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 32)
할렐루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 가면 한국의 고아들을 한사람씩 맡아서 기르자는 광고와 선전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우리 한국이 이렇게 복을 받아 제3세계 어린 아이들을 돌보자는 필림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게 되었는지 내가 저 비디오를 보면서 아에 눈물이 나려고 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 나라에 이와같은 큰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까지 우리가 거지였는데 이제는 부자가 되고 거지가 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평안합니다. 건강합니다. 만사형통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마음을 다스려야 삶을 다스릴 수 있다” 이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 아픔, 생활의 슬픔 등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의 쓰나미가 항상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삶은 한번의 기회밖에 없습니다. 그 한번의 기회에 울고 탄식하고 부정적으로 살아도 일생을 살고 모든 운명과 환경을 극복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도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환경은 언제나 똑같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 못하고 사는 사람은 슬프게 살고 극복하고 사는 사람은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다스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환경을 다스리기 전에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환경을 다스리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처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성을 빼앗는 것이 쉽습니까? 성을 지키고 있는 군대들이 안에서 끊임없이 저항을 하는데 성 빼앗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면 그 마음에 다스리는 능력이 나아가서 성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을 빼앗으려고 하기 전에 마음을 다스리면 성이 무너진다는 말은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환경과 운명의 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방황하지 말고 내 마음에 바로 생명의 근원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28절에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으면 도둑놈들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약탈꾼들이 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충신이자 학자였던 김시습은 그가 쓴「매월당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속에서 독사에게 물렸어요. 보통 그 독사에 물리면 그대로 죽는데 이 사람은 산에서 일하다가 모르는 사이에 독사에 물렸기 때문에 그저 나무에 긁힌줄 알고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산 밑에 있는 땅꾼이 이 사람을 보더니만 “이보게 상처 한번 봅시다.” 보더니 “이것 독사가 물은 상처인데? 이 독사에 물린 사람은 백발백중 죽는 것인데 어떻게 살아있노?”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이구...” 하더니만 주저앉더니만 그대로 죽어 버렸어요. 여태까지 독사에 물린 줄 모르고 있을 때는 끄덕 없었는데 독사에 물린 줄 알고 이제는 죽었다고 마음에 받아들이니까 죽었다 말이에요. 이것 제가 말한 것이 아니고 유명한 김시습 학자가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독사에게 물려도 괜찮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을 이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리정돈되면 환경이 따라서 정리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환경을 아무리 애를 쓰고 힘을 쓰고 정리정돈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은 그대로 내버려 놓고 우리 집을 다스려야 되겠다. 직장을 다스려야 되겠다. 환경을 다스려야 되겠다고 노력을 하고 애를 쓰는데 안되잖아요. 마음이 안다스려지는데 됩니까? 성경에는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했는데 매고 푸는 것이 어디서 합니까? 마음에서 매고 푸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매고 푸는 데로 하늘은 그에 따라서 역사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고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다스리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본론>
1. 마음을 청소하고 정리하라
여러분, 집안을 다스리려면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해야 되는 것처럼 마음을 청소하고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미움, 분노, 시기, 질투, 교만, 탐욕 같은 쓰레기더미를 씻어내고 양심에 고통스런 죄책을 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야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고 마음이 완전히 불완전하게 흩어져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다스려집니까?
마가복음 7장 21절로 23절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 속에는 쓰레기더미가 있습니다. 너나 할것없이 우리 가슴을 활짝 펴고 들여다 보면 쓰레기더미가 다 있어요. 남에게만 쓰레기더미가 있다고 손가락질하지 말 것은 내 속에 쓰레기더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청산해야 돼요. 쓰레기더미를 어떻게 청산합니까? 우리가 회개를 통해서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깨끗하게 해주세요. 입으로 그냥 고백해서 고백이 잘 안되거든 종이를 가지고 죄를 하나, 둘 적으십시오. 적어서 그 죄 항목을 읽고 난 다음에 주님 앞에서 쫙 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집어 넣으세요. 그리고 마음 속에 죄 다 청산했다. 그러면 더 확신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로 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샘물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물질적으로 넘쳐나는 물로써 때는 씻지만 마음은 못 씻는데 우리는 마음을 씻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갈보리산에 매달려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통해서 흘리신 피를 믿고 받아들이므로 우리 죄가 다 용서함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더러운 죄만 자복할 뿐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을 정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시기, 분노, 우울한 마음, 살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생각, 이런 생각을 다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만사형통하다. 이 말을 하라는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저보고 그런 질문을 해요. 행복하지도 않은데 왜 자꾸 행복하다고 그럽니까?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행복 안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라.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데 뭐라고 행복하다고 말할 필요 없지 않느냐. 행복 안하니까 그것을 쫓아내기 위해서 나는 행복하다. 안기쁘니까 슬프니까 나는 기쁘다. 평안하지 못하니까 나는 평안하다. 건강 안하니까 내가 건강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그냥 두고는 마음이 정리정돈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5절로 6절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라서 여러 가지 부정적 생각이 마음을 꽉 점령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영의 생각을 쫓아서 예수님 이름으로 긍정적인 시인을 하므로 이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음을 새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낡은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할 수 없어요. 마음이 맑아져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정리해서 마음을 깨끗이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리처드 칼슨은 심리학자로 오랜 기간 동안 심리치료 상담을 한 유명한 의사가 있는데 그가 이러한 일을 하게 된 것은, 아주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 친구와 그는 열심히 인생을 살겠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늦게 누우며 손실을 아끼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결혼 날짜를 잡아 놓고 결혼 하기 전에 덜컥 죽어 버렸어요. 거기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그렇게 수고의 떡을 먹고 물을 마시며 고생했는데 순식간에 죽어버리고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 인생은 쉬지 않고 고생을 하며 노력만 한다고 사는 것이 아니구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그는 사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빨리빨리 대신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가지면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생산적이고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 말을 들으니까 동양 사람, 한국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 몽고인 이 중에 한국 사람을 어떻게 골라 내느냐. 그러면 가만히 보고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빨리빨리 하거든 한국 사람인줄 알라고... 한국 사람은 무엇이든지 빨리합니다. 밥도 빨리 먹어요. 일도 빨리하고 걸음도 빨리 걷고... 한국 사람끼리 있을 때는 몰라요. 다 빨리하니까 누가 빠른지 모르는데 외국 사람하고 살아보면 확실히 외국 사람은 슬로우에요. 그런데 빨리 한다고 반드시 일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활에 여유를 가져라. 이 말은 제가 제일 먼저 들어야할 사람입니다. 성격이 빨리빨리가 되어서 어제도 우리 성도들하고 밥을 먹는데 우리 권사님이 나를 탁 치면서 좀 천천히 잡수세요. 뭘 그리 급하게 먹습니까? 그러면서 내가 보니까 자기도 급하게 막 먹고 있으면서 날 보고서... 급하게 먹는 것 위장병만 생기지 좋은 일이 아니구나.
여러분 제가 설교하기 전에 강단에 여기 앉아있는데 어찌 졸음이 오는지 애를 먹었어요. 지금 졸음이 오는 것을 물리치고 나왔는데 왜냐, 아침 5시에 출근할 필요가 없는데... 아침 새벽 2시, 3시에 일어나서 다 옷 갈아입고 4시 반이면 출근해 가지고서 5시에 도착하니까 내 주위에 있는 비서실 직원들도 다 고생 죽도록 하고 눈을 부비고 와 있지. 그렇게 해서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목회할 때는 새벽기도하기 위해서 반드시 5시에 교회 나와야 되고 이제는 목회 그만두고 천천히 쉴만 한데도 불구하고 못쉬는 것이 성격인데 그런다고 일이 다 잘되느냐. 천천히 7시에 일어나는 사람이나 5시에 일어난 나나 별차이가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사십시오. 우리가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애쓰고 힘쓰고 빨리빨리 해야 되는줄 아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마음을 정리정돈 하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살아도 마음 속이 행복하면 환경이 행복한 환경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먼저 버려야 할 사소한 생각으로는, 불행하다는 마음과 마음의 고통, 슬픔, 상처 등 주로 부정적인 것들을 다 재껴야 돼요. 화, 불안, 분노, 비난 등 부정적인 감정들도 지금 당장 버리고 망설이고, 걱정하고, 불신하고, 갈등하고, 조급증, 적대감 등의 행동을 버릴 때 마음이 그런 것으로부터 해방되면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 가운데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쓰레기더미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내고 우리 마음을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까 비디오에 보니까 몽고에 있는 애들이 그 쓰레기더미 속에서 살고 쓰레기를 뒤지고 그것으로써 하루에 5천원 벌어서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는게 아니에요. 완전히 동물과 같이 살아요. 그런 속에서 행복하다고 볼 수 없어요. 우리는 그 쓰레기더미 속에서 살지 않는데 바깥은 좋은 집에서 잘 정돈된 가구를 갖다 놓고 살지만 마음이 그런 쓰레기통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쓰레기통이 되어 있으니까 바깥이 아무리 좋아도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가 마음을 정리정돈하기 위해서 항상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보혈로 씻고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어 쫓아야 돼요.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울면서라도 나는 평안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잘된다. 형통하다. 그렇게 하면은 그 생각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반대적인 생각을 밀어내 주는 것이니까 마음에 그런 생각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마음이 정리정돈 되어서 기도해야 힘있게 기도가 상달되지 마음이 아주 쓰레기더미 같이 혼잡하게 되있는 상태에서 기도해서는 기도응답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마음 속에 기뻐하고 경배하며 즐거움으로 꽉 들어찬 마음을 가지고 살면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음악가 중에 제일 유명한 음악가 여러분 기억나는 분이 누굽니까? 베토벤. 이 베토벤은 젊었을 때 예수를 안믿었습니다. 그는 인기와 명예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청중 앞에서 박수 갈채를 받고 했지만 그 마음에 공허를 이길 수가 없어요. 마음이 허무하고 연주를 하고 혼자 집에 돌아가면 마음에 슬픔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어요. 예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자 그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음에 공허가 사라지고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교향곡 9번으로 그 4악장 일부가 찬송가 64장이 들어 있습니다. 그가 은혜 받은 후, 예수님 안에서 누린 기쁨을 그린 것이 바로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이 찬송을 교향곡에 넣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 가운데 늘 새로운 영감을 얻어 많은 불후의 작품을 남길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베토벤이 작곡한 찬송가 64장을 한번 불러볼까요?
♬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
여러분 다 베토벤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오자 주께서 마음에 주신 변화가 얼마나 큰지 그것을 음악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쁨과 행복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가득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혈로 씻고 하나님 은혜로 마음에 가득 채우면 어떠한 환경에도 행복과 기쁨을 갖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앞에서 얻은 기쁨은 세상으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면 행복이 환경에도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2. 희망찬 꿈을 그리고 바라보라
둘째로, 희망찬 꿈을 그려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꿈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적은 꿈, 큰 꿈, 살아있는 사람은 다 마음에 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망찬 꿈을 갖고 살아야지 꿈이 언제나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면 절대 행복하지 않아요. 비관적인 꿈을 가진 사람들이 요사이 자살을 많이하지 않습니까? 대학생들도 대학교수도 자살을 하거든요. 그러면 희망찬 꿈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느냐.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망찬 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절망을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희망찬 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꿈은 왔다갔다 왔다갔다 변화무쌍 합니다. 큰 돈을 벌겠다고 애를 써서 돈을 벌고 난 다음 대개 건강 잃어버리고 환경이 어려워지면 순식간에 돈 다 날라가 버리고 빈손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우리가 실망하지 않는 것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꿈은 희망차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쳐다보고 용서와 의의 꿈을 언제나 꿀 수 있고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꿈을 꿀 수 있고 치료받고 건강한 꿈을 꿀 수가 있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얻을 꿈을 꿀 수 있고 부활 영생 천국의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꿈은 꿈이니까요. 그래서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꿈을 꾸고 나아가면 그 꿈이 여러분을 그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그것은 오해하지 마십시오. 꿈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갖는다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고 성경에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나아가면 그 꿈이 우리를 예수께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의 죄악된 삶, 부패한 삶, 병든 삶, 패배와 실패, 낭패, 가난, 저주의 삶. 죽음의 고통의 삶이 다 사라지고 새로운 삶,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노력하고 힘쓰고 애쓰고 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여러분을 그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믿으면 성령이 오셔서 그 꿈대로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은즉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 대신에 복된 모습을 예수님 안에서 바라보십시오. 환경을 바라보고 나는 가난하다. 못산다. 빈손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마음 속에 상상하고 바라보면 그대로 끌려가고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쳐다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를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디에서 그런 말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말씀을 얻을 수 있고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부요하게 되는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을 꾸면 꿈이 여러분을 그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와 마귀와 고통의 종 대신에 자유로운 삶을 얻게 되는 여러분 모습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께서 죄와 마귀와 고통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를 주신 모습을 꿈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꿈꾸면 그대로 이끌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쳤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영혼을 고치고 마음을 고치고 육체를 고치고 생활을 고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치료받고 고침받고 변화받는 모습을 상상하면 성령께서 그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과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로 되어요. 자꾸 못살고 안되고 죽는 것을 생각하면 꿈이 여러분을 못살고 안되고 죽는 것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을 꿈꾸고 심신의 병 대신 건강한 삶을 꿈꾸고 하나님이 복된 삶을 마음 속에 꿈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편 103편 1절로 5절과 같은 우리가 됩니다.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꿈을 꾸라구요. 저가 내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시고 내 병을 다 고쳐 주시고 내 생명을 파멸에서 건져 주시고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주신다. 이 성경말씀을 읽고 이 말씀을 꿈꾸고 감사하면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을 외우면 굉장히 좋아요.
“야훼는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그 깃으로 너를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거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그 다음에 놀랍지 않아요? “너는 밤의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하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말씀을 읽고 외우고 꿈꾸면 그 말씀이 여러분을 이끌어 갑니다. 매일 이 말씀을 읽고 꿈꾸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성경 말씀 가운데 극히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시편 23편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것을 읽고 외우면서 꿈을 꾼다 말입니다 머릿속에... 그냥 입술에 발린 말로 말하지 말고 내가 꿈을 꾸어요. 내가 푸른 초장에 누워서 만사형통하는 꿈을 꿔요. 내가 쉴만한 물가에 나가서 마음에 휴식을 갖는 평안을 느껴요. 주님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넘쳐나서 행복하게 되고 기뻐 즐거워하는 나를 상상해야 돼요.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집에서 늘 당하잖아요. 집에서 가정문제, 생활문제, 사업문제로 사업에 어려운 문제를 당해도 나 안망한다. 안망하는 나를 상상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 계셔서 지팡이로 이끌어 주시고 막대기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상상을 해요. 꿈을 꾸어 보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재료가 바로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상하고 꿈꿀 재료가 없어요. 그러므로 상상하고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말씀에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고 상상하고 꿈꾸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말씀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꿈이 없는 사람은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요. 그러나 아무리 둔한 사람도 꿈이 있으면 지혜와 지식과 총명이 개발되어서 큰 일을 하게 되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항상 꿈을 잃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고 말씀을 읽고 상상하고 꿈꾸십시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면 그 마음을 다스린 대로 환경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환경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다스린 마음에 정리된 그것이 환경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 밖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3. 믿음을 활용하라
셋째로, 우리는 믿음을 활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믿을 데가 없잖아요. 지위, 명예, 권세, 돈 이런 것을 믿지 하나님을 못믿는 것은 하나님 모르니까. 그러나 극히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믿을 데가 없기 때문에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바로와 온 군대가 그들을 다 잡으러 나왔는데 홍해수가에 와서 올데 갈데가 없습니다. 군대도 없고 무장도 안되고 바로왕의 군대를 대항할 수도 없습니다. 다 잡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를 따라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너희는 오늘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오늘 내가 본 애굽 군대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싸워서 홍해수가 갈라졌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면 하나님 믿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 감각적으로나 경험 등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지적으로 가능한 것을 믿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지요.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믿는다고 기도할 때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기적이 일어나야 돼요. 내가 영적으로 믿으면 영적인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야 되고 육신적으로 믿으면 육신적인 치료가 기적적으로 일어나야 되고 생활적으로 믿으면 생활에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은총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데 무엇을 믿을까요? 그렇게 하는 사람 많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백화점처럼 많아요.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레마가 되어서 감동을 주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간증 하나를 들었는데 심장과 폐와 위장에 달려있는 근육이 살아있어야 심장이 뛰고 폐가 숨을 쉬고 모든 기관이 움직이는데 여기에 움직이게 하는 칼슘이 반이나 줄어서 죽게 되었어요.
그래서 의사들도 다 수술도 못하고 손쓸수 없는 희귀병으로 오래 못산다고 했는데 교회 나와서 기도하고 난 다음에 마음 속에 성령께서 레마를 주셨어요. 안 죽는다. 너 재산 반을 주님께 드려라. 황당한 일 아닌 것입니까? 그래서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내가 교회에 재산 반을 헌납하겠습니다. 그런데 과부인데 아들 둘이가 있어요. 목사님은 뭐라고 생각했느냐면 아, 자기가 죽으면 아들 키워달라고 미리 떠맡기는구나. 그래서 목사님은 그것을 아주 싫어했답니다. 왜냐하면 재산 반을 가지고도 아들을 한평생 어떻게 돌봐줍니까? 그런데 아이 안받으렵니다. 그냥 집에 가지고 계세요. 기어코 내가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래서 재산 반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또 성령께서 마음 속에 말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기적이 일어났다. 별로 신앙이 깊은 여자도 아닌데 하나님께 그 레마를 받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하니까 병원에서 검사해 보고 의사가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면서 뭘 먹었느냐고 그래서 교회 나가서 기도했다고 하니까 아주 정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 병이 가짜로 나은 것이 아니라 그 병이 낫고 지금 7년이 지났는데 그 7년 전보다 지금이 더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 아닙니까?
잠언 4장 20절로 22절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말씀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그것이 생명이 되고 온 몸에 건강이 되는 것입니다. 너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이루리라. 우리는 정말로 튼튼한 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믿어지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은 기적을 기대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믿는다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고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할 수가 있지요.
창세기 13장 14절로 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지금 내 땅이 아닌데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바라보고 마음에 내것이라고 믿고 선언하면 너에게 주겠다. 그런데 가나안 땅 동서남북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다 하나님이 다 주신 것입니다. 바라보라. 여러분은 뭘 바라봅니까? 건강을 바라봅니까? 계속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바라보고 믿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입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고 시인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8절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본다. 인간적으로 바랄 수 없는데 여러분은 바라고 믿어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질 수 있는 것은 여러분 마음속에 바라보는 법칙을 따라 바라보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에 바라보고 믿으면 여러분 운명과 환경이 믿음을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자꾸 내 팔자가 나쁘다. 내 환경이 나쁘다. 시대가 나쁘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 모든 것은 마음을 다스리면 자동적으로 여러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난 다음에 다스린 마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명령하면 큰 변화의 역사가 여러분 환경에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20절로 22절에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음으로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아직 안 나았습니다. 혈루병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예수님의 옷가에 손만대면 낫는다고 바라보고 믿었는데 손을 대자마자 나아버렸습니다. “예수께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보십시오. 먼저 믿음이 있고 그 다음 구원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서 담대하게 행하십시오. 용기를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바라보고 믿고 행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예수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분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 마음 속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제일 나쁜 것이 두려움인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놀라면 주님은 여러분을 도와줄 수 없고 사탄이 여러분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과 놀라움은 사탄을 청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욥이 패가망신하고 온 전신이 동양성 문둥병에 걸려서 기왓장으로 긁으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내 무서워하는 것이 내 몸에 왔고 내 두려워하는 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이 잘 나갈 때 마음 속에 잘못된 것을 바라보았다 말입니다. 마음 속에 자기가 패가망신하고 문둥병이 걸릴 것을 꿈꾸었다 말입니다. 그것이 두려움과 공포가 되어 있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긍정적인 일이 생기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것이 생기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은 당장 회개하고 쫓아내 버리고 긍정적인 것은 마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꿈꾸고 믿고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4. 말로써 마음을 다스려라
네 번째, 말로써 마음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말로써 시인하면 꿈과 믿음이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을 통해서 생각하고 말을 통해서 바라보고 말을 통해서 믿고 말을 통해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 안하는데 말이 여러분을 붙잡고서 좌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는 것이 가만히 있으면 그 믿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 믿습니다. 말로 하면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꿈도 마음 속에 가만히 혼자서 어떻게 꿈꿉니까? 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무슨 꿈을 꾸느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말을 하면 그 꿈이 선명해진다 말입니다. 말을 하는 것이라구요. 가만히 있으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봄옷을 사 입겠습니다. 멋있는 봄옷을 사 입겠습니다. 말을 해보십시오. 그 꿈이 마음에 아주 확실하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꾸 말로써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면 마음 속에 꿈이 행복한 꿈과 즐거운 꿈이 마음 속에 그려져요. 말을 안하면 안돼요.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힘 있지요. 혀가 힘이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그냥 말이 공중으로 날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혀가 그 열매를 맺어서 여러분 잡숫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이 온 몸을 굴레 씌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라는 자체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말을 통해서 믿음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돼요. 내가 어느 교회에 방문을 했는데 목사님이 나를 보고서 “목사님 창문을 열어 보십시오.” 그래서 “왜?” “저기에 뭐가 보입니까?” 봄꽃이 확 피어 있는 것이 보여요. “왠 꽃이 저렇게 피었나?” 그랬더니 “목사님 온다고해서 내가 시장에서 가서 꽃나무를 사가지고 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심었는데 어떻다 말입니까?” “꽃나무를 심고나니까 어디에서 왔는지 나비들이 이렇게 많이 날라와서 꽃의 향기를 맡는데 나비는 내가 안 사왔습니다.” 꽃을 갖다 심어 놓으니까 나비들이 날라왔어요. 그래서 탁 마음 속으로 무릎을 쳤습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여러분이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꿈과 긍정적인 믿음과 긍정적인 말을 해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성령이 날라와요.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쓰레기통을 갖다 놓으면 쥐가 와요. 쥐가 오지 말라고 해도 쓰레기통을 갖다 놓으면 쥐가 오고 벌레들이 와요. 그러나 꽃을 갖다 놓으면 나비와 벌들이 와요. 마음에 어떠한 분위기를 만드느냐에 따라서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여러분께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좋은 일이 한없이 생겨나요. 그런데 이 마음의 분위기를 잘 만드는데 가장 공로를 세우는 것이 말입니다.
로마서 10장 8절로 10절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아무리 마음에 믿어도 말 안하면 구원에 이르지 않아요. 처음 믿는 사람 일어나서 기도를 따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어났지요. 그러나 내 말을 따라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말이 그렇게 중요해요. 마음의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면 기도가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정적인데서 아무리 기도해봤자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 못해요. 공중 권세잡은 마귀에게 막히고 말아요. 마음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되어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주님이 살아계신다. 나를 도와주신다. 주님이 이루어 주실 아름다운 꿈을 꾸고 믿음으로 주님께 주여 하고 부르고 기도하면 기가 막히게 응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설교 듣고 난 다음 마지막에 우리 주여 세 번 부르고 기도할 때 그때가 응답받는 시간인 것입니다. 마음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니까. 환경이 만들어졌으니까 기도가 하늘에 능력있게 상달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가 마음의 생각이 평강으로 꽉 들어차서 기도하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얼마나 인생을 차이를 두는지 미국 가톨릭대학의 클리프 노타리우스 교수가 부부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백 년 해로를 한 부부나 파경을 맞은 부부가 살면서 부부싸움 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대요. 백년을 해로해서 인정있게 사는 부부나 싸워서 헤어지는 부부나 보면 싸우는 횟수가 별로 다르지 않고 싸움도 똑같이 부부간에 싸운다는 것입니다. 인정있다고 안싸우는 부부는 없어요. 아무리 내 입에 네밥, 네 입에 내 밥을 먹어도 싸워요. 한 어머니, 아버지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도 싸우는데 남남끼리 모이는데 안싸울 턱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싸워도 곧 화해하고 이혼까지 안가는데 다른 부부는 싸워서 파경에 이르러 이혼까지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가만히 이 대학교수가 조사를 해보니까 말에 있더랍니다.
말... 그런데 싸워도 곧 화해가 되고 파경에 이르지 않는 부부는 싸워도 자기 마음에 입은 상처를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할퀴지 않아요. 내가 섭섭하다. 기분이 나쁘다. 내가 괴롭다. 내가 고통스럽다.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당신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잖아! 나를 섭섭하게 만들었잖아! 당신 때문에 내가 못살아! 그러면 전부 책임을 남편이나 아내에게 덮어 씌우기 때문에 뭐 어떠고 어때? 반발이 생기는데 나는 섭섭해요. 나는 고통스러워요. 나는 괴로워요. 그러면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세요? 괴로워하지 마세요.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싸워도 부드럽게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별하는 부부는 싸울 때 남에게 싹 할퀴는 것입니다. 상처를 줘요. 꼭 말을 해도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해요. 너 때문에 밥맛없어. 옷은 뭐 그렇게 입어? 어휴 꼬락서니 보니 참... 내가 눈이 뒤집어졌지 내가 저런 사람하고 결혼하게... 이것 상대방에게 굉장히 상처를 주지 않습니까?
다윗에게 상처를 준 미갈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법궤를 매고 오는데 너무 즐거워서 춤을 추다가 바지가 내려가서 본전이 다 드러났어요. 그것도 모르고 그냥 바지가 다 내려갔는데도 막 법궤 앞에서 춤을 추고 다윗성으로 돌아오니까 그 아내 미갈이 창문을 내려다보더니만 쯧쯧쯧 저게 왕이라고... 그래서 다윗이 백성들을 보내고 난 다음 집안 식구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들어오니까 아따 오늘 참 당신 영화롭기 짝이 없더군요. 일국의 왕이 바지가 내려가고 본전이 나타나도록 춤을 추고 뛰고 구르고 참 눈꼴이 사나워서 못보겠다. 말을 잘못했어요. 다윗이 화가 났습니다. 오냐, 그래? 네 아버지를 사울을 하나님이 죽이고 그 나라를 빼앗아서 내게 주신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춤췄다 어쩔래? 상처 입은 말 아닙니까? 그래서 그 이후로는 다윗이 미갈하고 같이 생활을 안했습니다. 평생에 자식이 없이 외롭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여러분 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도 집에 가서 오늘부터 싸우거든 절대로 상처 입을 말 하지 마세요. 안되거든 내가 보는 눈이 나빠서 당신이 옷을 입었는데 잘입었는지 못입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면 그 부인이 내가 옷을 잘못 입었나? 요새 입맛이 없어서 음식이 잘 안먹어진다. 그렇게 말 안하고 솜씨가 왜 이 꼬라지냐? 먹을 수가 없다. 먹을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상처를 입습니까? 내가 입맛이 없다고 하면 부인이 내가 솜씨가 없으니까 열심히 잘 음식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생각 날것 아닙니까? 그러나 욕을 하면 맛없게 만들어서 주고 말아요.
내가 변화받으면 내 변화 때문에 상대가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부인이 변화되니까 남편이 변화되고 남편이 변화되니까 부인이 변화되고 상승작용을 해서 좋은 가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 말을 잘 사용하면 가정도 행복하고 생활도 행복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분위기를 마음에 유지시키며 늘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 드리겠습니다.
/ 2011. 5. 29. 주일설교