안고 십자가에서 함께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우리는 실제로 안죽었는데 예수님이 우리 이름을 안고서 죽어서 누가봐도 예수님이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은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죽었어요. 내가 옛사람을 청산했어요. 내가 예수를 통해서 부활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벗고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고통 당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 벗어준 것 우리가 벗어버리고 예수님이 새로 지어준 것 입는 것입니다. 그 속에 희망과 꿈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새것이 되는 희망과 꿈을 예수님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용서받은 사람이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예수님 은혜로 치료받고 축복받고 부활 영생 천국을 얻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공로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전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를 인하여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도 그렇지만 고린도후서 5장 17절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 예수 안에서 새것입니다. 죄가 용서받은 의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더러움이 씻어진 거룩한 사람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병이 와서 여러분 들러붙고 병이 여러분을 물고 찢고 하지만 하나 아십시오. 병의 주인은 누구냐. 마귀입니다. 귀신이 여러분 몸에 강제로 쳐들어와서 점령을 했는데 그 귀신이 점령을 하고 난 다음 자기 성품을 나타내는데 폐병 귀신은 폐병으로 나타나고 암의 귀신은 암으로 나타나고 관절염의 귀신은 관절염으로 나타나고 그 귀신이 자기 모습들 드러내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암은 암 자체가 암이 된 것이 아니라 암의 귀신이 들어와서 암의 집을 지은 것입니다. 암 귀신이 암의 집을 짓고 폐병의 귀신이 폐병의 집을 짓고 관절염의 귀신이 들어와서 관절염을 짓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자꾸 집을 허무러 뜨리려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수술도 하는데 그보다 먼저 우리가 신앙적으로는 주인을 쫓아내 버리면 집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암의 귀신은 물러가라! 폐병은 물러가라! 관절염은 물러가라고 대항하는 것은 그 때문인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인이 쫓겨나가면 주인이 살던 집은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병이 들었을 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십시오. 저항을 하십시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병이 다가왔는데 저항을 안합니다. 아이구 아파라. 아이구 고통스럽다. 아이구 괴롭다. 그것은 귀신에 대한 환영사입니다. 너 성공했다. 네가 와서 정말 성공을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프다. 내가 죽을 고생이다. 너 정말 훌륭하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 이 귀신아 물러가라! 이 관절염의 귀신아 물러가라! 이 고혈압의 귀신아 물러가라! 이 당뇨병의 귀신아 물러가라! 이 심장병의 귀신아 물러가라! 이 어지럼증의 귀신아 물러가라! 강제로 들어와서 점령한 놈이 한두번 말한다고 물러가겠어요? 백번이고 천번이고 명령을 하라고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안물러갑니다. 왜냐하면 갈데가 없으니까 귀신이 여러분을 집을 삼고 들어왔으니까 강제로 점령하고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강제로 물리쳐야 돼요. 침례 요한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 침노라는 것은 나팔 불고 북치며 걸어가는 것이 침노가 아닌 것입니다. 총을 쏘고 창을 찌르고 전격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침노입니다. 마귀와 싸움은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각오하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면 새사람은 마귀에게 집을 허락해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병에서 해방되고 건강하게 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 귀신들 참 흉악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귀신에게 점령당하여 고통 당하고 있는데 제발 물리쳐야 돼요. 저는 귀신이 점령해서 병을 가져온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아는 것하고 깨닫는 것 하고는 틀려요. 알고 있으면서도 안깨달으니까 별로 실천을 안했어요. 그러나 그 다음 하나님께서 제게 하루 기도하는데 야, 병이 오면은 병의 집주인은 귀신인데 귀신이 집주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왜 너 그만 두느냐. 몰랐습니다. 네가 알면서 깨닫지 못했다. 깨달으면 이제부터 싸우라. 요사이는 귀신하고 적극적으로 싸웁니다. 제가 싸워서 이겨보니 참 기분이 좋더라구요. 여러분도 싸우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진리를 깨달아 주므로 우리는 깨닫고 이 진리에 굳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주님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간구한다. 간구가 무슨 말입니까? 간절히 원한다. 간절히 원한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회개하고 성령받고 영적으로 잘됨같이 범사에도 잘되고 사업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그리고 건강하기를 내가 간절히 원한다. 이 하나님은 그렇기 때문에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의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시편 23편 1절로 6절에 선한 목자로써 내 삶을 자비와 긍휼로 채워주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입니다.“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세상에 어디가도 부족함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면 내가 양이니까 부족함이 없게 하겠다. 그러므로 부족함을 우리가 그대로 지나가면 안됩니다. 목자되신 주님께 부족함을 채워 달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풀밭은 형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푸른 풀밭에 누워 있으니 먹을 것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쉴만한 물가는 마음에 평안을 말합니다. 쉴만한 물가에 가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평안합니까?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를 원하고 우리 영혼을 소생시킨다. 우리 영혼을 소생시킨다는 것은 행복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를 형통케 하시고 평안케 하시고 우리를 행복케 하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롭게 이끌어 주신다. 죄에서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우리가 매일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어두움의 세력이 와서 우리를 크고 적은 골짜기로 끌고가도 해를 받지 않는다. 왜냐, 주께서 같이 간다.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 주님 같이 계시므로 주님은 지팡이를 들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막대기를 들고 원수를 쳐 주어서 상처입지 않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진짜 원수가 달라들어서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때 원수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가 오면 원수를 대적해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얻게 밥상 차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 밥상 베풀어 준다.

제가 젊을 때는 그것을 잘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까 배가 고프니까 힘을 쓸 수가 없어요. 많이 먹어야 돼요. 그러므로 집회에 나갈 때는 먹으려고 애를 씁니다. 주여, 먹게 하여 주시옵소서. 왜냐, 집회 나가는데 설교 반쯤 하다가 배가 텅비면 소리가 안 나와요. 배가 불러야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어야 힘이 있어 집회를 할 수 있는데 여기 싸움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먹어야 싸울 수 있다. 원수가 오면 목전에서 우리에게 진수성찬 차려 주어서 힘을 얻게 만들어 주신다. 그래서 원수 앞에서 하나님이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성령의 기름을 부어서 잔이 넘치게 해주신다.

결국 원수가 오는 것은 우리가 삶에 잔이 넘치게 하기 위해서 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원수가 와도 손해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가 오면 좀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그 결과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밥상을 차려 주시고 여러분 인생에 잔이 넘치게 해주는 것입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은 만족을 말하지 않습니까?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축복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복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꿈을 놓치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원수가 와도 여러분 속으로는 하나님은 나에게 결국 복을 주신다.

요셉이 보십시오. 형들에게 발가벗겨서 종으로 팔렸죠.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지요. 그 아내 참소를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지요. 사사건건이 안되는 것만 있었는데 나중에 그 길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잔이 넘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모든 고통이 나중에 보니까 결국 잔이 넘치게 하는 길로 이끌어 가게 하더라. 사람들은 요셉을 고통주고 괴로움을 주고 죽이려고 했지만 그 도모가 다 결국에는 요셉에게 잔이 넘치게 되고 축복이 되고 말았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가 같이 계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환난과 고통이 두고 보세요. 나중에 잔이 넘치게 만드는 수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고통은 그 후에 큰 축복을 가져온다. 거짓말 아니에요. 여러분 괜히 내가 꾀려고 이런 소리 하는 것 아닙니다. 사람이란 오랜 세월을 살아보면서 신앙을 체험하면 더 큰소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체험했으니까요. 한두번 체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원수가 오고 고통이 다가오면 또 진수성찬 차리고 잔이 넘치게 하려고 오는구나. 그러므로 꿈을 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형통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시고 행복과 기쁨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4절로 26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훼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야훼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평강을 주시니 하나님이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떠한 원수가 다가와도 크고 적은 원수를 결국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부모와 같이 결국 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게 돼요. 좋은 하나님 모시고 있으니 좋게 돼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좋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로 11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풍성한 삶을 주님께로부터 받는 이유는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목숨까지 버린 것입니다. 목숨까지 버려서 여러분을 풍성한 삶으로 이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차원 높은 삶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앎으로 예수님을 믿고 차원 높은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각적이고 이성적이고 체험적인 물질세계를 뛰어넘는 믿음의 세계에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믿음의 세계를 몰라요.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호킹 박사도 이번에 신문에 발표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컴퓨터가 꺼지는 것처럼 뇌가 죽으면 아무것도 없이 죽어버리고 없는 것이지 뭐가 있느냐. 그렇게 모른다구요. 그러나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믿음의 세계가 있는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운명을 바꾸고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므로 이제 보십시오. 많은 사건을 믿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을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하고 아름답고 귀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놓으면 험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인데도 불구하고 믿으면 하겠네. 믿으면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믿음을 나누어 주셨는데 믿음을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사용하면 내가 달라지고 내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죽고 사는 권세를 믿음을 가지고서 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자체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믿으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합동하여 유익이 된다고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기쁘고 행복하게 된다고 믿으면 그런 것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믿으면 그렇게 되는데 안 믿으면 그런게 안온다 말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이 적으면 적은대로 크면 큰대로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안 믿는 사람들은 이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신령한 믿음을 분량대로 주셨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 여러분 잘나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어요. 그러므로 믿음 없다는 말 하지 마세요. 믿음을 안쓰고 있지 쓰기만 하면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믿음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바라보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으세요. 나는 영원히 잘된다고 믿으십시오. 지금 없는데도 그렇게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된다구요. 범사에 형통한다고 믿으십시오. 믿으면 그렇게 된다구요. 나는 강건하게 된다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된다구요. 믿고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세요. 그러면 그대로 된다구요. 믿음과 생각과 꿈과 말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꿈꾸게 되고 그렇게 말하게 돼요. 그러므로 믿음은 놀라운 능력을 여러분 인생을 변화시켜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진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안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대로 돼요. 된다 할 수 있다 변화된다. 믿으면 그대로 돼요.

왜,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앞에 보여줬잖아요.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었어요.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대로 두면은 썩어서 살은 다 흙이 되고 뼈다귀만 남습니다. 누가 그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렇게 돼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마르다야 무덤문을 열어 놓아라. 마르다가 우리 오라버니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마르다는 말할 때 예수님 마르다를 보고 마르다야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믿으면 영광을 보고 안 믿으면 영광을 안봅니다. 여러분 생애에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안 믿으면 영광이 안나타나는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서 안쓰니까 문제지. 안쓰니까 문제에요.

오늘도 주님 여러분 보고 말씀합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마르다가 믿고 무덤문을 옮겨 놓으니까 나사로야 나와라! 살아 나왔습니다. 환경과 운명이 변화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마귀의 공격 속에 살면 우리는 실패하고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믿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인데 마귀의 텃밭입니다. 두려워하면 마귀가 춤추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병을 두려워하면 병이 오고 가난이 두려우면 가난이 오고 실패를 두려워하면 실패가 오고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사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무서운 하나님을 믿으면 안됩니다. 나쁜 하나님을 믿으면 안됩니다. 하나님 나쁘지 않아요. 하나님 좋은 하나님이에요. 좋은 하나님을 믿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시간부터 여러분 여러분 환경과 운명에 좋은 하나님이 나타나실 것을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써 믿음을 주셨지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같이 계시므로 강하고 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에서 우리 집으로 오면 거기에 남부공동묘지가 있어서 많은 시체를 파뭍은 공동묘지가 있어요. 그 옆을 제가 지나와야 돼요. 그러니 언제나 학교 갈때도 그렇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그렇고 그 공동묘지 지나갈 때는 반 죽음이에요. 꼭 귀신들이 나와서 나를 확 덮칠 것 같아요. 겁이 나서 거기가서는 뭘 하느냐. 뛰기 시작하는데 한번 뛰기 시작하면 내 발걸음에 놀래가지고서 끝까지 뛰어야 해요. 숨이 턱에 닿도록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나 너무 겁이 나서 여기 오기가 힘들어 날 좀 도와줘. 내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리 할머니 나이가 70이 넘은 것 같아요. 그런 할머니가 무슨 도움이 됩니까?

그런데 내가 올 때쯤 되면 가파른 산꼭대기에 할머니가 앉아가지고서 늘 불러요. 용기야~ 오냐~ 그런데 그 산밑에 와서 할머니의 음성만 들으면 두려움이 싹 사라져요. 마음에 기쁘고 용기 백배해서 할머니 나 여기있어~ 아이구 내 새끼야 빨리 오너라. 그 할머니 음성을 들으면 두려움이 싹 사라지고 할머니 손을 잡으면 천지가 다 내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참 어리석기 짝이 없어요. 할머니가 나보다 더 힘이 없는데 걸음도 더 빠르지 못한데 그 할머니가 있어도 용기백배한데 예수님이 용기야~ 거기 있느냐~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있다.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같이 하리라.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시편 91장 1절로 7절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우리 좋은 하나님이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극한 염병에서 건져 주실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지 나쁜 것 주시지 않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10절의 말씀을 늘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 질그릇 아닙니까? 이 질그릇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사방으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낭패와 실망에 욱여쌈을 당하여도 여기 예수님이 턱 들어 앉아 있으니까 싸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환경보다 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예수님만 바라보면 우리가 싸이지 아니한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면 싸이지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이 계시니 낙심할 리가 있습니까?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사람이 핍박해도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데 뭘 두려워할 것입니까?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망하려고 달려들어도 거꾸러뜨려도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안 망해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 속에 계시면 만사형통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여러분의 모든 부정적인 세력을 십자가에서 다 멸해 버렸던 것입니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여러분 위해서 승리를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살면 하늘과 땅이 내 편에 서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백성들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믿음을 탁 가지면 분위기가 내 마음에도 분위기가 확신의 분위기가 있고 주위 환경에도 분위기가 좋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잡아 놓으면 온 천지에 악한 귀신이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향기가 나면 벌과 나비가 날라오듯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믿음, 소망, 사랑으로 좋은 것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참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 너무나 좋은 것을 약속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보고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근심하고 늘 두려워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도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 것은 내가 대신 근심했고 내가 대신 두려움과 싸웠다고 말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 주님이시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말할 필요없이 우리 마음 속에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 박사는 노이로제나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하루에 두 번씩, 아침 저녁으로 시편 23편을 묵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환자들이 노이로제에서 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시편 23편 한번 읽고 저녁에 한번 읽게 했는데요.

미국의 하워드 캘리 박사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성경은 나에게 동료 의사의 역할을 해 줍니다. 성경 말씀은 매우 훌륭한 의술이 되기 때문에 성경의 처방대로 했을 때 한 사람도 치료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하워드 캘리 박사는 의사입니다. 의학박사이면서 항상 성경을 읽고 성경이 가르치는데로 의학과 같이 환자를 치료하니까 환자가 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암 전문의사인 황성주 박사는 치료 과정에서 한 부인을 만나서 이런 얘기를 들었답니다. 그녀는 매일 밤 불면증과 번민으로 시달리는 남편에게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시편 23편을 읽어주었더니 남편이 신앙도 회복하고 불면증도 완전히 나아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뿐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정신질환을 비롯해서 일상생활에서 겪는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치료하고 우리를 승리와 평안의 분위기로 다스리는 능력이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 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 ♬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므로 내가 한탄하도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 손에 쥐었으니 내가 어찌 너를 버리랴. 내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너희를 값주고 샀으니 어찌 내가 내것을 버리고 떠나랴. 마귀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속지 말라. 항상 나는 너와 같이 있느니라. 이와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 감사 박수를 드립시다.

<결론>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심으로 나는 사는 이유도 알고, 내일의 희망과 꿈도 예수 때문에 가질 수 있고, 강하고 담대하게 창조적인 믿음으로 마음과 환경을 다스릴 수 있고 예수님이 내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다 되시므로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2011. 5. 22.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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